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진의 모든 것, 2019
지난 1년은 여느 해보다도 사진에 광(狂/光)적으로 집착했다. 일견 만족할만한 발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사진가라는 정체성을 붙들기 위해 가산(家産)을 깔끔하게 탕진한 과감한 용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위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환경에서도 크게 변명과 탓을 하지 않고 사진 활동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적인 나의 체력과 셔터를 위한 집중력이 통장의 잔고와 마찬가지로 바닥이 난 까닭에 당분간은 작품 활동을 쉬기로 했다.
몸의 일부와도 같이 붙이던 카메라를 정리하여 떼어 놓으니 어색함도 상당하다. 관성이라는 것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대단하여 나의 일상에 낯설고 어색한 마음을 종종 가져다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좋은 풍경이나 장면이 지날 때면, 괜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감정을 저장하고 싶어 좀이 쑤셨다.
카메라를 잡은 지가 최초로부터 꼬박 20년이 되었다. 이를 생각해보건대, 산술적으로 수를 적은 것뿐이지 과연 나는 어떻게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마음의 창을 다듬어 왔는지가 사뭇 궁금해졌다.
모든 해의 기록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거나 여러 장의 하드(HDD)를 꼼꼼하게 준비해 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도 적지 않았지만 그 또한 내 작업과 성격의 일부이겠거니, 하고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19년의 남은 기간 동안 지난날의 사진인생을 돌아보기로 정했다. ‘A Whole Photography of Mine(내 사진의 모든 것)’이라고 제목을 두고. 낱장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내 호기심과 감정, 셔터를 누르던 순간의 기억들을 되살려 보면서 스스로에게 진실함을 되묻는 과정을 행하게 된다. 작품(作品)이라고 하면 괜히 거창하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가 작품(Work of Art)라고 칭할 수 있을만한 컷들을 골라내는 작업이 쓸데없이 고되고 소모적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관성을 준다.
2007년도가 돼서야 지금의 모체가 된 시선과 마음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므로, 그 해 여름의 미국에서의 여행과 그 기록이 시작점이 되었다. 지금이야 세계일주니 세계여행이니 하는 단어조차도 간지러워서 직접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그때만 해도 아틀라스(Atlas) 라고 하는 종이로 된 지도책을 가지고 미국을 가로질러 여행을 했는데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홀로 두 달간 미대륙을 횡단함’ 이라는 뽕(?)끼가 그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인 이력이었다. 아마 바람의 딸만큼의 필력이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나를 돌아보고 살피는 일은 정말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되는대로 살아가면 편할 것을, 왜 그런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을 벌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치기 어린 2007년의 내가 담고 살았던 좌우명을 다시 꺼내어 답해도 좋을 것이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항상 좋은 사진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혹여 작품의 기교와 마감에는 모자람이 있더라도, 인간과 세상을 향한 시선에는 올곧게 진실함을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만약 앞섬을 다툰다면 그 점에서 최고의 대가 반열에 오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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