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Nov 30. 2023

초딩엄마 되는 법

찬바람 부는 레테의 계절

    추위에 약한 내게 겨울은 늘 갑작스럽다. 가을바람이 서늘하면 벌써 어그를 꺼내고, 양말 대신 타이즈를 올려 신기 시작하는 수족냉증 약체라 겨울이 왔다는 건 가슴 철렁하는 뉴스다. 이리 강추위가 온 마당에 오늘은 꼭 갈 곳이 있었다. 바로, 우리 집 꼬맹이들의 레벨테스트.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는 영어학원의 안내 문자를 받고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작년과 비교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테스트라 가기로 한다. 놀이터에서 뛰놀던 녀석들을 데리고 택시를 탔다. 거리로 치면 아주 가깝지만 유독 차가운 바람과 잦은 신호를 뚫고 옆동네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찬바람 쐬며 놀다가 차를 타서인지 아이들은 한껏 졸린 얼굴이다.


    첫째는 최근 본 다른 어학원 시험과 비슷하게 상위반에 배정되었다. 사실 학원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다른 영역에 비해 쓰기 떨어져 일명 TOP반 초입에 애매하게 걸쳐져 나오곤 한다. 어쨌든 종합적으로 보면 따라갈 수 있을 테니 원하면 TOP반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그럼 보내야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시간표를 보자니 다른 스케줄과 겹쳐 결정을 미루고 나오는 길,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한편, 미국에서 짧게나마 프리스쿨 맛은 보고 온 형과 달리 영어에 발들인 기간이 짧은 막내는 그냥 경험 삼아 시험을 봤다. 지루해서 칭얼거리는 걸 달래느니 차라리 시험을 보라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내 예상과 달리 수강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받았지만, 사실 교재를 살펴보니 지금보다 난도가 확 높아질 게 보여 아직 무리라고 보였다. 아이들 스케줄표가 내 머릿속을 동동 떠다니는 것 같아서 복잡하다. 가자, 집에.


    "뭐 먹고 싶어?"

    "계란 초밥이요!"

    "그래, 그러자."


    인심을 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익숙한 친구들과 선생님이 좋은 아이들은 학원을 옮기는 데에 회의적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은 이제 그만 밥이나 먹자 하고 계란 초밥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은 아빠 출장 준비하다 덩달아 얻어낸 컵라면도 함께 먹으며 입에 불을 끄기 바쁘다. 맵부심이니 맵찔이니 하는 말은 어디서 배워왔는지 신나게 떠들며 매운 입을 달랠 우유를 찾아댄다. 문득, 녀석들이 엄청 초등학생 같아서 웃음이 났다.


    코로나와 함께 들쑥날쑥하게 했던 영어 학습에도 비슷하게 늘고 있다는 점이 기쁘기도 했지만, 이제 고학년에 접어드는 첫째는 그동안의 체육인 내지는 예술가 같은 학원 구성에서 멀어지겠구나 싶어 씁쓸했다. 사실 주변에 이미 국영수가 기본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많았지만 버텨본 셈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다. 누구보다 주변 분위기를 금방 알아챈다. 누가 지고 싶어 할까? 지기 싫은 경쟁심은 물론이고 친구들 무리에서 머물기 위해서라도 학습을 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막내에게 반년 조금 넘게 다니고 있는 첫 영어학원에 대해 물었다. 숙제하기 그렇게 싫으면 숙제 별로 없는 다른 학원을 가볼 생각 있냐고 물었더니 그냥 지금 학원을 열심히 다니겠다고 한다. 의아한 내 반응에 녀석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바보 돼요."

    "엥? 왜 바보가 돼? 그런다고 바보 되는 건 아니야."

    "저는 계속 여기 다닐 거예요.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는 아이의 반응을 보니 바보가 되는 건 아니라는 내 말은 별로 힘이 없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막내는 최근에 수학학원까지 보내달라고 조르고는 레벨테스트 보고 와서는 거기 결제했냐고 빨리 하라고 나를 따라다녔다. 낯선 상황이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내내 아이를 놀게 하던 엄마들도 슬슬 학원을 알아보느라 분주한 시기다. 혼자 못하면 아이가 상처받을 것 같은 시기가 온 것이다.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을 기준 삼아 스스로를 알아가기도 하니까.


    레테를 몇 번 봤더니 아이가 학교 시험 잘 봤다고 자랑하는 말에는 감흥이 사라져 간다. 학원 시험은 어디까지 하나 테스트해서 반을 배정하는 것에 목적이 있으니 더 어려운 게 당연하다. 어쩐지 사실 교과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테스트하는 학교시험과 비교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각각 다른 것으로 바라봐야겠다 다짐한다. 시험 잘 본 건 폭풍 칭찬해 줘야지. 아이가 가져오는 모든 결과를 엮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엄마도 같이 입학한다는 소리가 떠올랐다. 그만큼 초등엄마는 부지런하게 아이를 알맞은 곳으로 인도하고 미래를 계획하라는 의미지만, 내가 살아본 삶은 워낙 계획과 동떨어지는 부분이 많아서 이게 맞나 헛갈린다. 하교 후 놀이터에 모인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방 해산한다. 각자 학원 일정을 소화하느라 하나 둘 사라지기 때문이다. 요즘 놀이터는 학원 가기 전이나 후에 잠깐 들르는 경유지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도 학원도 길게 보면 이게 뭔 대수인가 싶은데, 모든 게 빠른 요즘 시대에 대체 어떻게 키울 것인가 다시 고민해 보는 밤이다. 그 어렵다는 적당히와 제대로 사이에 서서 혼란스럽게 고민한다. 나름 매일이 즐겁고 신기한 초등생활을 하면서도 나중에 이 학원 저 학원을 일찍 안 보내줬냐는 원망을 듣지 않는 방법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먹이고 재우는 게 전부인 시대가 아님은 분명하다. 중심을 잡기 어려울 것 같아서 노트를 두 권 주문했다. 각 아이에게 육아일기 겸 편지를 써주려고 한다. 적어도 서로의 마음이 보이고 그 불빛이 지켜지는 초등 엄마가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은 전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