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샛별 Nov 19. 2022

별 헤는 새벽

당신에게 보여드릴 수 있다면


   


새벽 세 시 오십 분 템플스테이 방문을 열었다. 주위는 캄캄하다. 스테이 건물 앞마당에 있는 탑 주위를 밝히는 불빛 짙은 어둠 속에 산들이 잠들어 있다. 댓돌을 밟고 내려섰다. 오늘 이 스테이 건물에 깃든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뒤채며 밤을 보내고 새벽 예불에 참가하러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산 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스테이 건물에서 대웅전까지 난 길, 오랜만에 접한 짙은 어둠 속에서 산짐승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발을 헛디딜까 두려워진다. 폰의 손전등을 켜고 서둘러 대웅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예불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하늘엔 많은 별들. 깊은 새벽 짙은 어둠 속에서 보는 별들은 더욱 맑고 영롱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낯익은 별자리를 찾아보느라 한참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나이 탓인가 젖힌 목이 자꾸만 아파와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지치도록 별들을 바라본다.

찬 밤공기 속에서 오래도록.

아! 얼마만인가.

하늘에 별들이 너무도 많다.

   -9월 어느 날 템플스테이에서 별을 보다.




아파트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밤하늘,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더는 세어야 할 별이 없다. 

도시의 밤하늘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검은 못이다.

별이 없는 하늘, 나는 슬픔에 젖는다.


도시의 넘치는 불빛 속에서도 게 빛나는 별이 하나 있다. 금성(Venus)이다. 하루 두 , 아침 이른 시간에 뜨면 샛별, 집을 지키고 있는 개들이 이른 아침 일하러 나갔던 주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저녁 시간뜨면 개밥바라기 별이라고도 한단다. 또한 태백성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는 밝은 별이다. 

어느 날 사랑하는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적막함에 슬퍼할 , 깜빡이는 별빛이 녀석의 눈빛을 닮은 듯하여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별들다시 바라보게 된 때가 있었다. 그와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글로 치유의 날들을 보내게 되었고 그렇게.. 브런치 나의 이름은 샛별이 되었다.


별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별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천장에 별 스티커를 붙였다. 밤이 되어 불을 끄면 우리들이 잠자는 방에는 형광빛 별이  떠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어설픈 별자리를 보며 잠들곤 한 탓이었을까 당시 초등학생 큰 아이의 어릴 적 꿈은 천문학자였다.

어린 시절 나는 가마니로 만든 자리 위에서 또는 평상 위에서 누워 별들을 헤곤 했다. 밤공기를 마시며 밤하늘을 이불 삼아 누워 별을 헤다 지쳐 잠든 밤. 밤하늘은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별들이 있어 더욱 아름다웠다. 별들의 반짝임과 함께 이쪽 산등성이에서 반대편 산등성이를 넘어 이어진 뽀얀 별들의 강물인 은하수를 바라보다 보면 외할머니가 생각났고 들려주시던 견우와 직녀, 별이 된 아이 샛별이의 이야기가 함께 있었다. 조금 더 자라면서 알게 된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알퐁스 도데의 '별',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마종기 시인의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그렇게 별들의 이야기는 사는 내내 오래오래 따뜻한 기억 속에 그리움 그 차체로 남았다.




항성이 이루는 별자리는 지구의 반구 어디에서나 같다고 한다.  그들은 태양계 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밤하늘에 박힌 듯 일정한 모양을 이루며 나타나는 별들은 옛사람들에게는 더욱 신비한  것이었으니 그 이름들이 수많은 신화와 함께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왔고, 그 별자리는 오랜 세월을 늘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간직한 채  봄 여름 가을 겨울 항상 빛나고 있었을 터였다. 그 별들의 길을 따라 순례자들이 떠났던 '산티아고 디 콤포스텔라'에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네덜란드에서는 도시에서 별빛을 되찾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밤 10시 나팔소리와 함께 도시의 가로등과 모든 빛을 끄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별보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것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수많은 볼거리들과 즐길 거리들 속에서 살지만 마치 바닷물을 마신 듯, 끝없는 갈증을 느끼게 하는 도시의 삶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우리에게 전해 줄 위안을 생각해 본다.


밤이면 인간이 만들어낸 불빛들도 무수히 빛나지만  은은하고 신비한 빛의 반짝임은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이다.

 별은 문명에서 멀어질수록, 어둠이 짙을수록  보이게 되고 가난한 들이 사는 마을에서  가까이 빛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바람, 행복, 사랑, 미움, 소망 그런 것들처럼 밝은 인공의 빛에 가려 어느 날 우리들 곁에서 사라진 별들 역시 그렇다.

우리에게 어느 날 너무도 익숙해진 밝은 빛 때문에 사라진 별들은 밤하늘의 검은 공간 속에서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빛나고 있었음을.

그날 새벽 공기 속에서 별을 보는 시간에, 잃었던 별들을 다시 찾은 듯해서 나는 참 오래 행복해했었다.


인간은 가능한 한 인간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한계 지어진 자아는 없다. 천문학자가 벌목꾼이 되면 그는 별무리에 감동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

나는 천문학자와 벌목꾼이 어떻게 인간적으로 차이가 나는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벌목꾼이 더 인간적인 것 같다. 그는 기도를 할 줄 알고, 사랑을 알고 있다. 또 벌목에 영향이 없으면 포도주를 음미할 줄도 안다. 그는 벌목작업을 하면서 보다 풍요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 생텍쥐베리, '사막의 우물' 중에서


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시간을 넘어서 잃어버린 아름다운 마음속 뜰을, 가장 맑은 동심의 시간을 들여다보게 된다. 별자리의 이름을 모르면 어떠랴. 얽힌 신화를 모르면 어떠랴. 유년의 시간 바라보기만 했어도 많은 꿈을 꾸게 했던 별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신비한 을 꿈꾸는 일은 멀고 먼 다른 세상 속으로 여행하는 꿈을 내게 건네주었다.

별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나 광활한 우주 속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아주 작은 것이고 우리들 모두가 아주 작은 먼지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다. 저렇게 수많은 별들이 있음을, 우리가 사는 지구도 그 작은 별 중의 하나임을... 누구나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면 겸손해지지 않을  없다.


별은 소망의 다른 이름이다.

꿈에 사랑하는 이를 만났다. 몹시 힘들어 보이는 얼굴이다. "그래 힘껏 정말 애썼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려무나. 지금의 고단한 시간도 영원한 것은 아니란다. 지나가는 것이지. 멀리서 내가 같은 별을 지켜보고 있단다. 늘 너를 사랑한단다."

그렇게 별을 올려다보며 작은 소망을 전한다. 비록 우리는 잘 볼 수 없어도 별들은 변하지 않고 저 하늘에서 무수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 그 옛날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별을 보는 시간이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리라 나는 믿는다.


빛이 넘치면 별은 가려진다.

별을 잃는다는 것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헤엄치다 나를 잃는 것, 멀리 깊이 꿈꾸는 것을 잃는 것, 우주를 향한 경이로움을 보는 눈을 잃는 것, 소중한 인연들의 끈을 잊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별이 된 사랑했던 이들과,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는 시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다.

함께 별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빛이 사라진 어둠 속 어딘가에서 오늘 밤도 별은 찬란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다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 마 종기 시인



Main Photo : by Timothy Johnson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