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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Nov 14. 2019

단기 알바는 단기 스트레스..이지만.

일하면 놀고 싶고. 놀면 일하고 싶고.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이번 연도에는 끊임없이 일을 했다.

봄에 잠깐 쉬는 나날들이 있었지만 바로 다음 일이 잡혀 쉼 없이 달리고 있다. 

알바란 원래 휴가가 없는 모양이다. 여름철 잠깐 여름휴가를 주장하며 이틀 휴가를 얻은 거 외엔 출근, 또 출근으로 이어지다 보니 나는 또 머리가 멍한 상태가 종종 발생하며 쉬고 싶다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와중에 갑자기 우릴 담당하는 부장님이 컨버전이 있을 예정이라 2주간 전산이 제대로 되지 않을 테니 알아서들 몰래 휴가를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낯가리느라 평소에는 별말도 하지 않던 내가. "아이구 부장님 여기 와서 제일 멋있게 보이시는 날이네요!" 하고 불쑥 말을 꺼냈다가 옆에 있는 언니들에게 한마디 들었다.


 어찌 됐든 김장이네 뭐네 각자의 형편대로 휴가를 정하고. 나는 막내이므로 가장 마지막에 정하게 됐는데. 바로 다음날부터 이틀 쉬겠다고. 바로 쉬겠다고 펄떡펄떡 주장하다 한 언니에게 또 한소리를 들었다. 

뭐 어찌어찌 바로 다음날부터 쉬게 되었고. 오늘은 그 이틀째 날의 이른 아침이다. 아. 오늘은 수능날이네.


 

 단기 알바의 좋은 점은 스트레스 또한 단기라는 점이다. (여기서 단기 알바 란 1년 이내 알바)

 각자 맡은 일을 시간 내에 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다른 이들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긴 하지만. 그 정도야 뭐. 할 정도의 가벼운 것들이고. 정규직으로 묶인 이들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긋지긋한 스트레스"는 없다고 봐도 된다. 단, 다음 일이 도대체 언제 또 잡힌단 말인가. 하는 부분은 있지만서도.

 그렇다고 설렁설렁은 아니고. 일 자체는 치열하게 하곤 하는데. 이게 또 단기 알바의 숙명이다. 

 대충 하거나 해서 일 못한단 소리가 어디에서라도 나온다면. 그건 섬찟한 상황인 거다. 다음 일은 영원히 잡히지 않을지도 모르고. 설령 다음 일이 있더라도 아무도 날 불러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아무리 하찮게 취급하고 싶은 이들과도 잘 지내야 하고, 비위를 맞춰드려야 하며. 나는 어디까지나 갑을병정.. 저 끝자리에서 좀 굽실거리는 모양새를 취해야 할 때도 있다.

 단기 알바의 가장 큰 단점은. 뭐 월급이지. 정규직보다야 훨씬 작고. 나 같은 이를 누가 이 금액에 써 준단 말인가 현실을 직시한 입장에서는 무지 감사한 금액이다. 나름 조금씩 금액이 오르고 있기도 하고. 일에 따라 기관에 따라 조건이나 그런 건 매번 바뀐다.

 월급 작다고 안 했다가는 다음일 끊길까 봐 좀 그렇고 해서 두루두루 덥석 잡아 해야 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뭐 어차피 누군가 불러줘야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라 그것도 운의 일종이라 여기며 그냥저냥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이다. 



 오래 일을 하다 보니(여기서 "오래"란 1년을 기준) 기존에는 없던 적금통장에 목돈이 좀 모이기는 했으나.

 여유롭게 책을 읽을 여유도, 책 읽고 난 뒤 일어나는 사고의 시간들도 갖기가 힘들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몸이 늘어지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데. 이렇게나 규칙적으로 그것도 꽤 멀리 출근하는 일은 몸이 폭삭 피곤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의 끼니 걱정을 하는 것만으로 용량 초과다.

 무슨 고민같은거를 좀 하려고 해도. 옆에 일하는 언니들이 많게는 10살 넘게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 내가 하는 고민들은 뭐 대충 시간 지나면 해결될 가벼운 것들이 되어버리곤 해서 별로 심각한 건 아닌가 하며 넘겨버리며 살고 있다.


 갑작스러운 간만의 휴가로 어제는 혼자 행복했다. 

 출근하는 신랑에게 커피도 타주고. 종일 아이의 끼니를 챙겨주며 맘이 좋았다. 끼니 중 한 끼는 배달의 민족이었지만. (배달의 민족에서 가끔 "소중한 고객"이라며 쿠폰 같은 걸 보내준다)

 은행도 가야 하고. 혹시 로또 됐으면 그것도 찾아와야 하고. 쌓여가는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세탁소도 가야 하는데 맘으로만 중얼거리고. 오전 내내 자고 일어나니 오후에는 그만 나가기가 귀찮아져서. 지난번 신랑 생일에 못해준 미역국을 뒤늦게 끓이고 고기반찬 하며 집에 있었다.

 내일(그러니까 오늘)은 나가야지. 집에 있자. 책 보자. 해서 후루룩 쌓여있는 책들을 뒤적거려 해치워버리기도 했다.

 읽다 만 책들 읽어버리고. 귀한 글귀 적어서 포스트잇 제거해 버리고. 다 끝난 책들은 책장 한쪽에 차곡차곡.

 정리된 책들 몇 권 들고나가 팔아버리고. 영영 안 읽을 것 같은 책들도 처리를 해둬야겠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이 즈음의 계절이 돌아오면. 문득 사는 게 무섭단 생각이 든다.

 이 추운 날 갑자기 어떻게 되면 어떡하지. 그 어떻게 라는게. 갑자기 아프거나, 돈이 없어지는 사건이 생기거나. 상상할 수 없는 시련... 어쩌고의 망상이 떠오르며 바들거리다 보면. 이게 무슨 쓸데없는 걱정인가 하다가. 아 감사해야지. 다 감사하구나 하며 맘을 쓸어내린다. 세상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날 보며 정말 걱정하며 걱정하는 것도 내 습관이구나 싶어 어이가 없다.

 집에 있으니 맘이 푸근해진다. 밖은 추운데 집 안은 따뜻하고. 배고플 때 밥 먹을 수 있어서 소화 안되는 일도 없고. 화장실도 두 번씩 가고. 졸릴 때 잘 수도 있고. 커피도 맘껏 마시고. 은행도 갈 수 있을 테고. 세탁소도 문 닫기 전에 갈 수 있다. 

 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에 간만에 돌아오니. 

 혹시 연장될 수도 있어요. 했던 부장님의 말씀이 썩 반갑지만은 않은데. 나 혼자 그만둘래요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내일부터는 또 맘 잡고 멀지만 감사한 일터로 기꺼이 나갈 생각이다.


 아. 끝나면. 이번에 끝이 나면. 

 여행도 가고. 책도 읽고. 아이도 좀 케어하고. 

 빈둥거리며 쉴 시간을 좀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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