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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른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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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Feb 28. 2020

잘하고 싶은 마음

출간을 앞두고

책 출간을 앞두고 막판 퇴고 중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초고 마감을 앞두었을 때 크고 단단한 여드름이 잔뜩 났었다. 염증 주사를 맞으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놓다가 몇 대 놨는지 잊어버릴 만큼 잔뜩이었다. 몇몇 꼭지는 몇 주를 붙잡고 있어도 속도가 안 났다. 새벽까지 빈 화면만 띄워 놓은 날이 수두룩 했다. 서점 매대에 올라온 내 책을 상상해보고, 인세를 받으면 무얼 할지 리스트도 만들어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괴로움만 더해갔다.

여드름도 안 써지던 원고도 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독자에게 가치 있는 책이고 싶었고, 출판사의 기대작이었으면 싶었고, 누구보다 최초의 독자인 나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결국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붙잡혀 움직이지 못했다.

극복은 그냥 쓰는 걸로 했다. 책상에 앉아 ‘잘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대신 별생각 없이 “짜증 나”, “하기 싫어”같은 아무 말을 써서 빈 화면을 채워 넣었다. 그러다 보면 한 두 문장이 턱 하고 걸려들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냥 쓰는 손’이 필요했다. 잘 못하는 나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문제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 보다 센 건 ‘그냥 하는 마음’, ‘계속하는 마음’, ‘끝까지 하는 마음’ 같다. 최고를 찍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좋은 상태를 유지한 채 쭉 가는 것. 그렇게 가야 계속 갈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디딜 때마다, 한 자 한 자 타이핑할 때마다 정성을 들이고 잘 해내려고 하면 몇 얼마 못 가서 나가 떨어질 테니까. 책이 내 손에 쥐어지고 나면 괴로웠던 나보다 끝을 본 나를 기억할 것이다. 또 하나의 어른의 일을  거쳤으니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으로 가장 많이 위로받을 사람은 나 일 것이다. 그냥 하는 마음이 나를 계속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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