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가장 비우기 어려운, 혹은 어려웠던 물건은 무엇인가요?
대부분 추억의 물건, 값비싼 물건, 부피가 큰 물건 등은 비우기 어려울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 중에도 기억남는 물건이 있습니다. 10년 동안 거의 쓰지도 않으면서 내 방 한 켠에 장식품 처럼 자리하고 있던 것. 바로 ‘통기타'. 이것을 비운지는 3년밖에 되지 안되었어요.
안 쓰는 물건을 비우라고 매일 말하는 제가, 치지도 않는 기타를 왜 그리 끌어 안고 있었냐구요.
그건 제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잖아요. ‘남자셋, 여자셋’ 같은 시트콤 보면서, 대학생되면 친구들하고 같이 모여 살게 되는 줄 알았고, 대학가요제를 보면서 '나도 대학생이 되면 밴드부에 들어서 대학가요제 나가야지.' 하면서 대학생이 되길 고대했어요. 공부하기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도 대학생이 되면 밴드를 할 생각으로 꾸벅꾸벅 졸면서도 책상에 앉아 있었고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글쎄. 밴드부가 없는 겁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같은 국문과 수업에 기타를 매고 다니는 언니가 눈에 띄어서 용기가 난 거였죠.
"언니, 기타 배우는거? 밴드 하고 싶은데 이 학교에는 밴드가 없잖아. 혹시 언니도 밴드 하고 싶지 않아? 같이 만들어볼래?"
같이 포스터를 만들어서 학생회관 앞 게시판에 붙였어요.'밴드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학교 앞 파파이스로 오라고 '했는데, 그날 파파이스 2층을 전세 냈죠. 거의 20명 정도가 모였어요. 학교에 밴드가 없어서 아쉬워하던 학생들이 모두 모인거에요.
그렇게 비공식 동아리로 활동을 시작한 밴드는 1년도 안되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학생회로부터 정식으로 초청을 받았어요.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중앙 동아리가 되어 동아리방이 생겼죠. 이제는 20기 후배들이 곧 생기겠네요. 이 어마어마한 스토리는 마치 재밌는 드라마처럼, 감동적인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제 기억 속에 펼쳐집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기타’는 학창시절 로망을 주고, 꿈을 주고, 대학시절의 상징같은 것이었어요.
지금부터는 저의 로망이자, 꿈, 그리고 추억, 트로피같은 기타를 어떻게, 어떤 생각으로 비웠는지를 말씀드릴께요. 먼지 쌓인 기타를 보면서 '저거 쳐야 하는데' 하면서도, 한곡을 완주하기 힘들던 저는, 어느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앞으로 기타 치는 시간을 늘릴 계획이 있느냐’ 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저는 물건 비울 때, ‘만약에 게임’을 많이 하걷ㄴ요. 만약에 24시간하고도, 1시간을 남들 보다 더 주고, 무조건 한 가지를 선택해서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기타치고 싶니? 그렇게 물어봤더니 제가 ‘아니, 난 운동이 하고 싶어’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때 출산하고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한창 운동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탄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죠. '이제 나에게 기타를 치는 것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싶은 일이 생겼구나. 시간이 있어도 나는 기타를 치지 않겠구나.'라고 말이죠.
두 번째로 제가 기타를 비울 수 있었던 것은, 기타가 상징하는 나의 소중한 취향, 로망, 추억들에 대한 재해석이었어요.
사실 기타만 치지 않았다 뿐이지, 기타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상징들은 제 삶의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었던거에요. 기타를 연주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다시 찾아들어도 좋을만한 밴드 음악 플레이 리스트가 있었고요. 그리고 음악 관련 프로그램은 꼭 챙겨봤어요. 시즌2까지 했던 ‘슈퍼 밴드’라는 밴드 경연 프로그램을 정말 재밌게 봤고요. 콘서트에 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연락하고, 이야기하는 밴드 친구들 단톡방이 있고요. 이제는 다들 결혼을 하고, 아기 엄마가 되었지만 대화가 계속 끊기지 않고 이어져요. 코로나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면 술도 한 잔 하면서 어제 만난것처럼 수다떨 수도 있고요.
그 사실을 깨닫고나니 ‘이거 더 잘 쳐줄 사람에게 보내자’라는 결심히 섰습니다. 그래서 중고장터에 올렸죠. 그때 제 기타를 가져가신 분이 백발의 할아버지였는데요, 그 기타 가져가시면서 기뻐하시는 표정이 지금도 생각이 나요. 이제 할아버지는 기타를 새로 배울 생각에 설레고 즐거우셨겠죠. 저는 기쁘게 기타를 떠나 보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포르토벨로의 마녀>라는 소설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티끌한 점에서도 신성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젖은 걸레로, 그것을 닦아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신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깨끗한 바닥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기타는 분명 제 취향이자, 소중한 추억, 그리고 젊음의 상징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타가 먼지 쌓인 채로 방치되야 할 물건도 아니었죠. 기타는 제 손에 없지만, 기억은 버릴 수 없고. 기타가 대변하는 추억과 취향은 지금도 제 일상 곳곳에서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결론이 바로 제가 기타를 비울 수 있었던 큰 계기가 되었지요.
여러분들도 혹시 그런 물건이 있으신가요?
그럼 저처럼 두 가지를 물어보세요.
1. 지금 시간 적 여유가 생긴다면 그 물건을 쓰고 싶은지.
2. 그 물건이 주는 의미나 상징이 이미 여러분의 일상에서 실현되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