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만.. 쇼핑에 눈을 떴습니다..
보름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약간 낯설었다.
오. 집이 낯선 느낌 꽤 괜찮은데. 하며 짐을 풀고, 선물로 사온 물건들을 잔뜩 꺼내놓으며 미국조아를 딸과 번갈아 외쳐대자 신랑은 고약한 미국병에 걸렸다면서도 나름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여행 전, 나를 면세점에 데려가 갖고 싶은 가방이라며 보여준 그 직장인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배낭도 내가 떡하니 사들고 돌아왔으니 신랑은 더없이 기뻤겠지.
우선 그 가방은 매우 비쌌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싼 가방이라 어이어이 정신 차리시게 하며 휙 돌아설만한 가격이었는데. 공항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러 휴가까지 낸 사위를 본 친정부모님은 살짝 감동 비슷한 걸 느끼셨는지. 어쩐지 그 메이커 가방을 파는 면세점에 자꾸 나를 데리고 들어가 하나 사주라며 자꾸 독촉을 하셨다. 특히 가방 좋아하시는 우리 친정엄마. (아버지는 가격을 보시고서 뒷걸음질...)
사위가 그리도 꿈에 그린다던 그 메이커의 가방을 이미 세 개나 갖고 계신 엄마는 여행용 여권가방이라며 어깨에 척하니 메고 나오셨고. 또 막 쓰는 여행가방이라며 비행기 안에 들고 들어갈 꽤 큰 손가방으로도 이미 챙겨 손에 들고 계셨다. 또 하나는 집에 굴러다닌다며 나에게 하나 주겠다고 하셨으니 이 부르주아 장모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신랑의 눈이 더 구슬퍼 보였나 보다.
이리 미쿡여행까지 보내주는 신랑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들어 면세점에 가서 둘러보기는 했다. 15% 정도 세일 가격으로 가격을 흥정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어째. 너무 비싼걸. 게다가 이 부피 큰 가방을 여행 내내 들고 다녀야 한다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귀찮더라고.
비행기가 뜨고 긴긴 비행시간이 시작될 무렵 나는 드디어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나란히 네 칸을 차지하고 앉은 딸아이와 친정부모님. 우리 넷은 이제 미국 여행을 떠난다!
딸아이가 잘 버틸까 살짝 걱정도 했었지만 여행 내내 아이는 생각보다 잘 버텨주며 잘 적응했다. 이리저리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장기 여행 중 주로 잠을 선택하자 싶었는지 심한 헤드뱅잉을 하며 주로 잠들어 있었지만, 이내 버스가 서면 후다닥 내려 화장실도 가고, 마트 구경 후 먹을 것도 사며 재밌어했다.
다만, 미쿡스테이크와 미쿡햄버거를 잔뜩 기대하고 갔었으나 여행 이틀째가 넘어가도록 어찌나 한식 식사 집에만 들어가는지 한국에서도 잘 먹지 못했던 갈비탕이며 차돌박이, 삼겹살 등을 우선 실컷 먹어야만 했다. 패키지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잽싸게 내려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제시간에 딱딱 맞춰 돌아오지 않으면 가이드 아저씨께 무안당하고. 하지만 뭐 이 많은 인원들을 움직이자면 한편 어쩔 수가 없겠구나 이해도 됐다.
미국 서부 여행을 가고자 현지 가이드를 신청해 모인 인원이 자그마치 51명이었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 환전을 부탁한 신랑이 "현금이 뭐 필요하겠어.."하며 몇 백 불 얘기를 하길래 내가 몰래 바꿔둔 돈이 1000불 정도 있었다. 아이 이름으로 여행자 보험을 드느라 300불 추가로 했고. 친정아버지께 여쭤보니 1300불 정도 해두었다고 하시길래 나도 그럼 그만큼 해두지 뭐. 하며 랄랄라 하고 있던 와중 신랑이 턱하니 2000불을 환불해 왔다. 어어.. 이거 왜 이리 많이 줘. 했더니 다 못쓰면 남겨와서 다시 환전하면 된다길래, 이 돈 저 돈 다 챙겨서 가방에 나누어 숨겼다.
여행 둘째 날, 가이드 아저씨는 그 '선택관광'(추가로 돈을 내고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관광)이라는 거에 대한 설명을 신명 나게 하시며 여기까지 와서 이걸 안 보면 안타까워, 저걸 안 보면 바보 같아, ..를 연신 외쳐댔다. 첫째 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었는데 이게 입장료가 150불이라, 생각보다 높은 입장료에 좀 놀라있었다. 가보니 에버랜드 업그레이드판이라고 느껴지더만, 가이드분의 깃발을 보며 우르르 이동하며 세 개쯤 돌아본 뒤엔 딸아이와 스타벅스에 널브러져 있었다. 딸아이를 위해 특별히 이걸 신청해주셨던 친정부모님은 오히려 재밌어하시며 열심히 깃발을 쫓아 마지막까지 모든 일정을 쫓아다니셨다.
둘째 날 저녁엔 자그마치 190불짜리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는데, 예전 다른 여행에서 비싸기만 하고 재미없던 공연을 보셨다던 친정부모님이 안 보신다고 하시길래 그럼 우리도 보지 말자 하며 신청을 안 했다. 그 외 다른 일정들도 뭐 크게 관심은 없는데,. 하며 흠하고 있던 차, 여기까지 와서 안 해보면 어쩌냐 하며 나머지 일정을 거진 대부분 신청하시자는 친정아버지를 쫓아 얼결에 신청서를 작성하고 금액을 계산해보니 거진 한 사람당 500불의 추가 비용이 책정되었다.
그 많은 인원들이 거진 대부분의 추가 일정들을 다 신청하는 것 같았고, 얼추 계산해도 500불 X51명 = 25백만 원이 넘는 현금이 걷혀졌다. 가이드 서비스 비용까지 하면 100불씩이 추가되고, 그 비싼 공연도 반 이상의 인원들이 신청했으니 못해도 30백만 원..
나는 그날 저녁에 방에 들어가 도대체 뭘 해도 비싼 이 추가 관광의 입장료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는데, 이게 성수기냐 비수기냐 따라, 또 공연의 종류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했지만. 못해도 30% 정도의 수수료가 더 붙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만 해도 싸게 간 사람은 110불 근처로 입장료를 샀다고 했는데 우린 150불이었고 했으니.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끼리 거기까지 이동할 수도 없고, 표를 사가지고 들어간다 한들 혼자 들어가면 1-2곳의 줄을 서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하니 역시나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관광을 하자면 이 수수료를 지불하며 비싸게 여행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나는 어차피 돈이 많은 관광객이었으니 이쯤이야 뭐 하며 제법 여유롭게 지불할 수 있었으나 친정아버지는 사정이 달랐다. 내가 알기로 1300불 환전하신 게 전부이신데 1000불 가까이를 추가선택 여행비로 내시면 나머지 일정에 쓰실 돈이 없지 않은가. 옆에서 지켜보니 100불짜리 다 집어넣고, 10불짜리 20불짜리까지 섞어가시며 비용을 계산하고 계셨다.
아부지, 나 돈 많이 환전해왔어요. 이거 쓰세요. 하며 100불짜리 5장을 건네드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펄쩍 뛰시며 그러는 거 아니다 하며 한사코 잔소리를 하시더니 며칠 있다 모두 돌려주셨다. 아버지가 얼마를 환전해오셨는지 모르는 엄마는 마트에 들를 때마다 체리며 오렌지, 사과 등을 사며 좋아라 하셨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를 찾으며 돈을 내놓으라 하셨다. 갖고 있는 돈이 얼마 없는 아버지는 잔소리도 없이 갖고 있는 돈을 내주셨는데 그런 아버지가 영 위태로워 보여 나중에 엄마 안 보실 때 다시 아버지 손에 돈을 쥐어드렸다. 좀 민망해하시며 거절하려 하시길래, 그럼 나중에 아들 집 가서 며느리 손에라도 좀 쥐여줘야지 않겠냐며 설득을 했다. 아버지, 시아버지가 돈이라도 있어야지, 여러 날 머무실 건데 돈도 없고 그러면 며느리가 싫어한다.. 했더니 "지랄한다."하신다.
현금이 너무 많아 좀 덜 가지고 나갈까 했더니 다행스럽게도(?) 여행 둘째 날에 이미 1000불이 나갔고. 아버지 500불 드리고 나니 1800불이 남았다. 오히려 좀 맘이 편했다. 아이 가방에 따로 두었던 비상금도 내 지갑에 넣어 합쳤다.
그래도 내가 같이 나와서 아버지 곤란함 좀 덜어드렸다고 생각하니 그게 참 기분이 좋았다. 알바 열심히 해서 비상금을 많이 챙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려서 아버지 덕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모르고 자랐었다. 아주 풍족하진 않았어도 탄탄한 아버지의 직장 덕분에 우리 삼 남매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생활비 모자라다며 엄마는 종종 툴툴거리셨지만, 월급에서 우선 목돈을 떼어 부지런히 저축하며 사셨기에 여태껏 우리 삼 남매에게 생활비 얘기 없이 두 분이 씩씩하게 잘 살아오고 계신다. 최근에서야 현금이 좀 없으신지 엄마가 전에 없이 좀 걱정을 하시길래 아버지 주머니가 이제 좀 비어가는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다.
미국 서부는 근사했다.
나는 사막이 좋았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하늘은 광활하고 맑으며 한낮에는 습기 없는 뜨거운 공기로 정신이 아찔했지만 어쩌면 아직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그 드넓은 뜨거운 땅덩어리가 신비로웠다.
그랜드캐니언을 경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쯤 날아다니며 돌아보는 선택관광이 있었는데 나는 무서워 생각지도 않았을 그 코스를 아버지가 가장 설레며 신청을 하시길래 따라 탔었다.
경비행기는 생각보다 너무 작고 낡아서 타기 직전에 가장 떨리고 무서웠는데 순식간에 공중으로 올라가 하늘을 날았다. 그 시끄러운 굉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평화롭고 행복해 이대로 떨어져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비행기 안에는 제 친정부모와 딸아이가 있었다죠.)
그랜드 캐넌의 크기가 대한민국 땅덩어리만큼 크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그 광활한 사막 안에 에메렐드 빛 강이 흐른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때론 그 물길 위에 수십 채의 배와 요트가 띄어져 있었고, 어디서 무얼 타고 도달한 건지 사람들도 종종 그 배 위에 앉아있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장 기대했었는데 역시 좋았다.
곰은 못 만났지만.
달리는 버스안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이나 들판도 너무 좋아.
샌프란시스코도 완전 좋아.
의외로 내가 가장 화끈하게 흥분한 곳은 아울렛이었다.
일주일의 패키지여행 중 딱 한시간반만의 시간을 할애해 준 그 곳에서 나는 딱. 그 비싸디 비싼 배낭을 딱 203불의 가격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한국의 면세점에서조차 500-600불 사이의 가격이었던 그 배낭은-약간의 디자인이 다르고 천재질이 다른 듯 했으나-그건 애써 외면하며 오로지 그 마크! 신랑이 등짝에 한번 매 보고 싶다던 그 마크의 가방을 딱 203불에 만나고야 만 것이다.
오. 계속 사위에게 가방을 사주라며 닥달하던 엄마도 가격을 척 보더니 사줘야겠네. 하며 유유히 본인의 물건을 보겠다며 냅따 사라지셨고, 나는 거의 망설임없이 그 가방을 겟 해서 나왔다. 조그마한 소품 가방도 보여주며 어찌나 "굿프라이스!"를 친절하게 외치며 계산기를 두둘기는지 그 미국점원의 정성이 갸륵하여 18불정도 하는 소품가방과 허리띠까지 챙겨 제법 큼직한 가방을 어깨에 척.
이미 40분의 시간이 지나있었고 옆에 있던 딸아이는 왜 자기것은 안사주냐며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어이어이. 여긴 교보문고에 딸려있는 대형문구점이 아니라고. 명품아울렛이라고 이 아가씨야.. 하며 에어컨이나 쬐자 하며 들어간 그 상점에 이쁜 잠바가 40불. 어.. 이거 괜찮은데 하며 아이에게 척 입혀보니 어찌나 또 날씬해보이는지 우린 그만...샌들까지 하나 골라 같이 계산을 해버렸다.
어떠랴. 나는 현금부자 아니던가. 내가 또 언제 미국에 온단 말인가. 아 여긴 정말 물건이 싸구나! 내가 한국에서 그리 돌아다니며 편한 샌달을 찾아다닐때 뚝하면 20만원이 훌떡 넘어버리던 가격에 차마 미친 가격이라며 고개를 떨구며 빈 손으로 나오고야 말았는데. 아니. 미쿡은 샌들이 18불이야! 근데 완전 편해! 게다가 메이커래! 옴뫄.
쇼핑엔 관심이 없어요, 없다구요~ 하며 외국나가서 쇼핑즐기겠다는 녀자들을 좀 삐딱한 눈으로 봤던 모든 무지함의 순간들을 깊이 반성합니다. 예. 그렇군요. 싸고 좋은 물건이 많군요. 이건 한국에서 사면.. 이라는 기준으로 보니 살 수록 돈을 버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키게끔 차이가 엄청 컸다.
미국가면 딴 거 말고 여기가서 운동화는 꼭 사라고 했다던 이모의 충고에 따라 그 신발가게를 찾아갔더니, 운동화가 20-40불 사이였다. 온갖 샌들, 슬리퍼 등도 너무 편하고 이쁜게 많았는데 더 싸. 게다가 두 개 사면 두개째 신발은 50% 할인이래..
나는 거기서 조카운동화, 딸아이운동화, 시어머니운동화, 동서 샌들, 내 슬리퍼, 울언니 운동화..를 샀다. 모두 합쳐도 우리나라에서 나이키신발 한개 값도 안된다! 만세!
중간 어디쯤인가 사막 한가운데에 약을 파는 상점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사지 말라며 아버지가 소곤거리셔서 알겠어요..하며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였었는데. 잠깐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마구 뛰어다니며 바구니에 약을 골라담는 50명의 물결에 뒤섞여 나도 그만 꽤 여러개의 비타민과 영양제를 구매하고야 말았다. 절대 아무것도 사지 말라던 아버지도 어느샌가 "이건 한국에 없다더라.."하며 몇가지 약을 담아오셨다.
하루에도 여러잔 커피를 마시던 나에게 여행 중간에 커피를 마실 공간같은거는 거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중간 휴게실에 스타벅스가 존재하면 나는 화장실을 포기한채 부리나케 뛰어나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 쭉쭉 마셔댔다. 희안하게도 미국 스타벅스에서는 예외없이 내 이름을 물어보고 컵에다가 적어주었는데 어느 한명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한다거나 스펠링을 적는 이가 없어 중간부터는 슬그머니 '릴리'라고 알려주었다. 옆에 있던 딸은 엄마가 왜 릴리야 하며 비웃었는데, 뜻을 찾아보니 백합.. 등의 온갖 순결한 것들이여서 좀 잘못지었군 하는 느낌은 있었더랬다.
마트에 들를 때마다 체리가 싸다며 떨어질 날 없이 사던 체리, 날마다 사과를 드셔야 하는 아버지를 위해 사과를, 온갖 과자에 눈독을 들이는 딸아이때문에 과자, 커피는 종류별로 마셔보자 하며 커피를. 이렇게 주렁주렁 먹거리를 들고 다니다 어느 날엔부턴가 못할 짓이다 싶어 아버지의 사과말고는 일체 물건을 사지 않았다.
여행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던 친정아버지를 배려해 가이드아저씨는 우리 네 가족에게 항상 버스의 가장 좋은 자리를 배려해 주셨고, 엘레베이터가 없던 어느 숙소에서도 무조건 일층으로 우선 배정을 해주셨다. 나는 덩달아 아버지를 따라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는데, "이제 패키지여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끼치는 몸이 되면 그만 다녀야지.." 하시던 아버지 말씀에 좀 슬펐다. 그러고보니 70이 훨씬 넘은 연세에도 꿋꿋이 잘 걸어다니시고, 식사도 잘 하셔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젊은 사람들조차 힘들어하는 이 일정들을 큰 무리없이 잘 즐기고 계셨다.
걱정이라면 오히려 엄마쪽이었는데 엄마는 여행 내내 잠을 잘 못주무셔서 항상 피곤해하셨다. 몇일 동안 예민해하시다가 할수 없이 한국에서 준비해 온 약을 좀 드시고 하루씩 편안하게 주무시는 듯 했다. 두시간마다 꼬박꼬박 들르는 화장실에 가장 빨리 달려가는 사람 역시 우리 엄마셨는데, 엄마가 이제 나이가 드셔서 화장실 문제로 좀 스트레스를 받으시는구나 생각하니 좀 슬펐다. 아버지는 그게 심리적인 거라며 엄마에게 강박이라며 짜증을 내시곤 했다.
예전에 화장실 때문에 굉장히 곤란했던 적이 두번인가 있었는데 그것때문에 괜한 심리적인 불안감이 생겨 그런거라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 진짜 마려운거야.. 그냥 불안해서 그러는거야.. 했더니. 정말 화장실에 가면 일을 급하게 보신다고 해서 역시 나이가 드셔서 그런거구나 하며 아버지께 엄마를 다그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아부지, 엄마 진짜 급하시데요. 심리적인 거 아니구 진짜 화장실 급하게 가고 싶으신 거라고.. 했더니 아버지도 모르셨던 모양인지 그 뒤로는 잔소리를 안하셨다.
일주일의 패키지여행을 마치고 우리 일행중에 10명정도는 하와이로 넘어간다고 했다. 우리는 동부에 있는 남동생네로 넘어가기로 했고, 나머지 일행들은 한국행.
질서있게 잘 움직이고, 큰 사고 없이 도란도란 재미나게 여행해온 일행들에게 아쉬운 인사를 하고 우리 네 가족은 국내선을 타기 위해 먼저 공항에 내렸다.
비록 일주일이지만 밤낮으로 재미난 얘기를 해주신 가이드아저씨에게도 아쉬움이 느껴지고, 일행들 얼굴 생각하니 서운함이 일었다.
나름 재미나군. 이 패키지 여행이란 것도 꽤 괜찮네. 다음엔 애 두고 나 혼자 신청해서 함 와봐야지. 룰룰랄라 공항에 내려 비행기편을 찾아본다.
자 이제 다시 일주일간의 동부여행이 기다린다.
피곤하고 지치지만 다시 새로운 설레임이 솟는 기분.
동생과 올케, 우리 조카들.
조금 있다 만나.
(다음 편에 계속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