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부상병이 생겼다. 축구하다가 다쳤지만 직장생활에서의 운동도 나름의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의 전투 중에 입은 깊은 상해라고 해두겠다. 아킬레스건 완전 파열로 수술을 하고 며칠 만에 깁스를 한 그를 집에 데리고 돌아왔다. 보호자 없이 수술을 받고 온 게 짠하기도 하고 처음 해보는 수술에 통증에 깁스에 몇 걸음도 힘든 걸 보니 속도 상했다. 막상 집에 오니 간절해진 몇 가지 용품을 당근 하러 다니고 주문도 하며 이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남편은 한 달 만에 깁스를 풀고 보조기를 했다. 여전히 발목을 쓸 수 없기에 아주 느리게 재활을 해야 한다. 오래 앉는 게 무리라 통근이 쉽지 않다 보니 주로 재택근무를 한다. 남편과 이렇게 오래 붙어있는 상황이 처음이라 낯설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있다고 나름 재미있게 외출도 하면 좋겠지만, 오래 서있거나 돌아다닐 수 있는 컨디션은 아니라 집에 박혀있어야 한다. 사실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있긴 한데, 어쩐지 딱히 크게 돌보는 일 없이도 내가 보호자인데 싶어 책임감이 더해지는 날들이다. 끼니 대충 때우기 달인인 내가 남편 있는 삶을 맞이하다니. 우리는 둘이 마주 보고 점심을 먹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긴 대화를 나눴다.
"어디 하나 부러져야 쉬는구나."
씁쓸하지만 이런 얘길 하며 마주 웃었다. 남편이 집에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다쳐서 누워있는 그림은 그린 적이 없는데 역시 모든 게 무난한 순간은 쉬이 오지 않는 법이다. 그 와중에 들이치는 일은 하느라 앉았다 누웠다 하는 모습이 애잔하다.
생각해 보니 미국에서 한번 내가 고열로 아예 침대에서 못 일어났을 때, 남편이 이틀간 출근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내가 출산을 했을 때 말고는 매일 새벽까지 일하던 사람이 일을 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내가 감기 걸렸을 때가 아니라 아내가 고열로 일어나지 못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을 때이다. 어른이란 자고로 약 먹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아파서는 쉴 수 없는 법이다. 아예 몸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 돼야 어쩔 수 없이 쉴 자격을 부여받는다. 그 시간도 말이 쉼이지 아픔과의 전투겠지만.
지난주엔 첫째의 화상수업 소리를 들었는데 쩍쩍 갈라지는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 수영 선생님은 팔을 다치셨다는 것 같은데 레슨은 하신다. 발 다친 사람들이 모인 카페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아킬레스건 파열로 수술을 했지만 어린 아기를 돌보느라 제대로 재활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꼭 해야 하는 일 앞에 우리는 자신에게 쉼을 허락할 수 없다. 대부분 각자의 역할은 퍼즐처럼 빠듯하게 짜 맞춰져 다른 이가 대신해 주기 어렵다.
어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아무나 한다. 그래서 세상이 혼란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자격증도 없이 시간이 흘러 어른이랍시고 살다 보면, 어떤 상황이, 어떤 삶이, 어떤 사람에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을 재우다가 새우처럼 잠들어 새벽 4시에야 눈을 떴다. 그리곤 그다음 날엔 어깨가 아파서 5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 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일어나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보니 영 꿈결 같아서 선풍기 바람 앞에 철퍼덕 뻗었다. 아픈 머리를 최애 두통약으로 잠재우고 선풍기 리모컨을 드디어 찾은 게 뿌듯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길게 항생제를 먹고 있는데 마지막 약을 타왔다. 드디어 몸이 낫나 보다.
짧게나마 잡아뒀던 여행일정을 취소했고 아이들은 올여름 워터파크에 갈 수 없는 운명이 되었지만 나름대로 나 혼자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곳을 뒤적인다. 바다는 갈 수 있으려나, 산엔 못 가겠다. 코앞에 닥친 여름방학을 고민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끌려다닌다.
"엄마는 꽃이 많이 피었을 때보다 초록이 우거질 때가 더 좋더라고."
친정엄마는 내가 이사 갈 집을 보러 왔을 때 이른 봄꽃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그때는 꽃들이 저렇게 예쁜데 초록을 찾는 게 뜬금없다고만 생각했는데 단지가 온통 여름을 맞는 초록이 되어 그 예쁨을 깨달았다. 남편의 수술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남편이 다쳤다는 소식을 양가 부모님께 전하려는데 마음이 영 답답해 이웃분을 따라 단지를 걷다가 그 초록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이미 이 계절은 온통 초록이었다. 난 40년을 꽉 채워 살고서야 올해 처음으로 꽃보다 예뻐 보이는 초록을 느꼈다.
늦게 잠들었더니 오늘 또한 곤하다. 어제 퍼부은 비에 이어 후덥지근한 공기에 짓눌리는 기분이다. 쉼이 없는 삶의 전투 중에도 계절이 성실히 바뀌고 비는 내리고 무더위가 기다린다. 어디 하나 부러져야 쉬는 어른들 앞에 내가 느낀 초록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장면이든, 이 순간은 좀 최고다 싶은 그런 장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