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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소시민 Feb 10. 2024

불안했던 1년 차

일본 회사 관찰기 2

 지난 글에 이어 첫 번째 일본 회사에서 몇 가지 느낀 점과 관찰한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번 글이 나 이외의 사람들에 대한 관찰이었다면, 이번 글은 나 자신에 대한 관찰이다. 1년 차 때 배운 내용을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하지만 학교를 갓 졸업하고 외국에 막 도착한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거나, 잊어버렸던 사실들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과정에서 많은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꼈다. 그리고 언어의 장벽은 항상 나의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는 모두 회사생활과 일본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과정의 일부였던 것 같다.


배운 점


항상 누군가가 공을 갖고 있다


 현재 Task를 누가 왜 하고 있는지를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우리 팀, 우리 부서만으로 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항상 설계팀, 재무팀, 상품 기획 팀 등 다양한 팀이 움직여야 했다. 이때 항상 누군가가 “공”을 갖고 있었다. “공”은 설계서의 확정과 같이 어렵고 복잡한 업무부터 숫자의 확인 같은 간단한 확인 업무, 사실 확인 업무까지 다양했다. 프로젝트 관리에 있어 누가 어떤 공을 갖고 있는지, 왜 그 공이 다음 플레이어에게 전달되지 않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상사나 사수는 항상 “지금 누가 볼을 갖고 있어?(今誰が ボール を持っている?)”를 줄곧 회의에서 줄곧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에서 끝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젝트와 업무의 전체적 구조가 이해되고 나서, 이 질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후 항상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떠한지 가시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프로젝트 관리 툴이 따로 없었기에, 이러한 정보를 메일과 채팅 등으로 취합하여, 엑셀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단순히 상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다.


인식의 확인이 중요하다


 1년 차 때 가장 많이 지적받은 것은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思い込み)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상대방의 인식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확인하지 않고 믿었던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나보다 경력이 많으면 회사의 프로세스를 대부분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상대방 부서가 프로젝트의 진행 프로세스를 숙지하지 못했기에, 1~2주 지연이 된 적도 있다. 항상 나의 인식과 상대방의 인식이 일치하는지, 당연한 것 같아도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원, 매니저를 움직여야 한다


 수직적인 일본 회사의 특성상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위를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나 사수가 부탁하면 요지부동이었던 타 부서 사람들도 우리 부서의 부장, 혹은 그 부서의 부장이 움직이니 바로 일을 처리해 주었다. 왜 해야 하는지 논리적인 설명과 이유 보다 효과적인 것은 역시 위로부터의 수직적인 지시였다. 처음에는 씁쓸했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느낀 점

 

불안함


 돌이켜 보면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불안함이었다. “내가 지금 맞는 길(커리어)에 있는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자료를 이렇게, 장표를 이렇게 만드는 것이 맞나?” 같은 매일매일 업무 수행에서 나오는 고민까지, 항상 불안함을 느꼈다. 학생 때는 항상 정답이 있었다. 수능과 시험은 확실한 정답과 오답의 세계였다. 그러나 1년 차 때 내가 느낀 직장인의 업무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자료의 레이아웃 구성이나 디자인에 확실한 오답은 있었으나 그 외에는 모두 “좀 더 나은” 자료일 뿐이었다. 정확히는 상사의 취향에 맞는 것이 정답이었다. 정답과 오답의 세계에서 16년 이상을 보냈던, 한국 수험 생활에 최적화된 사람으로서는 매 업무가 불안했다.


초조함


두 번째로 강했던 감정은 초조함이다.  입사 전 막연히 갖고 있던 업무에 대한 기대감과 실제 내가 맡게 된 업무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단한 업무만 해서는 과연 내가 여기서 의미 있는 경력을 쌓을 수 있을까? 를 고민하면서 초조해졌다.

  애초에 일본 회사의 경우 신졸직원(대학교를 갖 졸업한 직원)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한국과 달리 당장 가치를 발휘하는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아닌,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채용하여 교육시키고 키우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1년간 회의록 작성, 간단한 자료(장표) 만들기 같은 단순 업무를 하는 하며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계속 이런 업무만 하다가 언제 나의 스킬을 늘릴 수 있을지, 쌓을 수 있을지 초조할 따름이었다.


불편함


 언어의 장벽은 역시 불편했다. 내가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100% 구현해 낼 수 없었다. 회의 중에 의견을 말하려고 해도 갑자기 단어가 생각이 안 나거나, 적절한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는 , 머릿속에 버퍼링이 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인 동기들은 회의록을 작성할 때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회의를 노트테이킹 하고, 정리하여 30분~1시간짜리 회의의 경우, 회의 종료 후 1시간이면 회의록을 완성시켰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회의를 받아 적는 것에만 1시간이 걸렸기에,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작업까지 하면 2시간도 넘게 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의 장벽은 만리장성과 같은 느낌에서 과속방지턱 정도로 낮아졌지만, 1년 차 때 느낀 불편함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년 차 때 배우고 느낀 점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많았다. 지금까지 어떻게 버틴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인들이 부정적인 요인보다 많았기에 지금까지 버티고 남아있을 수 있었다. 일본 회사에서 느낀 긍정적인 요인들도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

 그리고 잠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 너무 불안하고 초조해하지 말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모두 성장하는 과정, 커리어의 일환이니 너무 조급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일을 시작하는 모든 분들, 특히 일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모든 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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