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Damn Place in Bangkok, 2019
This Damn Place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한 여행자로서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감상과 감정,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이해와 노력에 관한 사진 에세이이다.
최초의 태국행 이후로 십 년 가까이 방콕에서 가장 애정 하는 공간 중에 하나였던 Adhere the 13th Blues Bar를 작업하기로 마음먹고서, 굳이 아프리카에 위치한 이집트에서부터 다시 역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더 나아감과 점점 더 선명해지는 복귀의 시기 사이를 고민하다가 발행키로 한 일종의 별책부록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공연 스케줄이 반복되는 라이브 바의 특성을 고려하고 무엇보다도 나의 체력을 고려하여, 딱 일주일 간의 일정을 연주자 그리고 직원들과 관객들의 사이에서 보내기로 한다.
이미 바에서는 (대부분 동안) 긴 머리의 한량 같은 청년이 매년의 불특정한 시기에 나타나 커다란 품의 태국 전통 바지를 팔랑거리면서 백 차례를 넘도록 들락거렸기 때문에 크게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덧붙여 자랑하자면, 한 번은 연주자와 잼(Jam)을 한 적도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될 이에게는 매우 이로우면서도 다행인 일이었다.
단골이라는 핑계로 연주자들에게 친한 척을 하는 일이 성격에 잘 맞지 않는 탓에 짧은 인사 외에 긴 대화를 나눈 적은 많지 않았다. 다만, 이번 작업을 위해서는 모든 연주자들에게 미리 인사를 나누고 양해를 구한 다음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진행 중에 따로 보고 할 사람은 없었지만 매일 출근하는 연주자들과 마주칠 때면 전날의 사진을 일부러 꺼내 보여주고는 했다. 밀린 인연을 한꺼번에 정리하듯이, 사진가와 연주자들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불과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상당한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되었다. 연주자들과 같은 블루스를 타면서도, 연주자들과 공간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됐다. 최악의 상황은 관객들이 이 공간의 환상적인 연주에 집중함에 있어 방해요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배운 것과 생각들이 너무 많아 하나의 글로 적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래도 몇 가지는 적어두고 짚어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시작부터의 가장 큰 고민은 라이브 음악이 가진 특성이었다. 어떻게, 누가 찍어도 그들의 음악을 온전히 사진에 담아내기란 불가능 그 자체였다. 음악이 들리는 사진? 이라는 미사여구를 붙여본들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죽었다며, 재차 내게 말하던 한예종 석사(수료)생의 말이 또 떠올랐다. 그 자식을 모셔와 영상을 찍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거기에 은근슬쩍 내 사진을 끼워 넣는다든지.
비겁한 변명을 고민하기보다 공간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 정신줄을 잡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그냥 그들과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 외에도 등장하는 사소한 그들의 말들에도 더욱 집중하기로 하고. 매일 그날의 감정(블루스)과 그들의 생각을 꿰기 위해서 오랜만에 집중력을 십할(욕이 아님) 가까이 끌어올린 것 같다.
최초의 고민과 같은 이유로, 사진에서는 콘트라스를 뺐다. 강렬한 콘트라스로 사진의 매력과 힘을 쉽게 높일 수 있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연주자의 진실에 해가 되는 일련의 행위를 배제하고자 노력했다. 후보정을 잘 하지 않는 촬영 스타일에 공간의 극심히 어두운 환경은 쥐약이었지만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조리개를 운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F2.0 값에 모든 사진이 고정되었다. 연주자의 움직임을 담기 위해 억지로 ISO나 셔터스피드를 높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셔터는 빛을 취합함에 가장 선호하는 값인 1/60으로 모든 값을 고정하고, 그 위에서 연주자들과 함께 춤췄다.
딱 5일째 되던 날부터, 내가 아니라 연주자들이 먼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연주를 쫓았지만 이제 그들은 사진을 말했다. 5, 6, 7일째는 모두 연주자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고개만 끄떡거리는 게 아니라 나는 어느새 사진기를 들고도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표현하기가 무척이나 간지럽지만 13번지의 블루스 바에서 이 이방인도 함께 블루스를 연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작부터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한 것은 (내가 찍은) 사진이 멋지게 나오는 것이었고, 나아가서 누군가 이 사진들을 보면서 그들의 음악과 열정을 궁금해하기보다는 나의 사진에 관심을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취향은 절대 아니지만 일종의 다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뭐, 기록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시 돌아와서. 이것은 정말이지 이해와 노력에 관한 에세이다. 타인에게 혹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하나다. 진실하게 닿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네게 이를 때, 너 역시 내게 이르므로.
This Damn Place, Adhere the 13th Blues Ba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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