물건을 비우기 어떤 정리책이든,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챕터 중에 하나다. 내 책에도 물론 있으나, 이번 포스팅에서는 저장강박에대한 종합 보고서라고 불리우는 <잡동사니의 역습>을 통해 좀 더 딥하게 심리적인 원인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한다.
책은 매 챕터마다 어떤 특이성을 가진 저장강박증 환자들의 사례가 소개되는데, 첫 번째로 소개되는 아이린이란 여성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아이린은 다양한 환자들의 모든 특징을 다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아이린을 저장강박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아이린이 물건을 비우지 못했던 대표적인 이유와 특징을 다섯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 째, 물건들이 자신의 능력을 보완하거나 강화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린은 다신 보지 않을 신문더미를 버리지 못했다. 자신의 기억력을 탓하며 읽은 기사 내용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린의 기억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런 논리는 정리정돈에서 어떤 문제와 연관된다. 물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종종 ‘눈에 보여야 까먹지 않는다’ ‘펼쳐놔야 마음이 편하다’라는 분들을 만나는데, 같은 이유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고, 물건과의 관계를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건들의 위치를 모두 기억해내야 한다는 불가능한 과제를 스스로에게 준 것은 기억력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물건 속에는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잠재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린은 방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는 쪽지를 발견한다. 이미 누렇게 변색이 되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쪽지를 버리지 못했다.
“내가 이것을 썼다는 건 분명히 중요한 번호 일 거에요. 전화를 걸면 정체를 알아내는 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리겠죠. 하지만 당장 할 필요는 없으니 그냥 두는 거에요.”
하지만 그녀는 결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이런 행위에 대해 저자는 “전화번호가 주는 가능성이 전화를 해서 얻는 실재적 현실보다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어쩌면 아이린은 전화로 굳이 확인하는 것 보다, '이 번호는 어쩌면 중요할 수도 있어. 이 전화번호로 인해 내 삶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새로운 사건이 벌어질 수 있어.'라는 기대감이 더 좋았던 것이다.
세 번째, 따분하고 지루한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지 못한다.
아이린은 정리를 하면서 어떤 행동을 자주 반복했다. 잡동사니 더미의 물건을 하나 집어들고 잠깐 보는가 하더니, 금방 시선을 돌려 다른 것을 흘끗 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물건을 집어들고 이전에 들었던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도 재미난 이야기나 사연이 있는 물건을 발견하면, 그에 대한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놓는 일에 집중했는데, 저자는 이런 행위를 통해 그녀가 계획하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주의집중을 하는 등, 실행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실 누구나 지루한 일에는 주의를 집중하기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고, 집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린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런 부분이 굉장히 취약했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하고 있는 정리트레이닝 역시 이런 도움을 주는 것)
네 번째는, 물건의 쓰임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을 갖는다.
아이린은 펜뚜껑도 버리지를 못했다. 보드게임의 말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택 융자회사가 보낸 광고 우편물도 마찬가지 이유로 버리지 못했다. 아이린은 이 광고에서도 어떤 정보가 중요한 정보인지, 불필요한 정보인지를 파악하려고 했으며, 그것을 파악하기 전까진 버리는 것을 굉장히 찝찝해 했다.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물건의 새로운 속성과 활용법을 생각해 내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마치, 펜뚜껑을 보드게임의 말로 쓸 수 있다는 생각처럼 말이다. 또, 물건을 소유하면 그 잠재력이 충분히 실현되도록 사용하거나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책임감도 과도하게 느끼는 것도 대표적인 특징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물건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심하다는 것이다.
아이린은 특히 책을 없애는 것에 대해 정말 힘들어했다. 서사이기도 했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몇 십년 된 역사책을 버리기로 시도할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30년 동안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건 인정하지만, 지금 나는 죽고 싶은 기분입니다. 나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져요.”
그런 그녀에게 책이란 자신의 개인사이자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책은 “꿈”을 대변하기도 했다. 바로 요리책이었는데, 아이린은 300권 이상의 요리책, 여러 신문의 요리면과 잡지에서 본 요리법을 메모한 것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리책과 요리법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요리책과 요리법을 보유한 것만으로도 요리사가 된 것처럼 요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즐거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린에게 물건은 솜씨 좋은 요리사, 박식하고 세련된 인물, 책임을 다하는 시민 등등. 현실이 아닌 되고자 하는 욕망, 꿈을 대변했다.
아이린이 물건을 버리지 못한 이유, 공감이 되지 않는가.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장강박에 관해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사람들은 모두 소유물에 애착을 가지며 남들이 모으지 않은 것을 모으기도 한다. 우리가 얼마간은 수집하고 저장하는 성향을 가진 이유다.”
아이린은 어떻게 잡동사니들을 처리하고, 집안정리를 해내게 되었을까?
두 저자는 앞서 이야기 했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버리는 도전을 해보게 한다. 아이린은 고통스러워하며, 버리고, 다시 주워오기를 반복하지만 결국 두 저자와의 끊임없는 대화 끝에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물건들을 하나씩 비워나간다. 그리고 1년 반동안, 집안의 잡동사니들을 모두 자기 스스로의 결정으로 정리해내고 평범한 일상생활로 복귀한다.
저자는 아이린이 단순히 물건을 1년 반동안 버린 것이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기회를 포기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린의 사례를 통해 물건을 정리정돈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어떤 기회에 대해서는 당당히 포기하고, 때론 지루함을 인내하고 집중해서 마무리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기에 삶의 질서를 유지하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뿐만아니라, 물건을 비울 때도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