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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손 Mar 26. 2020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국내 금융 서비스 디자인

외국인들과 진행한 국내 금융 서비스 디자인 인터뷰

최근 외국인 친구 함께 서비스 디자인 관련 테스트 및 인터뷰를 진행할 일이 생겼다.

나는 본업이 디자이너지 테스트나 인터뷰 업무에 전문가는 아니다. 따라서 글로 배운 선에서 이런저런 테스트를 진행해 보았다. 누구는 연애도 글로 배워서 한다는데 업무도 글로 배워서 할 수 있지 않겠나?

업무 내용은 보안이 필요한 부분이고 인터뷰한 내용 중 흥미로운 것들이 있어서 브런치에 정리해보았다.


한국의 디자이너가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 베르사체를 입고 왔다




프라이버시한 정보가 너무 잘 보인다


금융서비스 대부분은 은행/카드/증권/보험을 불문하고 잔액, 결제액, 대출 가능금액 등의 프라이머리 데이터를 크게 쓰는 경향이 있다. 프라이머리 데이터를 크게 쓸 경우, 화면 내에 핵심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시원한 대비감을 통해 타이포그래피적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


다만, 이점을 매우 불편해했다. 숫자는 민감한 정보인데 너무 시원하게 보이니 조금 더 작게 조정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2011년, KB국민은행 전체 개편 때 일화가 생각났다. 당시, 금융권은 박스 일변도에 올록볼록한 느낌으로 매우 답답한 느낌이었는데 타이포 그래피 중심의 미니멀한 느낌, 최소한의 박스, 가벼운 일러스트 등을 이용해 경쾌한 디자인을 하고자 하였다. 

이때, 나름 국내 최초(?)로 잔액 정보를 시원한 타이포로 구성해 보았는데 고객의 반대에 부딪혔다.

잔액 정보가 민감한 정보이기도 하고 0원인 경우는 마음 아픈 숫자인데 꼭 그렇게 대빵만 하게 보여줘야겠냐는 반대의견. 나도 그 반대 의견에 수긍을 하였도 고객의 의견대로 디자인했다.


생각해보면 금액 정보는 읽을 수 없는 크기로 쓰지 않는 이상 꼭 봐야 할 정보이기 때문에 굳이 크게 써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파악할 정보이다. 잔액 정보는 몇십 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어머니의 얼굴과도 같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안 가져온 아들에게 우산 들고 마중 나가는 어머니가 아들이 멀리서 얼굴을 못 알아볼까 봐 걱정되어 본인 얼굴이 3배로 프린트된 피켓을 들고 계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비유를 드니 나이 인증. 90년대에는 비 오는 날에 초등학교 앞 우산을 들고 서계시는 어머니들이 굉장히 많았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공감할 것이다.)


디자인에 있어 기능과 합리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아름다움도 디자인의 필수 요소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꼭 프라이머리 데이터를 대빵만 하게 쓰는 것 일변도인 것은 디자이너로서 아쉽다.

이건 플랫 디자인 시대에 할 것도 없어서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방법을 찾아야 한다.


프라이머리 데이터를 크게 쓰는 게 무조건 틀린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을 UX 디자이너로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는 이야기다.




원하지 않는 정보를 너무 많이 보여준다


현장에서 화면을 기획할 때 보면 "편의성을 주는 것 = 원하는걸 먼저 파악해서 보여주는 것"이라 전재하는 경우가 많다. 뭐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1차원적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로그인을 하자마자 다음의 정보들이 노출되는 것이다.


카드사

1) 이달의 결제금액 2) 차월 결제 예정금액 3) 전체 이용한도와 현재 이용 가능 한도 4) 현금서비스 이용 가능금액 5) 카드론 가능금액 등의 정보를 노출함.


은행

1) 예금 계좌 잔액 2) 대출 계좌 잔액 3) 자산 현황 요약 4) 예상 대출 가능 상품 등의 정보를 노출함.


위 두 사례를 보자. 

누군가는 매우 편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저런 메뉴를 뒤지지 않아도 우리가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이 다 나오는 점을 맘에 들어할 것이다.

한편 누군가는 별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 정보들은 한 개인의 재정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정보이며 당장 확인하고 싶지 않은 정보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예민한 사람이 그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제나 화를 내는 사람은 예민한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하튼 국내 금융서비스는 돈에 관련된 정보나 기타 개인정보에 관련된 사항들을 너무 쉽게 마구잡이로 뿌려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시는 로그인한 직후로 들었지만 서비스를 사용하는 맥락 전체에 대한 이야기다.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모두 몰빵으로 몰아서 한 번에 보여주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방식은 너무 얄팍한 방식일 수 있다.

사실 원하는 정보를 찾는데 버튼 한번 더 누른다고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확인할 정보를 예상해서 한 템포 빠르게 보여준다고 너무 신나서 카드를 더 긁고 적금을 더 드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제일 좋은 것은 기본적인 것을 잘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헷갈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용자에게 편리할 것 같은 기능과 정보를 마구잡이로 때려 박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닌 듯하다.


적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사를 하나 끼워 넣고 싶어서 하나 언급해본다.

삼국지에서 양수라는 조조의 참모가 있는데 매우 영리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전장에서 조조가 밥상머리에 닭갈비를 주문하는 것을 보고 군사들에게 철군 준비를 지시한다. 먹기는 부족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닭갈비가 지금 하는 전쟁에 대한 비유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조조의 의중을 맞추긴 했지만 군주의 마음을 함부로 알고 깝친 죄로 양수는 목이 잘려 죽었다.


유저의 의중을 함부로 예상하고 깝죽거리는 UI를 만들면 안 된다는 교훈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 이미지가 너무 이쁘다


국내 금융사는 서비스 메인이나 인트로에 계절 이미지를 넣는 경우가 있다.

현장의 디자이너들은 이를 매우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뭔가 음악으로 치면 뽕짝을 만드는 기분이랄까?


사실 나도 직전의 프로젝트에서 인트로 이미지 시안중 하나는 계절별 이미지로 가는 게 어떻냐는 기획자 의견을 완전히 묵살한 적이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고객 측의 디자인팀에게 묵살해도 좋은지 의중을 물었는데 내 의견에 동의하셨다. 혹시나 늙으신 분이 이발소 같은 계절 이미지가 좋다고 채택당할지(?) 모르니 시안 중 하나로도 보여줘선 안된단 고객 디자인 팀의 의견.


여하튼 몇몇 외국인 분들께 물어보니 이 계절 이미지는 매우 호응이 좋았다. 자기 고국에서는 절대 이런 게 없다는 것이다. 그냥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기분이 좋다는 것.


아주 오래전 디렉션했던 하나은행 1Q뱅크의 웹사이트. 현재는 세월이 오래 지나 개편한 상태로 내가 참여한 버전은 아니지만 풍경 이미지를 크게 쓰는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


예전 부산행 영화에서 마지막 공유가 죽을 때, 가족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들은 역시 코리아 패치라면서 매우 분개했는데 정작 외국인들은 좀비가 가족을 생각하는 것에 반전감을 느끼며 신선하다는 평가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에게 계절별 이미지는 진부하고 촌스러운 것이지만 외국인에게는 금융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신선한 요소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요즘 금융권이 무분별하게 사용 중인 캐릭터들은 매우 싫어했다.


"도대체, 한국은행은 왜 이렇게 마스코트가 많아요? 여기저기 너무 나와서 지저분해요."


솔직히 나도 요즘 왜 이렇게 금융사가 캐릭터 한마당인지 모르겠다. 그 맥락도 이해가 안 가고. 

옛날에 은행에서 캐릭터 쓰는 것은 꿈돌이 통장이나 동물나라 통장 같은 애들 것에나 그랬던 거 같다.

계절 이미지는 이미지 선정 능력에 따라 이발소가 될 수도 있고 멋진 디자인이 될 수도 있다. 캐릭터는 사실 뭘 해도 차일디쉬 한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내 디자인 상상력이 부족한 걸 수도 있지만.


여하튼 교훈은 이렇다. 

우리가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새로울 수 있고, 지저분한 디자인은 인종/국가를 막론하고 누구나 싫어한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내용은 아니고 인터뷰에 표본 설정을 정확히 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다른 나라 사람의 시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디자이너, 특히 UX 디자이너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수록 이익이다. 삼성의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강조했다는 경청의 자세야 말로 UX 디자이너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사실 훨씬 많은 내용을 이야기 하긴 했지만 글을 길게 쓰다 체력의 한계가 와서 세 꼭지 정도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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