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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r 24. 2019

나는 왜 이 남자와 헤어지지 못하는가

어렵게 이유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이번 일을 5개월 넘게 하고 있으니 이 사건은 거의 세 달 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시간이 지나 좀 이성적이며 객관적으로 상황이 판단될까 싶어 다시 한번 사건을 생각해본다.

 알바를 한지 두 달이 넘은 어느 주말에 아침으로 베이글을 먹고 싶다는 딸의 말에 씻지도 않고 그대로 동네 상가에 나가는 길이었다. 나간 김에 그동안 모은 약간의 목돈을 신랑의 마이너스 통장에 넣고 통장정리도 할 겸 은행 ATM기에 들렀다. 월급이라고 하나 임시직이고 그 일을 다니며 밥도 사 먹고 커피도 사 먹고 옷도 사고 머리도 해야 했으므로 그 모든 걸 제한 나머지 금액이었다. 그래도 이 알바로 모이는 작지 않은 내 소중한 목돈으로 어서어서 그 지겨운 마이너스를 꺼야지.. 하며 제법 기특한 맘으로 통장정리를 하는 순간. 어. 이거 잔고가 왜 이렇지. 며칠 전에 신랑의 급여가 들어왔고 카드값이 빠졌고 대충 얼마 정도 있어야 할지 감이 있었는데  금액은 그보다 훌쩍 내려간 상태였다.                                              


 통장정리를 해보니 500만 원 정도가 시어머니에게 이체되어 있었고 먼저 든 생각은. 시부모님 중에 누가 아프신가. 또 무슨 일이지.. 털레털레 빵과 크림치즈를 사들고 들어와 자고 있던 신랑을 깨워 시댁에 무슨 일이 있냐 물어봤다. 왜.. 잠결에 물어보는 신랑에게 500.이라고 얘기했더니. 움찔하며 돌아오는 대답은. 시어머님이 뭔가를 만드셔서 지인을 통해 파는 일을 가끔씩 하시는데 그 재료값으로 빌려 달래서 보내드렸다고 했다. 

 아.. 그랬어... 그래. 이젠 뭐 놀랍지도 않네.. 하며 돌아서는 나를 보며 신랑은 휴 하고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빵을 데워 아침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도록 신랑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걸레질이라도 좀 도와줘.. 어. 알았어. 알았어.. 하며 여전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신랑을 쳐다보다 그대로 물걸레기에 젖은 걸레를 끼워 돌리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스르륵 흐르던 눈물을 시작으로 나는 금세 꺽꺽거리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윙윙 울리는 걸레기를 들고 거실 이곳저곳을 밀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신랑이 다가와 "내가 할게, 내가 해.. 왜 그래..?" 하는데 나는 매몰차게 걸레기를 뺏어들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가지를 치며 나는 생각의 지옥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머님이 뭔가를 만들어 막내 이모님을 통해 그녀의 지인들에게 팔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건 무슨 약재 같은 걸 다려 만든 거였는데 나름 인기가 좋아 재미를 봤다며 그 돈으로 몇몇 가전제품을 바꾼 걸 지지난 명절부터 봤으니 말이다. 냉장고도 바꾸시고 전자레인지도 바꾸고. 화장실 앞 깔판, 슬리퍼, 그릇 등 소소한 살림들이 말끔한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뭐라도 하셔서 용돈벌이라도 하시나 보다 하고 더 이상의 신경을 쓰진 않았었다.

 하지만 그 일을 계속하시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거였다면 그 재미 본 돈을 모아 남겨두어야 하지 않았나.

 왜 그 일을 하기 위한 돈을 아들에게 요구를 하는 건가.

 왜 저 사람은 그 돈을 내게 상의도 없이 훌쩍 보내 놓고 들킨 다음에야 아무것도 아닌 일인 듯 얘기하는 건가.

 자신이 벌고 있는 돈이라고 그 돈은 모두 자신의 맘대로 움직여도 되는 건가. 저 사람은 우리 집안의 가장이 아닌가.

 꼴랑 알바라고는 하나 새벽 6시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해 벌어온 내 두 달 치의 월급은 아무 의미 없는 푼돈이 되어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어머님께 카톡을 보냈다.

 제가 요즘 새벽 6시에 일어나 알바를 다닌다고. 그 돈 500 꼭 돌려달라고. 아범이 나에게 상의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일 때마다 너무 속상하다고. 

 못 본척하시던 시어머님이 늦게 보낸 답변은.

"나는 약속을 하면 꼭 지키는 사람이다. 인생에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돈 때문에 맘 상하지 않았으면 한다..^^~" 

....... ...........

 며칠을 분통 터져하며 지내다 나는 기어코 다시 카톡을 보냈다.

 "저는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아범과 결혼하지도 않았을 테고. 어머님께 이렇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제가 맘 상하는 건 돈 때문이 아니라 어머님 때문입니다..."

 그 뒤로 답변은 없었다.       


 분을 참지 못하고 맘고생을 더 하던 어느 날엔가 신랑에게 얘기 좀 하자고 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애초에 왜 내게 상의도 없이 그 돈을 보낸 건지. 애초에 그런 일을 하시려면 본인의 능력 안에서 재료비라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 다른 사람에게 몽땅 돈을 빌려 일을 벌이시는 게 말이 되느냐. 옆집에 치킨집이 잘 된다고 남에게 치킨집 차릴 돈을 몽땅 빌려 장사를 시작하려는 게 말이 되는 거냐. 본인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언제까지 계속 이럴 것이냐고. 

 분개한 신랑은 그 돈 500 그냥 줄 수도 있는 돈 아니냐. 왜 그걸 이해 못 하는지 그거 자체가 날 이해할 수 없다며 얘기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대화를 중단하려고만 했다. 평소에 순한 신랑이 시댁 얘기만 꺼내면 흥분한 들개처럼 짖어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맘먹고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을 때.

 "그만 얘기하자! 그거 이해 못할 거면 이혼을 하던가!" 하며 이불을 박차고 담배를 피우러 사라졌다.



 나는 무시무시한 분노에 휩싸였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느라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눈이 충혈될 정도로 허공을 노려보다 물을 마시러 부엌에 서 있는 신랑에게 다가섰다.

 "재산은."

 " 니 다해라!" 

 "고맙다. 딸은?"

 그제야 움찔 말을 더듬는다.

 ".. 니가 원하는 게 뭔데...??"

 "난 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원하는 거고. 며칠 전에 물어봤을 때 나랑 살고 싶대. 근데 널 키울 경제적 능력은 아빠가 훨씬 나을 거라고 얘기는 해 줬어.."

 그리고 그대로 앉아 머리를 정리하며 신랑에게 카톡을 보냈다.



- 자네가 가져갈 물건- 책상방 물건(프린터 제외), 발 안마기, 일인용 스팀 온수 매트, 자동차, 양복, 그 외 옷. 일인용 의자, 다리미, 그릇 일부, 구두. 회색 이불, 베개, 본인 자전거

- 방카 수익자 바꾸기(각자), 서방님 절 납골당 명의 바꾸기(현재 내 명의), 시어머님 생활비 자동이체 바꾸기(현재 내 통장), 가족카드 해지, 마일리지 가족 풀기, 종신보험 해지, 인터넷 명의 바꾸기, 조카 입학 등록금으로 마련한 예금 넘겨주기

- 딸 대학 입학 시 4년 등록금(6년제일 때 6년), 딸 결혼 시 지원금, 딸 결혼식 때 참석(나 재혼 시 불필요)

- 딸 중고등학교(앞으로 5년)까지 양육비 250(학원비 포함)

- 서로의 부모에게 각자 알리기

- 내가 재혼하더라도 양육권 요구하지 않기(내가 키우게 되면)

- 이혼 절차 완료까지: 밥 각자 해결, 빨래 각자, 청소 같이, 생활비 같이, 설거지 각자, 명절 각자, 생신 각자, 딸 생일은 같이, 주말 각자, 주 중에 집 안 들어와도 터치 안 하기, 자는 곳 분리, 화장실 각자 청소, 같이 사는 집에 각자의 가족 부르지 않기.



 이쯤 보내고 나니 마음의 평정이 찾아졌다. 

 그리고 점점. 이혼해도 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뭔가 구체적인 현실이 눈에 보이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카톡을 읽었으나 눈을 감고 자는 척 침대에 누운 신랑에게 정말 진심으로 얘기를 했다.

 재산을 모두 내게 주겠다고 했으나 당신도 살 곳이 필요하니 이 집 전세 만기에 맞춰 집을 나눠서 나가자. 나는 딸 데리고 살아야 하니(아마도) 구질구질한 곳에서 애 못 키운다. 당신이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을 돈 정도는 마련해서 주겠다. 차도 가져가고 마이너스 빚도 가져가라. 현재 내 명의로 된 예금은 못 나눈다. 

 가치관이 안 맞아서 헤어지는 거니까 원수처럼 그러지 말고 각자 잘 살자. 애도 있고 애 아빠고 하니까 저주할 마음은 전혀 없다. 인간적으로 이해를 못 하는 바도 아니지만 내가 맘이 너무 다쳐서 공유하며 살기가 힘들다. 서로 이해 못 하는 부분에 대해 이제 서로 포기를 하고 맘이라도 편하게 살자. 딸아이가 누구와 살고 싶을지는 직접 물어보고 선택하게 하자. 아이가 아빠를 따르겠다면 그 뜻에 따를 테니 걱정 말고, 나를 따른다면 내가 키우겠다. 따로 만나는 걸 막지도 않겠다...

 신랑은 죽은 척 침대에 누워 꼼짝을 않았다. 그 뒤로 그 어떠한 말도 없었다. 다만 묵묵히 내 말을 듣고는 있었다.



 나는 진심이었다. 

 나는 무수히 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그때마다. 도대체. 내가 왜 이 남자와 헤어지지 못하고 이걸 다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며 나를 흔들었었다.

 나라도 내 부모라면.. 나라도 내 부모라면 그랬겠지. 그랬을 거야.. 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는 척하고. 모른척하고. 그때마다 삭혀지지 않는 서운함과 분노를 지인들에게 털어놓으며 고민 상담을 했을 때, 어느 지인 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아니. 왜 그 지경인데 여태 이혼을 안 했어..? " 

 그 질문에 나는 흠칫 당황했었다. 그녀의 질문은 진심이었다. 

 그 지경으로 시댁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대는 남자와 왜 여태 헤어지지 않고 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인의 말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비참했다.



 그 뒤로 나는 이 사람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때론 내가 이 사람을 굳세게 사랑하고 있다고 믿기도 했다. 종교처럼 믿는 것.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내 딸아이에게 삼룡이처럼 잘해주는 사람이니까.

 내가 지저분하게 먹고 남긴 음식도 거리낌 없이 먹어주는 사람이니까. 

 내가 끓인 벌건 국을 세상 제일 맛있는 음식처럼 삭삭 비워주는 사람이니까.

 코 골며 자고 있을 때 깨워서 어디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짜증 없이 일어나는 사람이니까.

 시댁 얘기는 꺼내는 것조차 싫어하며 화를 내곤 하지만 그 외엔 순순히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다정하거나 섬세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잘나지도 않았지만. 그 나름 자신의 책임감을 완수하기 위해 더러운 사회생활도 이겨내고 여태 비겁한 월급쟁이로 버텨온 사람이니까.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이 버거운 삶을 버텨낼 사람이니까.

 저녁마다 밖에서 있었던 소소한 사건들을 얘기해대도 기꺼이 내 감정 쓰레기통 역할도 해주는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나와 딸아이가 곁을 떠나면 그의 곁엔 늙은  부모 외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니까.



사실 우리 둘은 시댁 문제 외에 싸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둘 다 무심하고 개인적인 사람들이라 그 부분에서도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

 주 중에 각자 일을 하고. 주말에 느긋이 일어나 아점으로 토스트 한쪽에 계란 프라이, 커피 한잔 마시고.

 어슬렁어슬렁 마트나 쇼핑몰 돌아다니다 맛난 한 끼 먹고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우리 주말의 전부다. 일 년에 두세 번 어딘가 놀러 갈까 말 까이고. 해외여행도 최근에는 뜸하다. 좋은 물건을 사들이는 일도 거의 없고, 취미 생활도 딱히 없다. 재미난 영화를 보거나 가끔 찜질방에 가거나 카페에 가는.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며 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실망하고 맘고생했던 일이 쌓여서인지 이 사람을 처음처럼 뜨겁게 사랑하거나 100프로 신뢰하지도 않는다. 

 20년을 알아왔지만 나는 저 사람 속을 모를 때가 더러 있다. 살수록 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렇다고 미운가. 

 지긋지긋하게 미운 날도 있었겠지만. 대체로는 맛난 거 보면 사다 주고 싶고, 배고프다 하면 뜨거운 찌개도 끓여주고 아프다 하면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약은 사다 주는 사이다.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진 않지만. 대체로 의리 좋게 살고는 있다.

 저 "그렇다면 이혼하자" 사건 이후로 신랑은 어찌 된 건지 설거지만큼은 열심히 하고 있다. 청소를 하려고 폼을 잡으면 걸레질 정도는 하려고 하고. 가끔 분리수거도 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지켜본다.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각자의 시간들을 쌓으며 살아가겠지. 존경하며 사는 부부도 있고. 사랑으로 사는 부부도 있고. 의리로 사는 부부도 있겠지만 긴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기만 한 부부도 존재하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처럼. 우리처럼. 대체로 지지고 볶고. 사랑했다 실망했다가. 미워했다가 용서했다가. 그리고 그럭저럭 가끔 의리로 가끔 애정으로 살아가겠지. 

 신이 사람에게 이 세상에 맘대로 안 되는 게 어떤 건지 한번 겪어보라는 의미로 자식을 낳아 키우게 했다던데.

 나는 맘대로 안 되는 게 자식이 아니라 신랑이다.  



 여느 때처럼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 어느샌가 옆자리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신랑의 얼굴을 본다.

 미간에 주름을 잔뜩 만들며 찌푸린 얼굴로 심각하게 자고 있다. 뭐가 또 오늘 이 사람의 맘을 긁어댔을까. 말 못 할 일들이 어느 날엔 없을까 싶어 눈 사이 주름을 슥슥 문질러주면 신랑은 또 어느새 인상이 풀려 평화로운 얼굴로 잠을 이어간다. 

 이렇게 자면서도 말 잘 듣는 착한 삼룡이인데. 왜 그리 시댁 앞에선 감정적이고 대책 없이 구는 건지. 문득 괘씸해지면 슬쩍 주름을 다시 만들어 재우거나 코를 슬쩍 막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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