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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07. 2024

할미꽃

봄날이면 피어나는 그리움







여기저기서 봄꽃 소식이 들려옵니다. 긴 겨울을 보내고 막 펼쳐진 꽃들을 바라보면 미소 짓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제가 사는 곳은 봄이 늦습니다. 아직 무채색의 산에는 이제 생강나무의 노란 꽃들이 열리기 시작하고 길가 개나리도 이제야 꽃망울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희미하게나마 나무에는 물이 오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렇게 자연은 봄바람을 붓 삼아 연한 바탕색부터 서서히 그 그림을 그려나가겠지요.


그런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문득 두고 온 저의 산책길이 그리워졌습니다. 이맘때면 매화가 핀 언덕을 지나 자리 잡은 작은 못이 있는 늪가에서는 산개구리의 합창이 요란할 겁니다. 근처의 벤치에 앉아 그들의 봄맞이 음악회를 며칠 동안 듣곤 했습니다.

묘지를 지나 난 작은 소롯길가에는 보랏빛 제비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거예요. 굳었던 근육이 움찔움찔 펴지며 밖으로 저를 불러낼 때 별처럼 피어나던 공원의 노루귀는 벌써 꽃은 지고 솜털 보송한 예쁜 귀모양 작은 잎을 펼쳤을까요. 이른 아침 땅에 엎드려 맡아보던 남산제비꽃의 향기도 그립네요.

꽃다지야 꽃마리야 봄까치꽃 들아!

가만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산들이 둘러싸인 이곳에도 꽃은 피어날 테지만  저는 익숙한 것들과의 시간을 그리워합니다. 늘 걷던 산책길의 친구, 그들은 제게 가족이나 친구와 닮은 존재였던 모양입니다.


산책길, 봄날 묘지의 잔디밭에서 할미꽃을 만날 때가 많았습니다. 솜털로 뒤덮인 구부러진 꽃의 얼굴을 살포시 들어보면 자줏빛 벨벳 같은 꽃의 얼굴 속 노란 꽃술이 너무도 어여쁩니다. 아주아주 오래전 제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만났던 할미꽃의 슬픈 이야기가 함께 기억납니다. 할머니는 병들어 세 딸들을 차례차례 찾아갑니다. 두 딸에게 내쳐지고 마지막으로 마음 착한 막내딸을 찾아갑니다. 막내딸의 집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서 그만 지친 할머니는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맙니다. 할머니가 죽은 그 자리에서 등 굽은 할미꽃이 피어났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할미꽃이 지면 실처럼 가느다란 흰머리카락을 닮은 씨앗이 맺힙니다. 그 씨앗들은 바람에 훨훨 멀리까지 날아가게 되지요.


자식들을 키울 때 더 아픈 손가락 같은 자식이 있기는 합니다만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어 키우게 됩니다. 유전자의 조합은 진정 무궁무진해서 비록 서로 일부 닮기는 하더라도 성정이 모두 다르다는 건 키우면서 알게 되지 않던가요. 왜 할머니는 마음 착한 막내딸부터 찾지 않았을까 괜스레 이야기에 트집을 잡아봅니다.

어머니가 늙고 노쇠해지시면 착한 며느리가 있거나 딸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딸들이 케어를 하게 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젊은 나이에는 엄마를 많이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던 언니들은 어느새 자신들도 늙고 병들어 제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제 엄마 역시 딸들을 찾아오시더군요. 그 시간들 속에서 보이는 제 모습들을 돼 새겨봅니다. 그 시간 속 제 모습들. 세월의 힘 앞에서 자신 또한 무력함을 느끼는 순간마다마다, 늙은 엄마께 짜증 내고 화내던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늙기는 하셨어도 당신은 끝까지 한점 부끄럼 없도록 최선을 다하셨었음을 이제야 하나씩 깨달아 갑니다.

그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어머니들은 우리 모두를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시며 훨훨 하늘나라로 떠나셨겠지요.


봄이면 유난히 그리운 이들이 많습니다.

늘 그렇듯 새순이 돋고, 찬바람 속에서 꽃들이 하나둘 피어날 때 그렇게 그리움도 살포시 함께 피어납니다.





할미꽃


무덤가, 메마른 절벽 위

피어난 할미꽃

꼬까옷 입고 만났던

바로 그 할머니신가


늘 고운 모습

그대로 건만

나, 주름진 얼굴로

할미꽃을 바라 보네


며칠만 꽃으로 살다

한잎 두잎 떨구고는

백발 휘날리는 날.


일생에 한번

굽혔던 허리, 육신을 벗어던지고

새 세상으로 떠난다

하얀 날개를 달고 훠얼 훨

푸르른 하늘 향해

훠어이 훠어이

이 세상밖으로


저리 가벼이 늙어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가

할미꽃 진 자리

할미새 한쌍 새 생명 품었네.


Main Photo: by Daniel Mirle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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