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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Jun 23. 2019

중2딸 첫 중간고사

뭐 그럭저럭  

 아이의 첫 중간고사가 지나갔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치르게 되는 "중간고사"라는 고사 앞에 아이는 좀 긴장해 있었다. 또래 친구들 중 누군가가 1등을 할 것이다, 누군가는 학원에서 이미 중간고사 대비반으로 전환을 했다더라.. 등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어느 당찬 여자아이는 "난 이번 시험 엄청 잘 볼 거야"라고 자신만만해 하기도 하더라며 시험 한 달 전부터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하는 거냐며 나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학기 초 특별히 큰맘 먹고(나름대로 큰맘을 먹어야 나갈 수 있으니까요) 나간 반엄마 모임은 걱정과 달리 뜻밖에 얻은 수확이 있었더랬다. 여느 때와 같이 어느 큼직한 카페에 모인 젊고 이쁜 엄마들은(그렇다. 그녀들은 항상 젊고 이쁘다) 각자 누구 엄마예요 하며 소개를 하고, 앞에 놓인 음료와 다과를 하며 옆에 앉은 엄마들과 슬슬 아이들 얘기를 시작하는 그런 자리. 다들 어찌나 어려 보이고, 옷들도 스타일리시한지.. 짧은 머리에 보이쉬(나는 여전히 남자친구 룩을 좋아한다. 개인 취향이니 태클은 사양) 한 캐릭터는 암만 둘러봐도 나 하나인 듯.

 소개가 끝나자 맞은편에 앉은 한 엄마가 반갑다며 인사를 해왔다. 우리 아이의 첫 짝(남학생)이었던 아이의 엄마셨는데 그 아이가 엄마에게 그랬단다. 엄마 모임 간다고 했더니 첫 짝이었던 우리 딸이 그리 괜찮더라며 말을 해보라고 했다나. 그 말을 듣고 빵 터졌는데 그렇게 말을 한 그 남학생도 귀엽고, 또 우리 딸을 그렇게 봐줬다니 고맙기도 해서 단박에 긴장한 맘이 쓱 풀려버렸었다.

 이래저래 할 얘기라곤 아이 얘기밖에 없으니 누구는 어딜 다녀요, 누구는 학원에 어느 반이에요..로 주제가 모이곤 했는데. 우연찮게도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고 엄마들은 이미 그 정보들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이쁜 엄마가 반갑다며 본인 딸이 우리 딸과 같은 학원, 같은 반이라며 말을 걸어왔는데 그 순간 엄마들의 시선이 조금 쏠리는 느낌에 아니 왜.라고 의아해하던 차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이쁜 엄마의 딸과 우리 딸이 있는 반이 그 학원에서 제일 등급이 높은 반이고, 몇몇은 그 아래반, 또 몇몇은 그 아래반에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 딸이 수학을 잘 한다는 것이다! 오.. 나 몰랐어.



 또 옆에 한 엄마는 매우 열성적인 엄마셨는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새로운 정보에 새로운 학원들을 줄줄이 말씀하셔서 다들 쫑긋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오. 그런가요.. 오. 그건 또 뭐예요. 

 이 열성적인 엄마는 영어, 수학은 당연히 학원에서 중간고사 대비반을 진행시키고 있고, 국어도 학원에서 하는데 역사와 과학은 처음이라 아이가 불안해해서 그 두 과목만 과외 선생님을 붙여 중간고사 대비 수업을 신청했다고 했다. 나는 정말 놀라워서 그 엄마에게 진심으로 "대단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건 정말 비꼬거나 한 게 아니라 그녀의 열성이 가히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사실 아무리 자식이래도 저렇게까지 신경 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진심으로 깨닫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른 쪽 오랜 직장생활을 했다는 부장님 포스의 아름다운 엄마는 이 "열정 엄마"에게 같이 수업을 들읍시다 하며 연락처를 바로 주고받았고. 나는 영 자신이 없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열정 엄마를 이젠 엄지척하며 인정할 수는 있겠으나 나는 결코 열정 엄마가 될 수도 없고, 그런 그녀들의 곁에서 영 걸리적거리는 존재뿐일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학원을 전혀 보내지 않는다는 어느 남학생의 엄마도 계셨고, 첫째는 공부를 못해요~하며 쿨하게 인정하며 둘째는 좀 해요. 하기도 했다. 확실히 초등학교 때 모였던 엄마 모임의 분위기보다는 한결 산뜻하고 편하다. 다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내공들도 좀 쌓여서 그때처럼 예민하거나 하지 않다. 욕심만 앞서 아이의 가능성을 이리저리 시험해 보던 시기가 지나 그들은 인정할 건 인정하고 할 놈은 좀 더 시켜보자. 뭐 이런 걸지도.




 중요한 건 엄마 모임이 아니라. 중간고사.

 엄마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원래 학원에서도 학교 중간고사에 맞춰 한 달 전부터 중간고사 대비반으로 수업이 바뀌는 게 일반적이었고, 우리 아이는 수학학원 하나 다니고 있고 영어는 아예 아무것도 안 한 지가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의 학교는 수학은 모두 주관식이고, 영어도 어렵고, 과학, 역사, 국어도 범위가 꽤 많아서 아이가 동동거리며 계획을 짜야 한다며 걱정하던 맘이 뭔지 좀 알 것 같았다. 옆 친구들은 학원에서 새로 풀기 시작한 중간고사 대비 문제집들을 학교에 가져와 풀기 시작했고, 딸아이는 처음 보는 그것들을 딸아이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열심히 풀어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한 달이나 남았다고 생각했으나 교과서 범위를 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같이 계획까지 짤 생각은 전혀 없던 나였으나 이거 그러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무척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고, 스트레스를 슬슬 받기 시작한 것 같았다.

 수학이야 학원에서 해 준다고 하니 건너뛰고. 나머지 과목을 조목조목 나눠 여기서 여기까지 며칠, 며칠 이런 식으로 달력에 나누어 계획을 같이 짜주었다. 세상에. 중학교 중간고사를 한 달 전부 터라니. 엄마 때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얘~라는 말은 꾹 참고 속으로만.



 물론 계획대로 완벽하진 못했으나 아이는 생각보다는 꽤 열심히 공부를 했다. 본인은 야행성이라며 주로 저녁에 시작해서 어느 날엔 새벽까지 하는 모양이었는데 사준 문제집도 범위까지 풀고, 모자란 것 같다며 추가로 문제집을 주문하기도 했다. 오. 문제집이야 얼마든지 사줄게. 니가 공부만 한다면.

 긴장의 한 달이 지나고 중간고사 기간이 슥 지나갔다. 그간 은근 비위 맞추며 지내온 터라 내 속이 다 후련했다.



 결과는 나름 만족.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영어가 가장 좋은 점수. 이럴 수가.

 과학, 역사, 국어도 그럭저럭 한두 개씩 틀려서 평균이 92점. 등수가 나오지는 않지만, 점수는 알려준다. 

 그나마 다니는 수학학원 덕분인지 수학은 별 막힘없이 술술 풀렸다는데 답안지 작성방법을 착각해 시간이 모자라는 바람에 두 문제를 틀렸다나.

 나는 지화자를 부르며 좋아했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내 옆에서 "엄마, 내 친구는 국어 100점 받은 애도 있고, 평균이 99점인 애도 있어~. 영어 만점도 있고.." 

 "무슨 상관이니. 우리 딸이 92점인데. 그러니까 100점 만점에 한두 개씩 틀려서 92점 받은 건데 엄마는 만족한다. 한 달 동안 공부도 열심히 했고, 무엇보다 놔버렸던 영어가 제일 잘 나와서 엄마는 진짜 너무 행복하다!" 덩실덩실.

 무슨 티를 내며 칭찬하거나 하는 걸 질색하는 딸은 그대로 방에 들어가 액괴를 쿵덕쿵덕 만들어댔다.




 그리곤 바로 수학학원을 안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중간고사 대비반으로 중2 과정을 한 달 동안 진행하다 이제 시험이 끝나서 다시 선행수업으로 전환했는데 그 열정 넘치시는 원장 선생님께서 너무 저돌적으로 수업을 나가시는 바람에 이제 막 그 반에 들어간 우리 딸은 헉헉 질려 하다가 바로 나자빠져 학원에 안 가겠다고 선언을 해 온 것. 

 아. 운수 좋은 날이지 싶었다. 내가 왜 눈치 없이 덩실덩실 춤을 췄던가.


 실은 벌써 몇 번이나 힘들어했었다. 수학은 곧잘 하고 좋아하는 것 같길래 걱정을 덜 했었는데. 학원에서도 등급이 쑥쑥 오르더니 급기야는 최고반에 들어가 원장 선생님이 직접 수업을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반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헉헉대며 힘들어했다. 나름 잘한다 소리를 들었었는데 그 반의 아이들은 모두 뛰어나게 잘 하는 아이들이라 이미 한 번의 선행을 거친 아이들이었고, 한 수업에 한 단원을 끝내버리는 수업 속도와 엄청난 과제 덕에 아이는 한두 번쯤 힘들다는 얘기를 했었었다.


 아. 어쩌나. 이제 첫 시험을 치러본 것이고. 첫 시험이라 쉽게 나온 걸 텐데. 반의 수많은 아이들이, 아니 모든 아이들이 평균 90점이 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등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은 또 얼마나 열심히 달리고들 있을 텐데. 단 하나 다니는 학원마저. .. 



 하지만 이미 나가떨어진 딸을 보니 이 또한 어쩌랴 싶었다. 

 학원에 잠시 쉬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학원비 환급을 요청했다.

 며칠 완전 한량처럼 지내는 딸아이를 보며 속이 확 뒤집어질 때도 있었지만 꾹 참았다. 쉬었다 갈 수 있다. 다시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자.

 다행히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중. 아이의 빈둥거리는 모습을 오래 보지는 않았다. 그나마 그래서 좀 덜 속 터져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느 주말 아침 나를 붙잡고 "심심하다!"라며 짜증을 내려 하는 아이 앞에서는 확. 뭔가 솟구쳐오는 뭔가를 참느라 콧구멍을 벌렁거려야 했다.



 신랑은 없고 마침 나도 일찍 일어나 심심할 예정일 주말이었다. 날도 좋고, 나도 여행 같은 걸 가보고 싶다 생각이 문득 들어 그대로 아이와 함께 짐을 싸서 기차를 타러 택시를 탔다. 뭐 표는 있겠지. 어디든 가보자. 부산을 가볼까. 부산이 그리 좋다는데. 

 서울역에 도착해 부산 가는 KTX를 탔다. 갈 때는 표가 있지만, 올 때는 없다고 해서 뭐 입석. 일요일에 돌아오기만 하면 되지 뭐. 월요일 난 출근해야 하고, 딸아이는 학교를 가야 하고.

 그렇게 무작정 떠난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여기저기 인터넷으로 알아본 걸 기준으로 싼 숙소도 예약하고, 맛나다는 횟집도 찾아가고. 공원에도 오르고 자갈치시장, 국제시장도 갔다. 감천마을도 갔고 배도 탔다.

 어릴 적 살았던 광안리 해수욕장에도 갔는데, 바닷가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내 뒷모습을 딸아이가 근사하게 찍어주기도 했다. 나는 으아아아아 나도 몰라.. 어떻게 되겠지.. 하는 순간이었는데, 뒷모습은 고뇌에 가득 찬 긴 바바리의 중년 남성 같았다.




 벌써 저 일들이 한 달 전이다. 그러니까 중간고사 보고 바로 학원 때려치우고 벌써 한 달.

 한량이 되어버린 딸아이를 걱정하며 같이 일하는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하나같이 "애가 하려고 해야지, 학원이고 과외고 다 소용없다."가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녀들의 아들, 딸 들은 이미 20대이다.

 한 달 동안 나는 혼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지만, 딸은 평화로워 보였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도 없겠다, 학원도 안 다니니 숙제도 없겠다, 유튜브를 보고 액괴를 만들고, 뭔가를 시켜 먹고, 자고, 빈둥거리는 생활이 계속됐다.

 퇴근 후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밥을 먹이기도 하고, 어질러진 방을 치워주면서도 한마디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기다리겠다, 기다리겠다를 다짐하며 불안한 맘을 비추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기말고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아이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모든 과목을 당연히 혼자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좀 걱정도 되기 시작한 모양. 그나마 수학이라도 학원 다닐 땐 거기서 준비를 해줬는데, 이건 맨땅에 혼자 어디 가서 머리를 받아야 하나 감도 안 서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모른 척을 했다.

 어째야 하냐는 딸아이의 말에 "망했지. 뭐.." 했다. 먼 하늘 바라보며. 니 인생 니가 사는 거라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는 지난주부터 다시 예전 학원에 가기 시작했다. 대신 그 빡센 수업 말고, 아이가 좋아하던 선생님이 새로 개설하신 좀 편한 반에 들어가게 되어 너무 다행이고 만족스럽다. 최고 반 필요 없어요,. 숙제 좀 적게 내주시고, 진도도 빨리 나가지 마시고. 아이가 편한 반으로 배정되길 바랐는데 마침 아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새로이 반을 맡으셨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어 당장 전화 걸어 등록!

 영어도 거의 2년을 놀고 있었는데, 조카가 한다는 과외 선생님을 소개받아 일주일에 한번 수업을 듣게 되었다. 과외는 보통 학원의 2-3배 정도의 수업료가 나간다고 하도 얘기를 들어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번 한 시간 반 수업에 15만 원. 오. 만만세다. 

 조건에 붙이기를. 숙제는 제발 적게 내주세요. 반의반으로 줄여주세요. 일주일에 한번 오셔서 아이 공부하는 방향만 좀 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천히 가 주세요. 빡세면 안 됩니다. 영어를 놓지만 않게 해주세요. 특목고 대비 뭐 그런 거 아직 생각 없습니다. 그저 놓지만 않게, 그렇게만요.



 딸아이를 가늠해 보건대. 0.1프로의 천재는 아니다. 남들의 시선에 예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눈치 보며 공부는 좀 하려고 한다. 욕심이 많은 건 아니다. 엉덩이가 무겁진 않다. 그럭저럭 중상위 정도이나 엄청난 교육비를 들인다고 해서 최고가 될 것 같진 않다. 

 그러니까 조금만 좀 하면 엄마가 나온 학교보다는 좀 나은 곳에 갈 수도 있지 않으려나... 하는 바람 정도를 품게 하는 그럭저럭 괜찮은 딸이다. 완전 학교를 기준으로만 보면.

 그 외의 면으로 보자면 괜찮다.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대체로 침착하고 선하다. 누군가에게 퍼주길 좋아하는 것 같아 이용당하면 어쩌지 생각도 들지만. 리더의 성격인 것 같진 않고, 책도 좋아하고. 책임감도 있다. 방도 자주  어지르고 내가 밥할 때 쫓아와서 도와주지는 않지만. 어차피 너도 크면 니 밥 니가 해먹어야지 싶어 미성년인 지금은 내가 해준다 하는 심정으로 그냥 해준다. 


 아이가 커서 월급이라는  받기 시작하면 한 달 25-30만 원쯤 받기로 했다. 주변 언니들이 자식들 키워놨더니 그런 거 잘 모르더라며 미리미리 얘기하라길래 얼른 얘기는 해뒀는데 썩 받아들이는 눈치는 아니다. 생활비가 문제가 아니라 넌 20살이 되면 알바부터 시작해. 돈 중요한 것도 알아야지. 



 이제 중2니까 한 5년만 더 키우면 되는데. 갈 길이 아직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요즘엔 재수를 해도 일 년에 3000만 원이 든다고 하던데. 나 참. 돈이나 열심히 벌고 있어야겠다.

 이제 또 기말 고사인데 엄마는 걱정 안 할란다.

 알아서 잘 하겠지. 

 그치? 알아서 잘 할 거지......???






 (참고로 영어과외는 또 그만두겠다 해서 어제 관둠...하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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