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동동이는 수학학원을 가요
수포자라는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수포자예요."
"네가 무슨 수포자야."
"수학이 싫거든요. 친구들도 다 수학 싫대요."
"아니, 수포자라는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원래 알았는데요?"
"너 수포자치고는 멀쩡하게 잘하고 있는데?"
"그래도 싫어요, 수학. 나중에 막 악보에 있는 그 포르테랑 알파벳이 막 나오던데요? 근데 포르테는 무슨 뜻이에요?"
포기할 내용도 없어 보이는 저학년 수학을 두고 동동이는 본인을 수포자라 칭하곤 했다. 그렇다고 뭘 엄청 못하고 있던 게 아니라 의아했는데, 그때의 동동이에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3학년을 마친 동동이는 이번 겨울방학 동안 처음으로 수학학원에 다녔다. 대단한 선행은 아니고 지난 학기 심화문제를 풀어보고 4학년 첫 학기 내용을 예습했다. 지금껏 방학 때 다음 학기 개념 예습 정도 했던 3학년까지의 루틴을 뒤로하고 수학학원을 가기 시작한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동동이의 3학년 2학기는 언제나처럼 여름방학에 초반부를 예습해 두고 학기 중에 나머지 단원을 예습하고 있었다. 동동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시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수학의 경우 한 단원이 끝나면 꼬박꼬박 단원평가는 본다. 그때마다 집에서 교과문제집 단원평가를 한번 풀어보고 가게 했다. 혹시 틀리는 것 있나 확인하고 다시 짚어준 후 보냈다. 아직 3학년 수학까지 왔으니 난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막상 학교 단원평가는 보통 다 맞거나 가끔 하나 틀리는 정도였다. 동동이 본인은 자기가 1등이라고 수학천재 운운하니 단원평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시험은 봤지만 집에 가져온 적은 없는 그 수학 단원평가는 대체 어떤 시험일까?
“동동아, 근데 학교 단원평가랑 집에 있는 문제집에 있는 단원평가랑 비슷해? “
“아뇨. 학교 시험이 쉬운데요?”
"이것보다 쉽다고? 그럼 뭐가 나와?"
"그냥 배운 거요."
"문제집 단원평가에서 뒤쪽에 있는 문제 비슷한 건 잘 안 나와요."
"휴우."
집에 있는 문제집은 개념 문제집이었다. 응용문제 난이도도 낮은 편이라 이보다 쉽게 나온다는 말에 갸우뚱했지만 여태껏 시험지를 구경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학교 시험을 잘 보고 있지만, 동동이는 친구들의 선행을 맨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날은 수학 문제집을 챙겨 가더니 다음부터 가지고 가지 않겠다 말했다. 친구들이 모두 훨씬 이른 선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딴에는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긴 겨울방학을 앞두고 학원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까지는 아빠나 엄마랑 다음 학기 예습만 했지만, 이번 겨울엔 학원을 이용해 보자."
동동이는 해야 한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쉬이 동의한 동동이는 교과 수업을 듣기 위한 테스트를 봤다. 일정 점수를 넘겨야 수업을 들을 수 있는데 역시 처음 구경하는 응용문제를 틀려서 고점을 받지는 못했다. 요즘 그렇게들 푼다는 심화문제를 접해보지 않은 동동이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과문제 파트를 잘 푼 것으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교과 수업은 3개월 동안 계속됐다. 엄마표 수학과 학원 수학의 교과서처럼 쓰이고 있는 디딤돌 교재로 4학년 수학과 지난 학기 최상위를 처음 풀기 시작했는데 아직은 저학년 수학이라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두 번째 달을 보낼 즈음, 동동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수학 가기 싫어요."
"왜 갑자기?"
"그냥 다른 학원 가면 안 돼요?"
"지금 학원이라서 싫은 거야?"
"수업 시간에 계속 빨리 대답해야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데 계속 집중해야 하니까 긴장도가 너무 높아요."
"포인트?"
"제일 많이 받으면 스티커 받을 수 있어요. 칭찬스티커 같은 거요. 포기하고 욕심 안 내는 애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안 되거든요."
"포기가 안 돼서 힘든 거야?"
"네. 천천히 생각해서 풀고 싶기도 한데 계속 빨리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머리 아파요."
"다른 학원이라면, 어쨌든 수학학원을 다니겠다는 생각은 있어?"
"네. 한 번에 3시간은 너무 길어요. 좀 짧으면 좋겠어요."
"생각해 보자."
3개월 과정인 만큼 중간에 그만두게 할 생각은 없었다. 시작한 건 마무리하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동이는 등원할 때마다 수학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며 등원했지만, 하원할 때는 오늘도 스티커를 받았다며 활짝 웃으며 등장했다. 그 상반된 표정으로 3개월을 마치고 시험도 나름 잘 보고 마무리했다. 선생님과 통화하며 그만 다닌다는 뜻을 전했다.
집공부 대신 학원을 갈 때는 커리큘럼이 분명하게 드러난 시스템과 루틴을 갖춘 곳에 보내는 것이 내 기준이다. 어차피 해야 할 부분이면 약간의 또래압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동동이는 구시렁거릴지언정 제법 괜찮은 결과를 가져오는 편이라 굳이 대형 브랜치 학원에서 소규모 학원으로 옮기는 게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동동이는 익숙하고 친해진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바뀌는 걸 싫어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학원을 바꿔달라고 한다면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주고 싶었다.
새로운 학원은 체인이 아닌 동네 학원이다. 거기엔 동동이와 같은 학년 아이들이 다니는 반이 두 반인데 한 반은 동동이 다음 진도라 딱 맞고 또 한 반은 동동이보다 한 학기 앞선 진도의 교과반이었다. 동동이가 아직 배우지 않은 4학년 2학기는 따로 금방 진도를 빼줄 수 있다는 제안과 함께 진도가 빠른 반에 등록하기로 했다.
"음, 5학년 진도를 나가고 싶어?"
"네! 저 정도 수학을 잘하면서 아직 5학년 거 안 한 애는 없어요."
"뭐,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학교 단원평가 다 잘 보진 않잖아."
"그래도 5학년 수학 배워볼래요. 궁금해요."
"그러려면 봄방학은 2주 남았는데 4학년 2학기 진도를 빨리 빼야 해.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요."
진도에 맞는 반을 등록하면 거기 친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동이는 더 빠른 선행반을 택했다. 주변 친구들의 영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이 하겠다는데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하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됐다. 동동이는 겨울방학에 이어 다른 수학학원에 이어서 다닌다. 주 2회에서 주 3회가 된 대신, 한 번에 2시간만 한다. 선생님도 좋다고 만족해한다. 알고 보니 그 반에 또 다른 친한 친구도 있어서 학원 마치고 꼭 놀다가 집에 오니 완벽한 스케줄이 아닐 수 없다.
"엄마, 수학 끝났어요!"
"수업 어땠어?"
"좋아요! 저 OO이랑 놀다 와도 돼요?"
"알았어. 놀다가 와!"
동동이는 좋다는 말만 할 뿐 자세한 얘긴 없다. 그저 학원 끝나고 친구랑 놀다 와도 되는지가 제일 궁금하다. 선행을 시키기 시작하니 결국 엄마의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제 채점은 내가 한다. 요즘 부쩍 바빠서 오밤중에 졸면서 채점한다. 많은 아이들이 선행을 했지만 구멍이 숭숭 나서 학교 현행 진도 시험조차 많이 틀린다면 쏟은 학원비와 시간이 수고로울 뿐 의미가 없을 일이다. 3개월 후엔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3개월 후의 동동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적어도 귀 막지 않고 쫑긋하고 있어야지 다짐한다. 어찌 됐든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서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