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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Sep 08. 2022

특별한 경험

그냥 음식이 좋아서 쓰는 음식 이야기

 나는 '모태 소극이'이지만 항상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을 즐겼다. 고등학교 때의 내 목표는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문예특기자가 되기 위해서 순천, 부산, 서울, 익산, 광주, 해남 등 전국의 백일장을 다녔고 비록 꿈꾸던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가끔씩 글을 쓰면서 내 속의 묵은 감정을 비워내곤 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우산 없이 한 시간을 걸어서 집에 간다거나 한밤 중 짙은 안개가 낀 금강 다리 위를 자전거를 타고 건너거나 하는 류의 기행도 해봤고, 대학 입학 전에는 로드 자전거도 아닌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1박 2일간 금강(대청댐~금강하굿둑)을, 현직에 나온 뒤에는 발이 꽁꽁 어는 추위를 참으며 서해갑문부터 팔당대교까지 남한강을 종주한 적도 있다. 군 복무할 즈음이 되어서는 교사들이 주로 복무하는 육군이나 공군이 아니라 해군에서 갑판병으로 복무했고 지금은 퇴역한 배에서 6개월 간 함정 생활을 했다. 군 전역 직전에는 무슨 바람에선지 갑자기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서 3개월 간의 연습 끝에 결국 두 번의 하프마라톤 완주를 했다.


하프마라톤 완주 후에 받은 메달


 물론 대부분 혼자 할 수 있는 취미에 한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왔다. 최근에는 가까이 왕래하는 한 친구의 소개로 뮤지컬에 빠지기도 하고, 다른 감각에 비해서 후각에 민감한지라 향수라는 세계를 접하고 저가의 니치 향수부터 조금씩 식견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꾸준히 도전해왔던 분야는 역시 음식이 아닐까.

 나의 아버지는 건축을 전공하셔서 평생을 현장에서 현장 밥을 드시며 살아오신 분이라 타지에서 생활을 오래하셨다. 덕분에 다양한 지역에 여러 맛집을 잘 아셨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곧 잘 따랐던 나는 전주에서는 모주를, 용인에서는 참치회를 처음으로 맛봤다. 그 외에도 진주에서는 육전과 진주냉면, 보령에서는 곱창구이와 전골을 처음 먹었다. 추운 날 대전역에서 먹었던 가락국수나 군 시절 태풍 피항을 마치고 콩나물국을 부어 끓여먹었던 컵라면의 맛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느껴왔던 그 맛들은 지금 내 정서의 밑바탕을 이루고 그 음식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그때의 공기의 향기, 분위기, 기분, 질감 같은 것이 다시 살아나서 귀소본능처럼 그 음식을 다시 찾게 되는 것 같다. 


역시 지금은 너무 사랑해서 주기적으로 먹어줘야만 하는 칼칼한 곱창전골(좌)과 육전이 올라간 진주냉면(우)


 음식은 내게 너무도 커다란 세상이어서 맛있는 음식을 든든하게 먹으면 행복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끝내 먹지 못하면 기분이 못내 찝찝하다. 가려던 식당이 정기휴일이거나 문을 닫으면 비슷한 음식이라도 찾아서 욕구를 채웠으면 하고 별 기대 없이 먹은 음식점이 뜻밖에 맛집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친구들은 나한테 먹짱이나 쩝쩝박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회식 장소로 좋은 식당이나 특정 지역의 맛집을 묻기도 한다. 물론 내 입맛이 엄청 미식가 스타일은 아니라서 모두의 취향을 척하니 맞출만큼 깐깐하진 않지만 내가 추천한 식당들은 3번 타자 정도는 되기 때문에 홈런은 아니어도 필요할 때 결승타를 쳐줄 줄 안다. 내가 추천한 식당에 대해서 호평을 들으면 내 세상이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렇게나 음식을 사랑하고 맛집을 찾아 발굴하거나 새로운 레시피를 익히는 것이 인생에 있어 큰 즐거움이자 보람이다.


 때문에 내가 음식으로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사실 나를 쓰고 싶어서이다. 내가 먹어왔던 음식은 지금 내 피가 되거나 살이 되어 나를 이루고 있고 그 음식들과 함께해왔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므로. 그래서 내가 먹어왔던 음식을 반추하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을 반추하는 것이다. 내가 먹어왔던 음식과 그 경험을 증명하는 일은 그 속에서 나를 증명하는 일이다. 내가 먹은 음식들이 맛있었던 이유는 그 음식을 먹을 때 내가 삶을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고 덕분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아껴 마지않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8가지의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당신들에게 3번 타자 정도는 되어주길 바란다. 내 음식 뿐만 아니라 당신들의 음식도 나의 음식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길 바란다. 나에게 음식이라는 세상이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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