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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스테리안 Apr 19. 2023

[오픈리서치트립] 길이없는땅: 수정만

바다의 옛 흔적으로부터 환상의 도시를 탐험하기

황제 칸이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직접 도시들을 묘사하겠네. 자네는 여행 중에 그런 도시들이 실제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거야. 내 머릿속에 모든 도시들을 추론해 낼 있는 모델 도시 하나를 세웠네. 그 도시에는 규범에 부합하는 건 모두 포함되어 있어. 존재하는 모든 도시들이 규범으로부터 그 정도를 달리하며 멀어지기 때문에 규범에서의 예외를 예상하고 가능성 있는 조합들을 계산해 내기만 하면 된다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마르코 폴로는 황제 칸에게 그동안 다녔던 도시들에 대해 말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하면서 보았던 세월을 견딘 도시들은 바람에 굴러다닐 죽은 이의 뼈도 없는 빈터, 바다의 옛 흔적이었지만 이젠 섬이 된 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성 바깥을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황제 칸은 마르코 폴로가 다녔던 도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집하여 환상의 도시를 세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환상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황제의 손짓에 따라 흠없이 세워진 도시의 경관은  낡고 허름하다고 여겨진 삶의 흔적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성 바깥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황제 칸이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만으로 듣고 세운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모아진 환상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그것이 곧 환상적인 아름다움일 수 있을까요. 오픈리서치트립 [길이없는땅]에서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풍요의 땅이라고 불리는 금란도(충청남도 서천군)와 미래산업을 대표하는 수상 레저의 도시이자 캐릭터 해로의 주 무대 거북섬(경기도 시흥시),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땅 수정만(경상남도 창원시)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가 방문했던 도시들은 언제나
황제가 생각했던 도시들과 달랐다.

"저 역시 다른 모든 도시들을 추론할 수 있는 도시의 모델을 생각했습니다.
예외와 배제되어야 할 것과 모순, 부조화, 부조리만으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만약 한 도시가 이와 같이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을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비정상적인 요소들의 숫자들을 점차 줄여나감으로써 도시가 정말 존재할
가능성을 점점 높일 수 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91p


황제 칸에게 기억  다녀온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르코 폴로는 구별하고 싶어하는 도시에 대한 기억을 묘사하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도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필요하지만, 실제 도시에 자리하고 있는 각기 여러 것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기에 무엇이 필요하는지 정확히 깨닫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것은 A B 구별할  없을만큼 똑같은 요소와 모델, 삶을 지탱해주었던 제각기 다른 관계들이 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오픈리서치트립 [길이없는땅] 마르코 폴로의 기억  도시를 탐험하는 방법을 착안하여 기획한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는 간척지, 매립지, 바다였던 곳이 땅이  곳을 다니며 환상의 도시를 상상하고 그에 따른 미래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길이없는땅] 세 번째 오픈리서치트립 장소는 창원특례시에 속해있는 수정만입니다. 경상남도 창원에 위치한 수정만은 사실 창원이 아니라 마산에 속한 곳이었습니다. 마산, 진해는 벚꽃이 아름답게 피기로 유명한 곳이며 어릴 적, 유행했던 드라마의 명대사가 떠오르면서 푸른 바다와 벚꽃의 만개로 아름다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제게 남아있습니다. 유년 시절을 경상북도 경주에서 지내면서 사실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지 않았기에 부산이 아닌 창원-마산은 제게 어색한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낯선 창원-마산의 수정만이 위치한 수정마을에 가게 된 계기는 최희진 연구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픈리서치트립을 처음 기획했을 때 가장 많은 의견을 구한 사람은 솔방울 커먼즈에서 활동하는 최희진 연구자였습니다. 최희진 연구자는 지금은 '이건희 기증관' 건립지 부지와 공원으로 유명해진 송현동 부지를 공동의 것(commons)으로 사유하자는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창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최희진 연구자가 실천해 온 '솔방울커먼즈'의 활동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송현동은 역사적으로 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진 곳입니다. 서울 광장의 3배 남짓되는 송현동 땅은 조선시대 왕족과 친일파의 집터 등으로 쓰이다 해방 후에는 미 대사관 직원의 숙소가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7년 삼성생명이 국방부로부터 부지를 매입했고 개발을 추진했지만, 규제에 가로막혔어요. 학교보건법에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는 관광숙박시설을 지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고 7성급 한옥호텔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개발 계획을 실행할 수 없었죠. 2008년에는 대한항공이 매입했지만, 이 또한 이 조항으로 개발 계획이 무산됐고 대한항공이 개발 불허 방침에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2012년에 대법원에서 패소하면서 자금난이 직면했고 결국 이 땅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죠. 그렇게 서울시와 대한항공이 이 땅을 두고 겪은 갈등을 한국토지공가(LH)가 일부 매입하고 서울시가 사유지 가운데 한 곳을 LH에 넘기는 '3자 거래' 조정안으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LH는 서울시와 강남구 삼성동 옛 서울의료원 부지 일부(1만 947.2㎡, 589평)를 맞교환했다고 합니다.

* 참고 <20여 년 방치된 서울 송현동 대한항공 땅 역사문화공원으로>, 한겨례, 2021.04.27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992899.html


복잡한 이해관계를 둘러싼 송현동의 이야기에서 솔방울커먼즈는 '주민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땅을 소유하고 사유하는 주체를 '인간중심주의'로 다루게 되었을 때에 대한 한계를 지적했고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는 히스테리안에서의 활동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결국 땅을 소유함이 자본과 쓸모 여부로 결정짓게 된다면 결국 자산가에 따라 땅의 가치를 매길 수밖에 없고 그것은 우리 삶터의 다양성과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로도 다가올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운동의 방향성은 오히려 점유하지 않으므로 소유하지 않는 사유의 의미를 중점을 두었고 터를 잡은 오동나무와 솔방울, 50년 뒤에 이곳에 거주할 주민에게 돌려줄 땅의 의미를 되짚었습니다. 솔방울커먼즈의 최희진 연구자의 활동은 삶과 일상에서의 예술의 의미와 실천 방향성에 고민하는 히스테리안 운영진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최희진 연구자의 행보를 주목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전개하면서 이건희 기증관 유력 부지로 확정되고 또 공원으로 전개되면서 솔방울커먼즈의 공동의 것(commons)으로 사유하는 활동은 창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앞서 마산, 창원, 진해로 불린 아름다운 이 세 지역은 줄여서 마·창·진이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창원시로 통합되었고 매년 인구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해결 방향으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조형물과 거리 내 시설 정비을 진행하지만, 통합시로 지역을 묶었지만-지역 간의 격차는 크다고 해요. 이동권과 문화 향유를 위해 창원으로 밀집하면서 오히려 균형발전의 무게추는 기울이게 되었죠. 저는 넓고 거시적인 맥락에서 창원을 이해하고 있었고 지방분권화를 목도하고 있는 오늘날 그 방향성에 따른 관점에서 창원을 주목했습니다.

* 참고 <통합 10년, 마·창·진은 괜찮나요?>, 경향신문, 2020.09.26.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9260902001#c2b


하지만, 거시적이고 거대할수록 좀 더 내밀한 삶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함을 최희진 연구자의 활동을 돌아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시 간의 격차/위계/삶의 형태의 다양성을 넓은 형태로 아우르고 포섭하기보다 '더 잘살고자 하는 욕망'의 마음자리를 통해 자기 내면의 욕망을 마주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내/외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곧 삶을 전환하는 믿음은 삶의 변화를 끌어내는 초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실천의 힘을 찾아야 한다는 점은 이 여정을 통해 최희진 연구자의 활동에서 깨달은 메시지였습니다.  


* 본 글과 영상은 도시연구자 최희진 연구자가 수정마을에서의 커먼즈 활동에서 목격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의 이야기를 둘러싼 삶터의 이야기를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 치부하기보다 삶터를 연결해 온 역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오늘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영상 스틸컷: 오세일 제작


바다를 메운 땅과 얽혀 살아가는 방식_글: 최희진


  옴폭하게 해안선을 이룬 수정마을은 6만여 평의 너른 땅을 마주한다. 원래 이 땅은 바다였으나 1990년대부터 매립되기 시작하였다. 애초 매립 계획은 의창군(옛 창원군)의 택지 조성을 목적으로 하였고, 마을의 발전을 기대한 주민은 어업 보상을 받고 일터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매립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1995년 도시와 농촌의 행정 구역 통합으로 수정마을은 마산시에 편입되었고, 택지 공급 과잉을 비롯해 건설사의 부도 탓에 더는 개발이 어려워졌다. 마을의 앞바다는 흙과 돌, 인위적인 것으로 덮인 채 십여 년이 흘렀다.


                        

1994년 연안 매립 진행(수정리 주민 제공)


   2006년 5월 마산시는 X기업과 협정을 맺고 수정리에 있는 매립되고 있던 땅을 공업용지로 그 목적을 변경(2008년 4월)하였다. 당시 마산시 행정부는 이 땅을 ‘21세기를 선도하는 꿈의 항만도시(Dream Bay)’로 향하는 지역 경제 부흥을 위한 발판이라 여겼다. 그리고 마산시와 X기업, 마산을 사랑하는 시민은 지역 발전이라는 약속된 미래를 그렸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조선업을 위한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의 유치와 투자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을 부흥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수정리 주민은 마을과 맞붙어있는 땅에 어떤 산업이 들어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심지어 이 땅의 용도 변경이 공업용으로 승인나기도 전에 X기업은 조선 블록 작업을 위한 시설물을 설치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주민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해 X기업의 조선업 작업장이 있는 인근 마을을 방문하여 그곳의 환경피해를 비롯해 이주 및 보상의 어려움을 목도하였다.


   마을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책위 주민은 처음으로 마을에 있는 봉쇄 수도원을 찾아갔다. 주민과 수녀의 만남은 “수도원이 생긴 후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매립 공사와 조선업 작업 탓에 “온 마을을 흔들어놓는 굉음”이 이어지던 때 수녀들은 밭일과 홍합까기로 삶을 일구어가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산중턱에 있는 봉쇄 수도원에서 평생을 기도와 노동, 독서를 수행하는 수녀들은 10여분 걸어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할머니, 또 그 처지가 비슷한 할머니의 사연을 듣게 된 날을 여전히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자세한 기록 영상은 - https://www.youtube.com/watch?v=RgV1688woRI

영상제작: 오세일
   “10분 정도 걸리는 길을 걸어가는데, 조그만 밭뙈기에서 한 할머니가 뻗장다리로 쭉 편 채 밭에서 풀을 뽑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무릎수술을 받고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는데도 김매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명 두 명, 하나 둘씩 알아가는 마을할머니들의 사연은 밧줄인 듯, 비단인 듯 어느새 수녀들을 휘감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 밑에서, 결혼해서는 남편과 시댁식구 아래서, 연세 충만해서도 다 큰 자식 아래서 평생을 자신의 자리,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몫이라고는 챙기지 못한 채 온전히 내어주는 삶만을 살아온 분들입니다.

이제 자식도 훌쩍 타지로 떠나보내고, 비슷한 처지, 비슷한 일생을 살아온 할머니들끼리 노인회관에서 밥도 해먹고 같이 병원도 가고 그야말로 재미난 삶을 통째로 다 빼앗기게 생겼다고 그 안타까운 눈빛을마치 구세주라도 되는 양 수녀들을 향해 보냅니다. 쇠사슬보다 더한 그 눈빛 너머 예수님의 눈빛 속으로,
한 명 한 명의 아프다 못해 아름다운 삶에 예수님의 생애가 겹쳐오는
그 장면들 속으로 저희는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 참고 “수녀님의 편지, 수녀들과 할머니들의 동행,” http://resujeong.kr/sub1/sub3.html (검색일: 2023/03/29) (필자 강조 표시함)



   주민 대책위와 함께 수녀들은 비민주적 행정 절차와 개발 행위, 환경문제에 대항하는 집단행동에 돌입하였다. 경남도청과 마산시청, X기업의 서울 본사 등지에 집회와 밤샘 농성, 단식 투쟁뿐만 아니라 토론회, 행정 소송 등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마산시와 기업, 뉴타운추진위원회는 “주민 전체의 동의”와 마을 발전 기금을 조건으로 삼자 협약을 맺었다. 대책위가 X기업 본사 앞에서 집회하던 때에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의 결과는 전체 주민의 49.6%가 참여했고, 찬성률은 91.2%에 육박했지만 대책위에서 무효화를 주장하였다.*


   관광명소로 가는 길목에 있는 수정마을 매립지는 “애물단지, 지역 이미지를 훼손”하는 장치로 여겨지며 개발이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 장소로 간주되거나 “미래 발전의 원동력”으로 주목받는다. 최근 이 마을은 지역 갈등을 해소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지자체, 지역 대학, 지역문제해결 플랫폼이라는 중간지원조직 등과 연계하는 공동체 회복 추진위원회를 조직해 마을학교, 협동조합 조직, 축제 등 여러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텅 빈 땅과 마주한 주민들은 개발을 희망하는 속에서 지역 발전을 향한 기쁨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또 다른 약속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 참고

위성욱. 2008. “마산 STX유치, 주민 49.6%투표 91.2%찬성.” 「경남도민일보」 (05/31) (검색일: 2023/03/28)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55362 기사 원문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발췌함. 수정마을 반대대책위는 “지난 28일 오전 마산시가 수정뉴타운추진위원회를 통해 반대 주민대책위 앞으로 ‘오후 3시에 주민투표 관련 회의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공문 한 장 보내고 당일 오후에 주민투표 공고문을 면사무소에 내걸었다”면서 “주민투표를 누구를 대상으로, 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과 논의의 시간도 갖지 않은 채 시행된 30일 투표는 졸속 투표인 만큼 원천 무효”라고 반발했다. 갈등에 따른 폭력이 지속되던 와중에 2011년 금융위기와 조선업 불황 탓에 X기업은 산업단지를 포기하였다. 이로써 수정마을의 바다를 메운 땅은 일시적 소강상태에 빠졌다. 주민과 기업과의 쟁투에서 개발을 막아낸 경우 형식적인 승리로 기록되지만 실질적으로는 패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친척과 이웃 간 서로 등을 돌린 공동체가 되었고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2007년 중학교와 매립지(트라피스트 수녀원 제공)



   매립지와 맞닿아있는 중학교 운동장에는 학생들의 뜀박질 대신에 동네 할머니들이 걸으면서 생겨난 산책길을 볼 수 있다. 해당 중학교를 졸업한 이 씨는 야트막한 담벼락 너머 바다에서 공을 주워왔던 때를 회상하곤 한다. 폐교(2019년)에 슬퍼하던 이 씨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동체협력지원가라는 역할로 공동체 회복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며 주민과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수정과(with)’라는 단체를 결성해 지역대학과 연계기관, 문화예술단체와 협업해 마을 학교를 비롯해 노래교실, 동네 평상 만들기, 어촌 살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 ‘수정과’는 마을의 공유자산을 개조해 제3의 장소로써 공유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기존 마을의 공유공간은 마을회관 2층과 경로당 등의 한정된 장소뿐이었으나 수정과 공유공간이 앞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중립지대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16년이 지난 지금, 마을과 간척지의 경계를 구분하던 철제 펜스는 세월만큼 부식되고 가늘던 대나무는 이제 숲을 이룬다. 사람의 발길은 매립된 땅까지 닿기에 어려우나 이곳의 개발과 매각 소식은 마을을 때론 들썩이게 한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학교와 축제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대화가 오갔으나 과거 상처를 뒤로 한 채 치유와 화합을 다지기란 쉽지 않다. 어느 시인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에서 “시는 우리 존재의 고통을 풀어줄 수 없다” 그러나 “거짓 욕구와 필요 아래 묻힌 욕망과 취향을 드러내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녀의 말은 시라는 예술 작품이 우리 삶의 다급한 일들을 처리해주거나 우리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주는 게 아니라 신체화된 경험을 위한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올 상반기에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히스테리안과 함께 수정마을에 다시 들어가 본다. 우리는 예술과의 접촉으로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신의 욕망을 깨닫게 된다. 이때에 “진실에 따라 행동하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혹은 다른 욕구를 충족시키는 등의 임무”는 오롯이 우리 몫이다. 수정마을과의 인연은 코가 꿰이듯 애착과 사랑, 감사, 기쁨, 기대, 좌절, 실망, 분노, 성찰 등의 양가적 감정으로 휘감길 것이다.


                      

(좌) 수정과 어촌 살이(2023.02.23. 수정과 제공) / 수정과 공유공간(2023.03.05. 필자 촬영)



최희진(도시연구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 전공 박사과정생.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참조하며 지역개발을 둘러싼 얽힘에 대해 글을 쓴다.

* 솔방울 커먼즈에 대한 활동 소개  https://commonscity.com/%EC%86%94%EB%B0%A9%EC%9A%B8-%EC%BB%A4%EB%A8%BC%EC%A6%88-pinecone-commons/ 


답사 일시: 2023.2.22~23

호스트: 최희진(도시연구자)

영상 제작: 오세일  

기획: 예술로 가로지르기  

주관: 히스테리안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본 프로젝트는 아르코 공공예술 주제심화형 프로젝트 <예술로 가로지르기 -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 : 출몰지>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소식 - https://www.instagram.com/around_across_above/ 

 https://around-across-ab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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