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자작시 - 차 한 잔이 나오기까지
#심리상담 #내담자
이런저런 일상 속 사건
뽀글뽀글 커져가는 생각
불쑥 올라오는 감정
그 빳빳한 이파리들을
하이얀 일기장에 넓게 펼쳐놓고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찻잎도 마음도
조금은 부들부들해지지
말린 찻잎을 솥에 덖을 땐
온도가 일정하도록 불 조절을 잘해야 한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그치, 불 조절 잘해야지
관계가 내 맘처럼 안 된다며
속상해하지도
난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며
체념하지도 않게
그러면서도
내 안의 부정적인 생각은 옅어지고
그윽한 향기만 남게
잘 덖어진 마음을 문지르고 토닥이며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살아낸 나를 위로해
그 날 너, 마음이 많이 슬펐겠다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상담 날이 가까워오면
하고픈 말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해져
나 그때 왜 그랬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햇빛에 말리며 맘을 마저 들여다보고
내 나름의 답을 찾으려 애써봐
절구로 콩콩 찧고 모양내고 나면
앗, 어느새 상담 갈 시간이네
선생님은 알려나
고작 50분 동안
선생님이랑 차를 홀짝이는 게
미치도록 좋아서
그 시간을 준비하며 14일을 살아간다는 걸
그 기억을 떠올리며 또 14일을 산다는 걸
* 이 시는 차 만들기 과정의 일부를 담고 있습니다.
보이차 기준입니다.
1. 찻잎 따기(채엽, 흐리고 비 오는 날은 피해야 해요.)
1. 채다한 찻잎 시들리기(생엽 탄방/위조)
2. 가마솥에 찻잎 덖어 엽록소 제거하기(살청)
3. 찻잎 주무르고 문질러 맛과 향 좋게 하기(유념)
4. 햇빛에 다시 한번 말리기(일광 건조/쇄청)
5. 수증기에 찌기(긴압)
6. 절구로 찧고 모양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