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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ner Jun 14. 2021

‘라떼는 말이야’가 억울한 카페라테

그냥 제가 좋아하는 라테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지난 2020년을 강타한 유행어 중 대표적인 것을 고르라면 '라떼는 말이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과거 경험만을 기준으로 '나 때는 말이야'라고 운을 띄워 말하기 시작하는 기성세대(일명 꼰대)를 일컫는 말이다. '나 때'와 발음이 비슷한 '라떼'를 대입함으로써 부정적인 인물·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할 수 있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나 역시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인 라떼가 좋지 않은 것을 지칭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라떼라는 단어 자체가 풍기는 인상이 변질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원래 의미의 '라떼는 말이야'에 대해서 적어 보려고 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라떼'에 관한 이야기다. 


 라떼(Latte)의 사전적 의미는 '우유를 탄 에스프레소 커피'이다. 이탈리아어 표기법을 반영한 규범 표기는 '라테'라고 한다(여기서부턴 '라테'로 표기하겠다). 제조법은 사전적 의미대로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섞으면 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그 두 가지 재료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나는 평소 라테보다 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시는데 그 이유는 주로 ①배불러서 ②라테 맛이 기대에 못 미칠까 봐서다. 2번이 이유인 경우 아메리카노를 먼저 맛보고 나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다음번에 방문했을 때 라테를 주문한다.


 내가 좋아하는 맛의 라테 한 잔이 나오기 위해선 다음의 조건들이 필요하다.


1) 우유와 어울리는 에스프레소는 따로 있다.

 먼저 아메리카노를 즐길 때를 말하자면 나는 선호하는 원두의 범위가 넓은 편이다. 산미가 강한 원두부터 묵직한 바디감을 가진 원두까지 가리지 않고 계절이나 날씨, 기분에 맞춰 다양한 맛을 추구한다. 하지만 우유와 섞는 것이라면 신맛보다 고소한 맛의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가 더 내 취향에 맞는다. 고소한 에스프레소의 라떼는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맛이므로 산미 있는 원두를 쓰는 카페도 라테용 고소한 원두를 따로 사용하기도 한다. 산미가 강한 원두 하나로 모든 커피음료를 제조하는 카페에선 가급적 라테를 주문하지 않는다.


2) 에스프레소와 어울리는 우유도 따로 있다.

 저지방과 무지방 우유는 논외로 하고 일반적인 우유만 비교하더라도 어떤 제조사의 우유를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맛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몇 해 전, 직장에서 잠시 카페 관리 업무를 맡게 되면서 함께 일한 바리스타를 통해 알게 됐다. 그의 제안으로 나는 여러 브랜드 우유를 구입해서 같은 에스프레소 베이스로 다양한 우유로 만든 라테를 마셔볼 수 있었고, 미묘하지만 확실한 차이를 알게 됐다. 이후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처음 가는 카페에서는 바 안에서 어떤 우유를 쓰는지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의 우유를 쓰고 있다면 라테에 도전해 본다.


3) 따뜻한 라테의 완성은 바리스타의 우유 스티밍 숙련도에 달려 있다.

 아메리카노는 HOT과 ICED의 제조 난이도가 거의 같지만, 라테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아이스 라테는 우유를 손질(?)할 필요가 없으니 쉽다.우유와 잘 어울리는 에스프레소를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따뜻한 라테는 '우유 스티밍'이라는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커피를 공부하기 전에 단순히 우유를 데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던 건 큰 오산이었다. 너무 뜨겁지 않게 적당한 온도 조절도 중요하고, 스팀기의 위치와 우유가 물결치는 정도, 그리고 소리까지 시청각을 써 가며 우유거품을 얼마나 쫀쫀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내는지가 라테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TMI: 나는 손바닥 피부가 얇은 건지 다른 사람들보다 뜨거운 것을 잘 만지지 못해서 스티밍 연습에 무척 애를 먹었고 결국 숙련하지 못했다. 라테아트는 필수사항은 아니지만 맛있는 커피에 예쁜 그림까지 얹어져 있으면 당연히 기분이 더 좋다. 카페에 가서 따뜻한 라테를 주문할지 고민될 때에는 내 음료를 만들어 줄 바리스타가 얼마나 노련해 보이고 제조에 성의를 보이는지 살핀다. 실상은 단시간에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그저 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긴 하지만, 바 안에 미숙해 보이거나 대충 만들고 있는 듯한 사람이 있을 때엔 가급적 따뜻한 라테 주문은 피하고 있다.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그동안 라테 한 잔 마시는 데에 참 까다롭게 굴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게 '한 잔의 맘에 쏙 드는 커피'야말로 정말 큰 기쁨을 안겨주기 때문에(가성비도 최고다), 귀찮더라도 이 과정을 포기할 순 없다. 라테가 정말 맛있는 카페를 발견하고서 그곳을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는 일도 즐겁다. 내일은 또 어떤 커피를 마시며 힐링할까? 자주 가는 맛집에 갈지, 새로운 곳에 도전할 것인지 고민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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