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커피이야기
매일 아침, 굳이 브루잉 도구를 꺼내 그라인더로 원두를 분쇄하고, 물을 끓이고, 그리고 2분에서 3분 정도의 추출 시간을 거쳐 한 잔의 커피를 만들고, 매일 아침 굳이 그렇게 커피를 마십니다. 인스턴트 커피를 툭툭 털어 넣거나, 머신의 버튼을 꾹 누르거나 어쨌거나 커피 한 잔일테지만 굳이 이 수고로운 시간을 갖는 건 그 시간이 갖는 쾌적함, 혹은 정갈함 때문일 겁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만들어 마시다보면 그 날의 날씨나 기분 따라 커피맛 또한 달라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날씨 따라 다른 거야 습도나 온도차 때문이라지만 내 기분 따라 다른 건 정말 '기분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기분 따라 내 손 끝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또한 달라지기 때문일 겁니다. 주전자의 물줄기가 때로는 차분하고, 때로는 성급했다가 떨리기도 하는, 그래서 매일이 같을 수 없는 기분처럼, 매일이 다른 그 물줄기의 차이가 커피 맛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추출이란 지극히 간단히 말한다면, 한움큼의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커피가루와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추출이란 커피가루에 물을 부어, 그 물이 커피의 수용 성분을 녹여내, 그것이 우리가 관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으로 표출이 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로스팅된 커피 기준 대략 28%가 수용성 성분이니, 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커피 성분 또한 최대 28%라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 28%를 모조리 다 끄집어낸다면, 과연 맛있는 커피가 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쓰고 떫고 짜고 시고 - 끔찍한 모든 맛을 다 경험하게 될 겁니다. 커피에서 충분한 향미를 끄집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짜고 시큼할 것이며, 반면 물이 커피에서 너무 많은 향미를 녹여낸다면 그 커피는 쓰고 떫고 입안은 까끌까끌할 겁니다. 그러니 커피에서 추출이란 단순히 물을 사용해 커피의 성분을 녹여내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에서 성분을 분배하고 차이를 두어 맛과 향의 조화를 컨트롤하는 일입니다. 잘 녹는 것과 잘 녹지 않는 것을 골고루 이용해 맛의 밸런스를 컨트롤하는 거죠.
추출이란 커피로부터 물이 가져가는 모든 것입니다. 커피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 행위에서 시작해 커피 입자의 분포도를 고려, 그 물을 어떻게 줄 것인가 - 최근의 푸어오버 pour over 개념에서 젓기 stirring나 난류 turbulance를 줄 것인지 아니면 고전적인 핸드드립 hand drip으로 안정적인 층류를 형성하도록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행위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고 손쉽지만, 때때로 잘 녹는 것과 잘 녹지 않는 것의 차이를 이용해 향미 밸런스를 컨트롤하는, 매우 깊이있는 과학적인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매일 아침 정성껏 한 잔의 커피를 준비하며, 오늘은 이 커피에서 어떤 성분을 끄집어낼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상큼한 산미를 원한다면 추출 시간은 짧게, 분쇄커피의 굵기는 조금 성글게 조정하고, 진하면서도 강렬한 한잔의 커피를 원한다면 분쇄커피의 굵기를 오늘은 좀 더 곱게, 그리고 좀 더 부드러운 물줄기로 천천히 커피 가루를 적셔봅니다.
매일 아침 한 잔의 커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과정이면서 꽤 괜찮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주문과도 같습니다. 그 주문은 매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문은 때로는 단순하지만 때로는 유체역학과 지구과학개론을 거들먹거릴 만큼, 꽤나 복잡하고 예민한 방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