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미착용시 벌금이 시작됐다. 집을 나서기전 엄마에게 예비용 마스크 가방에 챙겨다니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진즉부터 챙겼다며 빨리 나가라고 했다.
딱 한블럭 움직였는데 오랜만에 파지 줍는 리어카가 보인다. 지나치는데 귀에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블루투스 이어폰 음량이 조금만 더 컸으면 못듣고 지나쳤다.
쳐다보니 말을 이어가신다. "여기 올라가는 것만 좀 도와주세요." 내가 가던 방향과 아저씨가 가던 방향은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이다. "가시죠." 말을 하고 뒤에 붙는다.
민다. ????? 엄청 무겁다. 이걸 어떻게 혼자 끌고 다니지? 싶을 정도였다. 살면서 두어번 정도, 너무 힘들어보이셔서 도와드릴까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정중한 거절을 받았다. 이번이 처음 밀어보는 것이다. 헬스장에 온 느낌이었다.
오르막을 지나고 갈림길이 나왔다. 내가 가려던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길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다. 나는 반대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동네 고물상은 여기서 한참 더 올라간 그곳밖에 없는 것을 나는 이미 안다. "좀 더 가시죠" 노인은 매우 좋아하셨다.
짧은 길을 동행했음 몰랐을 디테일이 보인다. 오늘 하나도 안춥긴 한데, 하얀 난닝구 하나 입을 날씨는 아니지 않나? 하루종일 태양에 탄 팔뚝이 훤히 보이는 반팔 한장이다. 이걸 밀고 다니려면 저게 맞는 것도 같다.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앞모습이 떠오른다. 이 할아버지. 마스크 안했다. 말을 걸때 뭔가 못보던 풍경이다 싶었는데, 밖에서 오랜만에 코와 입을 드러낸 사람이 내게 말을 건 것이었다.
아까 챙기라고 한 예비용 마스크, 정작 나는 가방에 안 챙겨나왔다. 아아. 챙겨올걸. 이분도 과태료가 부과되려나. 뉴스는 보셨을까. 어제부터 마스크 안끼면 안돼는데 알고는 계시려나. 마스크 사는것도 고정지출이라 부담이 크실 수 있겠는데. 우리 구는 파지 리어카에 모터 달아주는 사업 안하나? 다른 구는 그런 사업 많이 하던데. 등등 이런저런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간다.
어느덧 내가 밀어드릴 수 있는 구간이 끝났다. 여기부턴 평지다. 안녕히 가세요. 지하철은 됐고, 버스를 타고 가기로 동선을 바꿨다. 버스를 기다린다. 문득 노인이 신으로 느껴신다. 작은 선행을 베풀 기회를 준 신. 익명성의 도시에서 일면식도 없는 완벽한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행위는, 신만 할 수 있는것 아닐까.
신을 다시한번 보고자 가서 보니 다른 사람이 밀어주고 있었다. 신은 다른 사람에게 또 기회를 줬다.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밀어주는 이의 뒷모습도 신으로 보인다. 심지어 환자복이었다. 여기 병원 앞이다.
글이 너무 하늘로 가니까 땅으로 데려오자. 노인에게서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신의 생계를 돌보려는 존엄성. 인생에 더 좋은 반전의 계기가 없다한들 방에 쳐박혀 술에 자신을 절이는 선택이 아닌, 밖으로 나와 고될지언정 사는것처럼 살아내는 삶.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의 책임을 느낀다. 사람이 사람답게 함께 살아가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평생을 고민하고 살아내야 할 것이다. 거창한거 못해도 이 마음을 잃는 순간 인간의 형상을 한 다른 무엇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