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O 의 이야기
그날은 취업을 위한 면접 연습이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분주하였다. 갖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단정한 옷을 입었고 머리를 매만졌으며 평소에 잘 신지 않는 구두를 신었다.
이렇게 입어야 하는 자리라고 하니…썩 편하지는 않았으나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자기소개서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어떤 질문이 나올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고 거울을 보면서 미소연습도 많이 하였다.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지칠 만큼 들었고 졸업 후 1년의 시간이 흐른 상태에서 국비로 운영되는 교육과정을 들었기 때문에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했다.
화학 공부가 좋아서 화학과를 왔지만 대학에 올 당시에는 구체적인 진로계획 같은것은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성적에 맞는 학교를 골랐고 싫지 않은 전공을 택했다. 좀더 극적인 이유라면 고3 담임선생님의 전공이 화학이었고 선생님의 다정한 태도를 좋아했던 영선씨는 좀더 나은 평가를 받는 대학에 가면 좋겠다는 정도의 막연한 생각을 했을뿐 미래에 대해서 명확한 그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전공을 정할 당시에는 그저 나도 나중에 선생님처럼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얼마쯤 해보았던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배운 공부는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주 쉽지도 않았다. 시험을 보기 전에 예상 문제를 뽑아 사나흘 준비를 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학과 일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학교가 기대만큼 재밌는것도 아니었다. 가끔 교수님이 부탁하는 실험실 보조 아르바이트를 해보긴 하였지만 그런 것은 대개 하루 이틀의 짧은 기간의 아르바이트였을뿐 자신의 적성을 가늠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경험이 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딱히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포부가 있는 편도 아니고 남들처럼 스펙을 쌓거나 대외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 소수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다소 내성적인 성격 탓에 가끔 시간을 내어 문서정리 아르바이트 등을 하곤 하였지만 그것도 지속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즐기는 일이라면 요가와 필라테스를 즐겼고 내세울 취미나 특기를 갈고 닦은 것도 아니었다.
교수님들로 부터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취업 준비에 대한 이야기는 듣긴 하였지만 영선씨에게 취업은 왠지 내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언젠가 취업을 하긴 하겠'지 라는 생각은 했지만 당장 급한것도 아니었고 무엇을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학과 공부나 주어진 일에 불성실한 타입도 아니었다.
4년동안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했고 수업은 그럭저럭 따라갔으며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 음악을 듣거나 운동을 하면서 쉬었다. 틈틈이 과제를 했고 방학에는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기도 하였다.
졸업반이 되자 영선씨와 같은 과 친구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 그룹은 어느새 취업 준비를잘 해서 취업 준비에 바빴고 나머지 그룹은 대학원이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영선씨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데 영선씨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나니 털컥 겁이 났다.
부랴 부랴 남들 처럼 취업 특강을 듣고 취업 컨설팅을 해주는 프로그램도 참여해 보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표현이지만 영선씨 만을 빼놓고 세상이 굴러간 느낌이었다. 열심히 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 외로운 운동장에 버려진 느낌도 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서류를 쓰고 취업 준비를 한다기에 영선씨도 밤을 새워 자기소개서를 써보고 지원도 해보았지만 그해 하반기에는 단 한군데에도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화학을 전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화학과 우대]라고 된 회사를 찾아서 이런 저런 일들에 지원해 보았지만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는 영선씨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놓았다. 그렇게 반년의 취업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급기야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한 영선씨는 품질관리 직무든 뭐든 좀 더 경험을 쌓아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학교 복도끝에 붙어있는 국비교육과정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다. 취업을 하지 않고 그냥 살수는 없는 노릇이고 배운 것도 대학 전공밖에 없는데 다른 일은 더욱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화학 분야로 뭔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크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그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이든 잘 배우는 영선씨는 다시 학생이 된 것 같은 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생활이 일정한 패턴을 갖자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도 다소 안정이 되었다. 매일 수업을 들어야 하는 교육생 생활이 때로 힘들기도 했지만 반년간의 교육생 과정을 통해 다양한 실무 교육도 듣고 실습도 하고 프로젝트도 특유의 성실함으로 잘 해내었다.
그 과정을 들으면서 영선씨는 자기에게 품질관리자 보다는 실험실에서 하는 분석 시험원이 더 맞을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다. 워낙 조용하고 고지식한 영선씨는 내심 직장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잘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6개월간의 국비 과정마저 마칠 때가 되자 다시 취업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교육과정이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이제 정규 과정도 막마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 날은 그렇게 교육과정이 모두 마무리 되고 취업을 위한 면접 준비를 하려 모인 날이었다.
그날따라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영선씨에게 무척 낯설었다. 모두 정장을 잘 차려입고 잔뜩 긴장한 듯 보였다. 이제 진짜 경쟁이 시작된 걸까?
영선씨는 친구들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목소리는 작아져만 갔고 머리속은 윙윙거렸다. 혼자만 부적절한 곳에 앉아있는 느낌도 들었다. 정장을 챙겨입고 온 친구들이 진짜 면접처럼 떨린다며 호들갑을 떨곤 했지만 다들 제 순서가 되자 너나할 것 없이 술술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에 뛰어들어 달리고 있는 주인공 처럼 보이는데 영선씨는 몰입이 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우스꽝스러운 연극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관찰자 같은 마음도 들었다. 모두다 억지스런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길이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답변을 하는 친구들을 보니 처음엔 웃음이 났지만 점점 그 공간에서 함께 머물기가 힘들어 졌다.
영선씨도 마음으로는 '어디든 취업을 해야지' 라고 생각은 해왔는데 막상 준비를 하라고 하니 주어진 상황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혼자만 이방인 같은 느낌만 강해질 뿐이었다. 가장자리에 선 느낌이 들었다. 주변인 같은 느낌에 내내 불편하였다.
친구들은 연극이라도 하는 걸까? 얌전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본인은 무엇 무엇을 잘한다고 자기 어필을 하고 자격증도 몇 개씩 갖고 있고 외국어에 학점도 좋고 관련 경험도 많다고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모습이 익명의 낯선 타인처럼 느껴졌다.
더욱 움츠러들게 된 것은 영선씨 스스로 보기에도 남들만큼 내세울 것이 없어보인다는 점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초라한 것 같았다.
더욱이 자기소개서에 한 줄 더 넣을 교육훈련 경험은 생겼지만 영선씨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국비 교육이 끝날 때가 되니 다시 자기소개서를 쓰고 취업에 도전해야 하는데 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취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스멀 스멀 피어났다. 하지만 이제와서…… 이 모든 노력이 어쩌면 취업을 위한 과정이었는데 영선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
‘그냥 아프다고 할까? ‘ 라는 생각이 영선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다. 자기소개서는 대충 채워 넣었지만 면접 연습장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였다.
6개월간의 국비 교육을 들었기는 했지만 영선씨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것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진로는 모호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으며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다.
사실은 취업을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였다.
남들도 다들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니까 취업을 하려고 애를 쓰고는 있지만 영선씨는 자신이 진짜 그 길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해야 한다’와 ‘하기 싫다’의 마음이 매일 매일 춤을 추었고 그냥 가만히 앉아 배우는 일은 좋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부담스러웠다. 답답하고 속상해서 조용히 울기도 여러 번 하였지만 그렇다고 속내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성미도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영선씨를 보면 안타까워했지만 달리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영선은 몸을 꼼꼼 싸멘 누에고치 같은 상황이었다.
이만큼 왔는데... 그래도 면접 연습장에 참여를 하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부족한 자기 자신이 드러나게 될까봐 걱정이 되고 억지 말을 해야 한다는 불쾌감이 훅하고 지나가는 것을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이라도 여기서 도망칠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면접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앞에 있고 친구들이 모두 열심히 연습하는 그 분위기를 깰 용기가 없었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까맣게 쓰여있는 자기소개서를 쳐다보기만 하는데 심장은 두망방이질을 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영선씨의 차례가 되자 배운대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는 친구가 자기소개도 하고 관련된 경험을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점점 더 자신감이 없어졌다.
영진씨는 머리속이 윙윙 거리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자기생각도 분명하고 자기 일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면접 연습장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왈칵 나와 대답을 이어가지 못했다. 면접 연습장에서 들었던 질문은 그저 자기소개를 해 보라는 간단한 질문이었다.
영선씨는 몇번이나 대답을 해보려고 소리를 내보았지만 ‘ 음…’ 하는 말 다음에 어떤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영선씨는 겨우 입을 떼었다.
‘ 저는 여기서 그냥 포기하겠습니다. ‘
면접 연습장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취업을 하고자 6개월이상을 노력해 왔고 무엇인가를 위해서 달려왔는데 문 앞에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겠다는 영선의 이야기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영선의 두 눈에 눈물이 나지만 왜 눈물이 나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가슴은 터질 것 같은데 이유를 모르니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영선씨도 자신의 눈물이 어떤 의미 인지 알지 못했다.
상담실에 와서 며칠 전 있었던 면접 연습장의 상황을 말하는 영선씨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나도 그날 그렇게 면접 연습을 망치고 온 영선씨가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가만히 잠자코 앉아 있던 영선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뗐다.
‘ 선생님 저는 다른 애들 처럼 그렇게 못해요. ' 그녀가 힘겹게 꺼낸 말은 그게 전부였다.
어렵게 찾은 한마디의 말은 내가 남들처럼 혹은 남들 만큼은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남들처럼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 지점이 궁금하였다. 꼭 ‘남들처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자기 답게 하면 될텐데…’이런 생각이 스쳤지만 영진씨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분명하게 지원동기를 말하거나 직무에 대한 관심사를 표현하거나 이 일을 정말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일을 하고 싶지만 화학 일이 저에게 맞는 일인지조차 잘 모르겠고 정말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너무 답답하지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저는 융통성도 부족하고 사회생활을 잘 할 자신도 없어요. 그런데 달달 외워서 자신있게 말한다면 저를 속이는 것 같고 그렇다고 이렇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말을 솔직하게 한다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싶습니다. ‘
영선씨는 겨우 겨우 온 에너지를 다 쥐어짜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꺼내놓았다.
그리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맘껏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걸까?
그녀는 눈물을 꾹꾹 참느라고 온 힘을 쓰고 있었다.
영선씨의 정직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남들처럼 할 수 없다는 말도 잘 이해가 되었다. 마음에서 무엇인가를 꾸며서 해 내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현실의 벽 앞에 무능력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준비안 된 사람이라는 낙인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을 것이다. 영선씨에게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 없었다.
그녀가 겨우겨우 자기 다운 목소리로 할 수 있는 행동은 여기서 포기하겠다는 말 뿐인지도 몰랐다.
이 길이 아니라면 아마도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내가 선수 칠 일은 아니었다.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영진씨 입에서 나와야 하는 말이었다.
기다려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선은 그녀의 부절적감을 공감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잃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돕는 것이 필요했다.
'영선씨는 주로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해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요새 요가와 필라테스 운동이 좋아서 몰두해 있다는 예상외의 대답을 하였다. 깡마른 몸매였는데 운동을 좋아하는지는 나도 잘 몰랐던 사실이었다.
운동 이야기를 하는데 여태까지 무표정하고 무감각해 보이던 영선씨가 갑자기 에너지를 채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운동을 좋아해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운동하며 집중할 때의 자기가 좋다는 말을 하였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조용한 모습과 요가 같은 운동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요가와 필라테스를 매일 하는 편이예요?' 라고 묻자 하루에 거의 3시간을 운동으로 보내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운동은 혼자서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는 말과 함께 운동 이야기를 하니 그녀는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 졌다.
그녀가 운동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굉장히 잘 어울리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을 때 그녀에게서 얼음장 같은 고요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는 그녀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좋아하는 운동과 무척 잘 어울리겠구나 내 마음에 반가움 마저 일었다.
아주 쉽게 생각하면 '만약 영선씨가 요가나 필라테스를 좀더 전문적으로 하면 어떨까?' 이 또한 내 마음에 스친 생각이지만 이 순간에 나누지는 않았다. 그 생각을 잘 붙잡아 두고 싶었다.
화학을 전공하고 품질관리 직무 교육을 받고 취업 준비를 하는 영선씨가 있고 하루에 3시간을 몰두해서 요가와 필라테스를 운동하는 영선씨가 있다. 그 사이의 연결점을 찾아야 하는 것은 그녀가 풀어야 할 자신에 대한 과제였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슬쩍 던지는 질문이 때로는 균형점을 옮겨주는 버팀돌이 되긴 하지만 결국 해답은 스스로 내려야 하고 자신의 과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사람도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선씨가 저는 ‘ 포기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당면한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 상황에서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솔직해지고자 용기를 낸 바로 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포기한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라고 나무라기 이전에 ‘아무런 대책도 없고 어떤 계획이 없으면 어떤가?’ 그렇게 불안해도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이 상황이 더 중요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저항하고 거스르는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고 그래도 충분히 괜찮아라는 말을 들을 때야 비로서 그럼 '진짜 내 안에서 차올라 오는 진짜 목소리는 무엇이니?' 라고 자신있게 묻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해야만 하는 것, 남들처럼 해내야 하는 것 혹은 남들 보다 잘 해야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굴레로 우리 자신을 옳아매기도 한다. 이런 굴레 앞에서 자유롭기란 대단한 용기가 필요다. 바로 그때 내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면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위대한 용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자유롭도록 운명 지워졌다(condemned to be free)'는 사르트르의 말은 들었을때 나는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란 말로 이해했다. 당연히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선택도 우리의 몫이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구성되어 지는것도 우리의 몫이다. 그 결과들이 모인 것이 지금의 나라고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구성주의 이론가인 나에게 진로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 창조해 나가야 하는 것, 무엇을 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며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서 자기가 선택하는 것들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진로는 나에게 맞는 신발을 찾는 과정과 흡사하다고들 하는데 그 말은 적절한 비유라 생각한다.
보기에 굉장히 예쁘고 남들에게 아무리 잘 어울리는 신발일 지라도 내 발에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멋진 옷과 멋진 구두지만 어울리지도 않고 발에도 맞지 않다면 장거리를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영선씨가 한동안 방황을 하더라도 어쩌면 지금 멈추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자기 자신에게 꼭 맞는 신발을 찾고 그 신발을 신고 훨훨 날아오른다면 그녀가 갖고 있는 침착하고 집중력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피어나리라 생각되었다.
상담 시간에 영선씨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어 한권을 추천하였다. 전신장애로 고통받는 상황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준 대니얼 고틀립의 책' 마음에게 말걸기'라는 책이었다.
그 책에는 ‘꼭 내가 생각하는 내가 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스럽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를 괴롭혀 온 그 오랜 불안과 열등감도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라는 문장이 있다. 영선씨가 그 문장을 오래 오래 음미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저버린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포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끔은 전복의 용기도 필요하다. 관성을 거스르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것이야 말로 진짜 용기이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일 뿐이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포기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영진씨라면 '지금부터 저는 다른 인생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습니다'라는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하지만 경계에 서 보는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좀더 선명하게 만날 수 있길 바래본다.
[1]
대니얼 고틀립,
『마음에게 말걸기』, 문학동네, 2008, 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