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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n 14. 2022

뚜벅이라서 좋았던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한 군산 장항 여행




우울한 날이 며칠이었다. 입맛도 의욕도 없어지고 운동도 책을 보는 일도, 필사도 시들하기만 했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생머리를 파마를 했다. 여전히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훌쩍 짐을 싸고 아무 계획 없이 목적지만을 정한 여행을 떠났다. 군산으로 장항으로.


딱 한번 군산에 발을 디딘 적이 있었다. 둘째가 중학교 일 학년이었을 것이다. 하루 휴가를 내고 장항선을 탔다. 종착역 장항의 짧은 번화가를 지나 바닷가 쪽으로 나서니 선착장이 었다. 그곳에서 제법 큰 배를 타고 안으로 길게 열린 바닷길을 가로질러 군산에 닿았다. 낯선 항구도시의 선착장을 기웃대며 섬으로 가는 배들의 여정을 헤다 다시 그 배로 장항으로 건너왔다.

아주 짧은 시간만을 머문 그 여행길에서 아들은 배를 탔던 기억을, 나는 골목길에 놓인 유년의 기억 속 낯익은 꽃들이 심어진 화분이 놓인 작고 정감 어린 마을을 기억했다.

스치기만 한 군산보다는 장항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있었다.


그런 내가 여행지로 왜 하필 군산을 떠올렸을까?

곱게 익듯이 나이 들어가고 싶은 소망이 눈에 보이는 듯한 모습을  요즘 자주 접하는 브런치 글 속 작가님의  글들을 통해 다. 늦은 나이에도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어 가고 계시는 작가님의 기운이 군산으로의  여행떠오르게 했던 것일까. 혹시라도 우연히 글 속 그분이 이야기하신 동네 책방에 들렀다가 그분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말랭이 마을을 찾았다. 배차시간 너무 길어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택시를 탔지만 기사님도 잘 모르시던 곳, 말랭이 마을의 아주 조그맣고 예쁜 책방 '봄날의 산책'에서는 그날의 행사 '작가와의 시간'끝나가고 있었다. 떠나는 사람들을 막 배웅하고 닫힌 문을 열어 준 책방지기가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스치듯 떠나며 지나친 그날의 작가님은 서로 따뜻한 댓글로 만나던  다른 브런치 작가님이셨고 책방지기 또한 브런치 작가시란다. 

그 책방 지역 군산의 작가 코너에서 책 두 권을 샀다. 행사가 아니었더라면 그 시간은 닫혀 있었을 거라던 책방지기님의 말씀을 들은 터라 잠깐 둘러보았을 뿐 다음을 기약했다. 댓글로 한번 군산을 방문하리라 글을 남겼던 좋아하는 작가님께는 인사차 나의 폰번호를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책방지기 모니카 님께서 주신 연락을 받고 두 분 작가님이 전화를 주셨다. 글로만 서로 소통하다 목소리로 다시 만난 브런치의 인연들. 서로 옷깃만 스치고 지나친 작가님과의 전화도, 아파서 그날의 행사에 오시지 못했다던  노년의 멋진 작가님이 주신 전화도, 시간이 맞지 않아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목소리로 전해지는 따뜻한 서로의 이야기로 여행 초입 따스한 군산의 기운이 내게 스미듯 밀려왔다. 


반듯한 살고 싶어 나답 않은 일도 받아들여 안으로 거두어 삭히던 나를 밀쳐두고,  마음과 몸 모두 발 가는 대로 오랜만에 젊은 날처럼  몸으로 부딪치며 걸어 보고 싶은 날이었다.

군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자잘한 볼거리들을 둘러보느라 이곳저곳 나이를 잊고 뚜벅뚜벅 걸었다. 부두로, 월명공원으로, 문화의 거리로 철길마을로 걷고 또 걸었다.

내 두 발로 온전히 걸어 찾아다니는 여행은 맛집이나 볼거리만을 빠르게 보는 것이 아니어서 느리게 걸으며 군산의 아기자기한 요모조모를 보는 여행, 정말 뚜벅이라서 좋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십여 년 전 어린 아들과의 여행을 추억하며 그때의 배가 아닌 시외버스를 타고 동백 대교를 건너 장항으로 향했다. 바다를 향한 송림숲을 찾아가는 길에서는 타야 할 버스를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인터넷에는 있다는 버스를 타는 곳도 있는지 조차, 만나는 장항 사람들도 모르는 듯해서  한가운데서 미아가 된 기분으로 한참을 헤매었다. 네이버 길 찾기도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라 결국 버스 안내판 한 귀퉁이에 붙여진 어렵게 찾은 택시번호로 전화를 걸어 겨우 택시 타고 송림숲으로 갔다. 그렇게 도착한 송림숲 근처에서는 향긋한 솔 냄새가 지친 우리를 반기며 위로해 주었지만 뻘이 드러난 바다는 저만치 후퇴해 있어서 물 빠진 바다 위에 덩그러니 선 스카이워크는 찰랑찰랑 바닷물 속에 서 있을 거라 상상한 내 생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참 동안 솔향을 맡으며  조성된 소나무 숲을 걸어서 그 길 끝 바다에 인접한 데크까지 걷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카이워크에 올랐다. 나무 꼭대기에 근접해 높이 세워진 다리는 올라보니 제법 길었고 처음 느꼈던 실망감과는 달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슴이 확 트이게 한다.

나는 두 팔을 껏 벌리고 바람을 맞이해 본다.

지금 나는 자유롭다!


장항 시내로 다시 돌아가는 길, 만나기 힘들었던 관광순환버스를 만났다. 택시도 보기 힘들고 귀한 버스의 배차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워 폐역이 된 장항 옛 역을 들러 기억을 더듬어보고 싶은 마음을 접는다. 금강 하구둑으로 향했다. 버스는 이름과는 달리 관광순환버스가 아니라 실제는 이곳저곳을 들러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긴 여정을 가는 버스였다. 내릴 곳인  하구둑을 일러 달라는 부탁을 받은 기사님은 우리에게 거기에 왜 가느냐고, 무얼 볼 게 있느냐 물으신다.  이유를 알 듯하다.

군산 쪽 하구둑에 아름답게 조성된 꽃길을 상상하며 내린 이편 둑에는 꽃도 없고 관찰 시즌이 아니어서 새를 관찰하는 몇 사람뿐 고즈넉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음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여 드러나 있던 갯벌이 바닷물로 채워지고 갯냄새가 채워지도록 어제 걷던 길이 있는 반대편 둑에 앉아 긴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뻘 위에서 마치 정지한 듯 구조물처럼 서있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새처럼 말이다.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곳에서 우리는 새를 보고, 바다를 마음껏 바라보며 오랜만에 쉴 시간을 얻었다. 느리게 천천히 가는 여행의 맛을 음미하면서.


금강하구둑에서(멀리 군산이 보인다)

하구둑을 떠나 장항역 근처의 국립생태원으로 갔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생태원은 다 보려면 하루를 다 써야만 할 듯 넓어서 에코리움 만을 보기로 했다. 진기한 동식물들의 모습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지만 루에 몇 만보를 걷는 이틀간의 일정이 무리였나 보다. 아픈 발과 임박한 기차 시간을 고려해 다음에는 자연관찰을 좋아하는 소꿉친구와 다시 오리라 마음먹고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은 고단해도 마음에는 상쾌한 바람이 분다.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근거리는 걷기를 고집한 여행은 이동할 때마다 자잘한 문제들이 자주 생기곤 했다. 내가 믿고 사용하는 네이버의 길 찾기 앱에 의하면, 있다는 버스는 나타나지 않아 한참씩 기다리다 결국은 포기하기도 했으며, 터미널의 시간표에는 버젓이 있는 순환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를 터미널 안내 데스크에 있는 사람조차 몰랐고, 그곳에 살고 있는 토박이 분들조차 잘 몰랐다.

차를 타고 가고 싶은 곳을 택하면 바로 직진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어서  이동하는 내내 우리의 의지대로만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에 접할 때마다 공공 이동수단이 잘 발달되어 있는 도시에서 온 우리는 길지 않은 여행시간을 생각하며 실망하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긴장의 끈을 탁 놓았다. 주어지는 대로 계획을 수정하자. 어차피 사는 건 답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 아니었던가.


송림에 우리를 태워준 택시기사는 동행인 미혼 조카에게  남편이랑 오지 어찌.. 말을 흐렸다. 또한 나를 동행의 엄마로 착각했던 칠순 넘으신 찻집 주인은  엄마를 모시고 온 착한 딸로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말들 속에서 노년의 사람은 주도적인 입장이 아니라 보호받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듯한 뉘앙스를  느낀다.

아니다.  나는 아직 혼자서도 충분히 떠날 수 있다고 믿는다. 노년도 여유를 가지고 혼자의 시간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도 잘합니다!


내가 최고의 여행 선택지였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때론 아니어서 실망하기도  했고, 기대 없이 갔다가 포기하듯 둘러보는 동안 그냥 그대로가 좋은 곳도 있었다. 미리 정하지 않은, 그래서  내 생각과는 다르게 굴러가는 느슨한  여행지에서의 시간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들의 연속인 우리 삶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을 받아들이면서 혼자서도 많은 것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는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타인에게 의지하고 살아왔었음을 깨닫는다. 타인의 손길을 빌어 편리함에 푹 절어진 나를 보고,  항상 효율적으로 살겠다며  빠르게 빠르게 모든 일을 계획해 온 긴장 속의 나를 본다.

시골의 가족들 속에서 그들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는 일들을 답답해하며 바라보는 불만 섞인 나의 시선 다시 보인다. 그곳이 삶의 여행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토착민이며 나는 여행자였던 거다. 그 삶에 스며들기까지 서로 얼마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다보며 다독여야 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조금은 불편한 시간의 흐름을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잠시라도 시간을 다투며 일을 계획하고 조정하려던 내 마음을 접고 단순하게 주어지는 선택지만을 고르는 뚜벅이 여행 과정을 통해 삶의 순간들을 다시 바라본다.

여행자에게는 새롭거나 답답한 것들이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거나 익숙한 것일 수 있음을. 낯선 여행지에서 잡히지 않는 차편에 애태우고, 많은 길을 발로 걸어 도달하면서 내 좁은 시야에 갇혀 잘 인식하지 못했던 안개 같은 고집(?)을 조금씩 걷어낸다. 일상을 살다 보면 다시 또 되돌아가겠지만 그때는 다른 골목을 되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도, 되돌아간 그곳보다 조금 더 앞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일상을 여유를 가지고 접하며, 주어지는 것들을 즐기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다음 군산 여행을 꿈꾸었다.

오리라. 혼자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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