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큰애가 대학을 가고, (내가 이런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날이 올 줄이야!)
큰애가 비운 방을 작은애가 들어갔다. 작은 애의 방은 벙커 침대 하나만 넣어도 꽉 차거니와 책상에서 일어날 때 침대 부분에 부딪히지 않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반면 큰아이의 방은 남향에 넓은 창이 있는 제법 큰 방이다. 작은 애는 마치 부잣집 딸이 된 것 같다며, 마음의 여유까지 얻은 얼굴로 큰애가 쓰던 방으로 이사 갔다.
작은 애가 비운 그 좁은 방에 내가 들어갔다. 거실 귀퉁이에서 유목민의 보따리처럼 유랑하던 나의 짐들이 드디어 정착할 곳을 찾은 것이다. 책상과 바닥을 닦고 블루투스 스피커와 여러 가지 색의 펜이 담긴 연필꽂이, 북 스탠드를 책상에 배치했다. 귀퉁이에 책과 다이어리, 노트들을 가지런히 꽂았다.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문장을 붙였다. 큰애가 남긴 그림과 작은애의 그림도 붙였다. 내가 만든 올해의 달력도 책상머리에 고정했다.
머리를 숙여 책상 앞에 앉아 테이블 조명을 켰다. 편안하고 설레었다. 방이 없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기 방을 가진 것 같았다. 내가 처음 방을 가진 것도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나서인 스무 살 즈음이었다. 어찌나 좋았던지, 나는 다시 그 시절의 막내 동생의 마음이 되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방에 들어가 책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새벽에 깨어 책상 앞에 앉는 일도 좋다. 어제의 메모가 붙어 있는 벽을 바라보는 일이 좋다. 갓 내린 커피 한잔이 향기로 내 방을 가득 채우는 일이 좋다. 나만의 냄새가 방에 베이는 것이 좋다. 방문을 닫을 수 있는 일이 좋다. 어제의 메모에 오늘의 메모를 나란히 붙이고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다. 올해의 계획이 일 년 내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붙어 있다. 내가 선곡한 음악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다.
나는 이제 방이 있는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