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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lalaika Mar 10. 2020

푸나하의 개들

시골의 개들

부탄의 밤은 추웠고 밤의 개들은 시끄러웠다. 동네 모든 개들이 사람이 떠난 거리에 모인 듯했다. 개들은 2분 간격으로 그들의 언어로 짖고 또 짖었다. 부탄 호텔에는 귀마개가 늘 비치되어있단 이야길 들었다. 소음은 곧 적응되었고 귀마개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위해 호텔 로비로 내려갔을 때 준비에 3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릴 거 같단 이야길 들었다. 비수기라 호텔 전체에 숙박객이 나 혼자였다. 민망하게도 십여 명의 직원들이 나 하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 호텔 매니저와 차를 마셨다. 인도와 부탄의 관계, 한국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부탄의 개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는 길냥이가 흔하고 거리의 개들을 드물어요. 부탄에 고양이들은 없어요?"
"고양이요? 고양이들은 밖이 아니라 집에 살아야죠. 저희 집에도 고양이가 있답니다."


부탄에 있는 동안 고양이를 거의 보지 못했다. 푸나하의 사원에서 두 번, 파로 시내 상점에서 한 번 마주쳤을 뿐이었다. 아침 식사는 야채와 달걀, 감자, 오트밀, 소시지 등의 메뉴였다. 취향에 상관없이 보편적인 관광객이 즐길만한 구성이었다.


식당 전체를 나 혼자 사용했다.

동물 살생을 금하기에 소시지를 비롯한 부탄의 육류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한다. 신선도 때문인지 아니면 육류 조리 기술이 발달을 안 해서 인진 모르지만 부탄에서 맛 본 고기 요리들은 대부분 별로였다. 커피 역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인스턴트 커피였다. 원두커피를 파는 곳이 많지 않았는데 부탄에 머무는 동안은 커피 대신 밀크티, 버터 티, 녹차 등의 허브티를 선택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직원이 대기하고 있었고 뻘쭘해진 나는 몇 마디 대화를 했다.

"부탄의 겨울은 정말 춥네요. 너무 추워서 스웨터를 입고 잤어요. 부탄 사람들은 겨울 추위를 어떻게 견디나요?"
"견디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거랍니다.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아요."


담담하면서도 뻔한 대답을 듣고 있다보니 어쩐지 결례를 범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경위도에서 살다온 사람이 감히 이들의 일상을 비평하려 했던 거 같기도 하고. 괜스레 미안해진 마음을 전달하려 했지만 그런 감정의 촘촘한 결을 담은 언어를 구사하기엔 내 영어가 부족했다. 

나보다 항상 먼저 와서 기다리던 가이드 소남이 오늘은 조금 늦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늘의 행선지인 푸나하에는 그의 처가가 있었다. 처가는 푸나하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곳에 배달할 콩기름을 한 통 구해서 오느라고 시간이 걸렸던 것이었다.


"혹시 너무 추워서 밤새 개들이 짖는 게 아닐까요? 추워 추워하고 말이죠."
"부탄 개들은 낮잠을 자잖아요. 그렇게 태양 에너지를 한껏 충전하고 밤에 그 에너지를 분출하는 거죠. 개들은 전혀 문제 없답니다."

도출라 패스에서 보이는 히말라야 산맥

내가 개에 관심을 보이자 가이드 소남의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부탄의 동물들로 넘어왔다. 희귀 동물 타킨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었고 애써 풀을 뜯는 야크를 찾아 차를 세웠다. 사진을 찍으려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소남이 화들짝 놀라 말렸다. 지난 달에 관광객 하나가 야크 사진을 찍다가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최대한 차를 근접 조우해서 사진을 한장 찍을 수 있었다. 그의 경험상 수컷 야크가 예민하고 공격적이라고 했다. 

푸나하 근방에선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야크


푸나하로 넘어가기 전 히말라야 산맥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도출라 패스를 지났다. 한낮이었지만 고지대의 도출라 패스는 추웠다. 춥고 높은 언덕 위에도 어김없이 개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해발 고도 4786m를 멀쩡히 견디는 부탄의 개



도출라 패스의 개들


팀부에 비해 고도가 낮은 푸나하에 닿자 날씨는 봄날처럼 변했다. 부탄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승려 중에 하나인 치미 라캉의 사원에 들렸다. 명성에 비해 사원은 작고 허름했지만 이곳에서 처음으로 부탄의 고양이와 만날 수 있었다. 부탄의 개들처럼 고양이 역시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고 클로즈업으로 들어가는 렌즈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치미 라캉 사원의 고양이들


이틀쯤 같이 시간을 보냈을 때 그간 과묵했던 드라이버 타시의 말문이 열렸다. 여성이 운전하지 않는 알 수 없는 부탄의 운전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오토매틱을 쓰지 않고 수동 변속으로 운전한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페이스 타임으로 그의 여자 친구를 소개받았다. 부탄 사람들은 내게 그의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소개하고 그들에 관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곤 했다.

"길 건너 3층 커튼 달린 집 보이십니까?"
"저기도 유적지인가요? 일반 건물처럼 생겼는데..."
"우리 큰아버지가 살던 집입니다. 큰 아버지는 인도에서 배관을 수입하는 일을 하셨는데 부자셨죠. 집이 두 채여서 그중 하나를 별장처럼 썼답니다."
"이야길 듣고보니 저 집도 가격이 꽤 나가 보이네요."
"그런데 지금은 이사 가셨죠."

부탄에서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의 TMI로 맺음되곤 했다. 



푸나하의 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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