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벌레’ 노래에 얽힌 이야기
어떤 노래는 만들 때 이미 머릿 속에 장면이 그려지는데, 이번 노래를 만들 때도 그랬다. 비오는 밤 가로등 아래에서 춤을 추는 Singing in the Rain의 주인공처럼 기분이 좋아 어쩔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
몇년 전 한 아이와 같이 밥을 먹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우산을 함께 쓰고 집에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우산도 작았을 뿐더러, 어깨도 넓은 편이라 그 아이가 젖지 않으려면 내 한쪽 어깨를 빗속에 맡겨야 했다. 아마 그 친구는 모르겠지. 그날 어깨가 젖는 줄도 모를 만큼 좋았다는 것도, 이 노래의 뮤즈가 자기라는 것도.
다들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노래를 만드냐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다 뮤즈가 있지’ 라고 웃어 넘기는 편인데, 대체로 순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씨앗삼아 노래를 만드는 편이다. 감정에 물을 주면 무럭무럭 자라서 이파리가 나고 꽃도 피면 노래라는 열매가 되는 거지.
다만 그게 꼭 처음 심을 때의 마음과 다를 때도 있다. 마치 모든 사랑의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닌 것처럼, 노래도 생명력이 있어서 쓰다보면 자기만의 결말을 찾는다. 마치 소설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온종일 비가 내려도 나는 다 괜찮아요
그녀와 함께 맞을 수 있는걸요
이 노래를 온전히 생각했던대로 만들고 싶어서 꽤 오랜 시간 묵혀두었다. 보컬이 좀 더 편안하게 들렸으면 싶어서 많은 레슨과 연습의 시간을 보냈고, 뮤지컬스러운 편곡을 위해 밴드 친구들과도 오래 고민하고, 브라스 편곡도 공들여서 작업했다.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꽤나 성장한 내 모습이 보여 만족스럽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이번 노래를 완성하고 나서는 공허함이나 허탈함은 크게 없다. 조금 가벼운 마음이기도 하지만, 그냥 이 노래를 만드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다. 아픈 추억을 노래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누군가와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정도.
아마 이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도 떠오르는 어떤 장면이 있겠지. 첫사랑의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날, 사랑하는 이와의 첫데이트처럼 짜릿하고 설레는 장면들.
그냥 이 노래를 듣고 다들 행복해지면 좋겠다.
나도 그만큼 행복해져야지.
p.s : ‘헤벌레’의 영어제목을 써야해서 한참을 찾아봤는데, 사전적으로 번역이 되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아마 누군가에게 푹 빠져 바보같이 기분 좋은 상태로 바라보는 표정을 언어로 담아내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위은총 - 헤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