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 Mar 03. 2022

작은애의 동생이 되다

자기만의 방

큰애가 대학을 가고, (내가 이런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날이 올 줄이야!)

큰애가 비운 방을 작은애가 들어갔다. 작은 애의 방은 벙커 침대 하나만 넣어도 꽉 차거니와 책상에서 일어날 때 침대 부분에 부딪히지 않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반면 큰아이의 방은 남향에 넓은 창이 있는 제법 큰 방이다. 작은 애는 마치 부잣집 딸이 된 것 같다며, 마음의 여유까지 얻은 얼굴로 큰애가 쓰던 방으로 이사 갔다.


작은 애가 비운 그 좁은 방에 내가 들어갔다. 거실 귀퉁이에서 유목민의 보따리처럼 유랑하던 나의 짐들이 드디어 정착할 곳을 찾은 것이다. 책상과 바닥을 닦고 블루투스 스피커와 여러 가지 색의 펜이 담긴 연필꽂이, 북 스탠드를 책상에 배치했다. 귀퉁이에 책과 다이어리, 노트들을 가지런히 꽂았다.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문장을 붙였다. 큰애가 남긴 그림과 작은애의 그림도 붙였다. 내가 만든 올해의 달력도 책상머리에 고정했다.      

내 방에서.


머리를 숙여 책상 앞에 앉아 테이블 조명을 켰다. 편안하고 설레었다. 방이 없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기 방을 가진 것 같았다. 내가 처음 방을 가진 것도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나서인 스무 살 즈음이었다. 어찌나 좋았던지, 나는 다시 그 시절의 막내 동생의 마음이 되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방에 들어가 책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새벽에 깨어 책상 앞에 앉는 일도 좋다. 어제의 메모가 붙어 있는 벽을 바라보는 일이 좋다. 갓 내린 커피 한잔이 향기로 내 방을 가득 채우는 일이 좋다. 나만의 냄새가 방에 베이는 것이 좋다. 방문을 닫을 수 있는 일이 좋다. 어제의 메모에 오늘의 메모를 나란히 붙이고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다. 올해의 계획이 일 년 내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붙어 있다. 내가 선곡한 음악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다. 


나는 이제 방이 있는 여자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