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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소시민 Apr 10. 2022

왜 일을 해야 하는가

Work-a deep history, from the stone age

도쿄역 앞 출근길/출처: https://plus.amanaimages.com/items/FYI01486491

왜 일을 하는가?


노동은 항상 나를 사로잡던 주제이다. 우리는 하루의 절반 정도를  일과 그것을 위한 준비시간으로 보낸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인 정체성을 정의하기에, 일은 우리들의 삶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일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 중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노동 시간에 대한 논의였다.

노동시간에 대한 논쟁/출처: https://www.chosun.com/politics/election2022/2022/02/11/FAYPHKDSFZGXXFKPLF565WNFOI/?

지난 20대 대선에서 주 52시간 노동이 이슈가 되었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는 오히려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그런데 52시간이 이미 과한 지에 대한 논의는 주요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케인즈는 현대 경제 성장 속도라면 21세기에는 15-20시간 노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예견한 세계 경제의 생산성과 규모는  이미 1980~90년대에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도 1920-30년대 40시간을 찍은 뒤, 그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으며, 근대화에 늦게 탄 아시아 국가들은 최근에 되어서야 50시간, 40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케인즈가 예견한 경제적인 조건은 만족되었지만 왜 노동시간을 줄어들지 않는지 의문이다. 노동시간제한을 반대하는 의견의 경제적인 논리를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왜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는가? 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고 나서 항상 느낀 의문이었다.  

 James Suzman Work- a deep history, from the stone age to the age of robots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해주는 책이다. 또한  질문을 넘어서 인류가 일을 하는 이유, 그리고 현대 일과 관련된 도덕, 윤리의 뿌리를 진화 생물학과 인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일에 대한 신화를 파악한다.  분석을 바탕으로 자동화와 AI 대표되는 4 산업혁명 시대의 필요한 노동의 형태와 삶의 형태를 논한다.


   작가에 따르면 유기체와 무기체를 나누는 기준이 바로 일이다. 박테리아부터 고양이와 사람들까지 모든 유기체들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수집, 이용한다. 이에 반해 무기체들, 예를 들어 하늘에 있는 별들은 그저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죽을 뿐이다. 유기체들이  의도적으로 에너지를 수집하는 행위가 일인 것이다. 그리고 열역학 법칙에 따라, 구조가 크고 복잡할수록, 그 구조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매우 복잡한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런데 인간의 “일”과 동물들의 “일”은 어딘가 좀 다르다. 사자가 사냥을 하는 것과, 인간이 아침 식사를 만들어 먹는 행위는, 그 의미는 같지만 어딘가가 다르다.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도구의 사용이다. 책의 표현을 빌린다면 “의도적으로 주변 환경의 사물을 재배치하여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인간과 일부 유인원들에게서만 보이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 일부의 유인원들과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언어 사용을 통한 기술과 지식의 전달, 공유, 그리고 발전이다. 유인원들도 단어를 외울 수는 있다. 그러나 문법을 이용하여, 문장을 만드는 것은 아직 보고된 바가 없다. 이에 반해 인간들은 단어와 문법을 사용하여 스토리를 만든다. 그를 통해 도구를 이용한 기술은 전달되고 발전된다.

 그를 통해 인류는 국사 시간에 많이 보던 돌도끼에서 간석기로, 그리고 청동기, 철기를 걸쳐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우리가 갖고 있는 노동 관념이 생겼다고 한다. 수렵 채집 시기의 노동 관념과 경제관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물론  그들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고고학적 증거와 그리고 현재도 수렵 채집을 이어나가는 소수 집단들에 대한 연구에 근거한 주장이다. 하지만 현대 수렵 채집인들의 도구가 과거 인류가 쓰던 도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과거 선교사들과 탐험가들이 남긴 그들의 생활상과 현재 그들의 생활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이 과거를 바라보는  좋은 참고자료인 것은 분명하다. 인류학자인 저자와 동료들이 참여관찰을 통해 현대의 수렵채집 사회에서 발견한 것은 우리들의 상식을 뒤집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우리들의 선입견에 의해 그들의 삶의 수준이 낮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대의 수렵채집인들도 성인 남성의 권장 칼로리인 2000 칼로리 정도를 매일 섭취한다. 그것도  단순히 주 17~20시간을 사용할 뿐이다. 남는 시간은 모두 여가와 휴식에 쓰인다. 이는 단순히 환경이 풍부해서가 아니다. 작가가 연구한 부족은 나미비아의 사막에 사는 부족이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가뭄 때에는 이들이 근처의 농민들보다 1일 칼로리 섭취량이 많다. 농민들에 비해 다양한 에너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자원은 제한되어 있지만. 이들의 삶은 풍족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원의 부족함”과 그에 따른 “무한한 경쟁”은 사실 농업의 시작과 도시화로 인해 발전된 개념이다. 농업이 주요 에너지 확보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 가지 인류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 바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수렵 채집은 현재에 집중한다. 그때그때 사냥과 채집을 통해 에너지를 수집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갈 수 있다. 그러나 농경에서 변화하는 환경은 축복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변수들을 최대한 조절하려고 하는 경향성이 새로 생기게 되었다. 비료나 기계적인 농업이 없던 시절, 병충해 한번, 가뭄 한 번은 목숨과 연결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고, 이는 더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노동력은 거꾸로 1인당 생산성을 떨어뜨리기, 결국 계속된 확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자원의 부족함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과 일 하지 않음을 죄악시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농업이 충분한 잉여생산물을 생산하여 도시가 유지되고 형성되면서, 우리가 당연시하게 생각하는 경제관념이 탄생했다. 바로 끝없는 욕망, 수요의 개념이다. 도시에서 수많은 이방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이방인들 사이에서 사회적 지위를 확립하기 위해, 혹은 단순한 질투로 인해 인간들은 상대적인 욕망을 갖게 되었다. 친족 사회나 부족 사회에서는 혈연을 통해 어느 정도의 구분이 가능하다. 또한 혈연에 기초한 사회적인 질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없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모인 곳에서는 새로운 사회질서와 구분 짓기가 필요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이 전제는 사실 만들어진 것이다/출처: https://medium.com/@debellorumsimulationibus/the-unlimited-wants-c39

결국 이것이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 대전제; 우리들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형성하게  것이다. 그리고  대전제는 우리를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문화와 사회를 만들었다.

  결국  노동은 유기체로서, 그리고 목적의식이 있는 행동을 하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진화와 역사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분석은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열역학에서 진화 생물학으로, 그리고 인류학과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들을 넘나드며, 탄탄한 논리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며 왜 오늘도 일을 하러 가는가에 대하여 고민하는 직장인으로서 그 고민에 대한 학문적인 답을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책을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의 관념과 형태가 생활 형태와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노동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속 가능한 성장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이른바 ESG경영과  지표들이 주요 금융기관들의 투자 요건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동화와 AI 발전으로 점점  많은 기존의 일들이 대체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새로운 노동의 형태를 논의해야 한다.

기본소득과 종교 근본주의 움직임

 저자는 마지막에 새로운 노동과 삶의 형태에 대한 2가지 대표적인 흐름을 소개한다.  번째는 자본주의의 진화이다. 기본소득의 도입,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추구 , 변화하는 환경에 자본주의를 맞추려는 노력이다.  번째는 도그마와 과거의 환상으로의 회귀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종교적 교리나 전통을 삶의 중심에 놓으려는 흐름도 상당하다. 민족주의와 종교 근본주의의 발흥이 여기에 속한다. 다행히 한국 사회는 전자에 머물러 있는  같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최근  52시간 노동을 둘러싼 논쟁은 대체로 생산성과 노동 시간, 그리고 Work Life Balance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보다는  논쟁의 기회를 빌어, 노동과 삶의 형태의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에 맞추어 어떤 사회를 설계해갈지 논의하는 담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참고서적: [Work- a deep history, from the stone age to the age of robots ], James Suzman, 2021, Aud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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