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페스토를 만들며
겨울 초입, 마트에 갔는데 시금치가 메인 매대에 올라 있었다. 싱싱한 시금치가 한 단에 천 원이었던가. 그 보다 쌌던가. 엄마가 집에서 종종 시금치 된장국을 끓여주시던 기억이 나 두 단을 집어 들었다. 데쳐서 소분해 얼려 놓고 하나씩 꺼내어 먹으면 될 듯싶었다. 집에 와서 시금치를 살짝 데치고 찬물에 헹궈내니 녹색이 진해지고 탄력이 생겼다. 건강한 맛이 날 것 같았다. 양념된장을 풀어낸 물에 데친 시금치를 넣어 국을 끓였다. 데치고, 포르르 한 소끔 끓여내는데 10분쯤 걸렸나. 큰 수고를 드리지도 않고,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도 않은 된장국은 너무 맛있었다. 시금치를 씹자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제법 많던 시금치를 금방 다 건져 먹었다.
‘시금치가 이렇게 단 채소였던가? 과연 뽀빠이의 힘을 솟아나게 만들 만큼 맛있군!’
갑자기 못 견디게 시금치가 좋아졌다. 모든 사람이 겨울 시금치를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날 이후 부지런히 시금치를 먹었다. 된장국도 끓이고 카레에도 넣었다. 하지만 두어 가지 메뉴로만 시금치를 먹으려니 좀 지루했다. 시금치를 더 많이 더 자주 먹어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 시금치가 맛있는 겨울이 너무 짧게만 느껴져 조바심이 났다. 시금치 요리를 검색하다 ‘시금치 페스토’를 알게 됐다. 시금치에 단맛이 빠지기 전에 꼭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어야지.
며칠 전 장을 보러 가서 세일 중인 시금치를 보니 바로 지금이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동실에 얼린 시금치가 남아 있는데도 덜컥 시금치를 사버렸다. 그리고 나서야 시금치 페스토의 주재료는 시금치와 믹서라는 게 기억났다. 내겐 믹서가 없었지만 함께 들어가는 파마산 치즈와 잣까지 장을 봐온 상태였다.
‘안돼!! 지금 이순간에도 시금치는 시시각각 말라가고 있다구!’
그 길로 로켓 배송으로 믹서를 샀다.(응?) 그리고 드디어 오늘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었다. 시금치 한 단으로 페스토가 한 병 나왔다. 그걸로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를 만드니 1/3이 줄었다. 페스토는 냉장고에 보관하면 일주일 안에는 다 먹어야 한단다. 페스토로 뭘 해 먹을 수 있지? 시금치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검색하다가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었는데 이제 시금치 페스토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검색한다. (그러다 얻어걸린 결과는 버섯 페스토라는 게 신난다! 버섯이라니!!)
마트 매대에 잔뜩 쌓인 신선하고 저렴한 채소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이거 한번 사볼까? 하는 마음은 훨씬 쉽다. 두부 한 모를 사러 왔지만 한 번도 요리해본 적 없는 ‘봄동’을 그냥 지르고 그다음에 탐구하고, 봄동 요리를 위해 모자라는 재료를 추가한다. 그렇게 멸치액젓을 사고, 멸치액젓이 들어가는 생채 무침은 또 뭐가 있는지 찾아보면서 나의 식생활이 넓어진다.
엊그제는 영하 10도의 강추위더니 오늘은 영상 15도까지 기온이 올랐다. 겨울이 가니 시금치의 단맛은 덜해지겠지만 냉이는 더 향긋해질 것이다. 그러면 또 냉이 페스토를 만들면 되니까. 냉이 마저 가고, 봄이 깊어지면 쑥갓으로 페스토를 만들어야겠다.
또 장 보러 가야지. 다뤄본 적 없던 재료를 겁 없이 집어들고 요리해야지. 계속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