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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Feb 19. 2024

삶에서 취미는 필수인가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무취미의 세계를 얄팍하고, 빈약한 층위로 분류하여 소외시키고 싶은 생각은 추오도 없다. 


다만, 모두가 이미 '취미를 가지고 있다'라고 바꾸어 말하고 싶다. 

그러니 이 세상에 소외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취미라는 단어는 너무 단편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정한 스포츠나 예술, 동사나 명사로 표현되는 단편적인 '단어'들만이 '취미 목록'에 인덱싱 되어있다. 우리의 취미는 '형용사와 서술어'가 가득한 구체적인 상황이자 문장일 것이다. 


뭐든지 사례가 있으면 더욱 이해하기 쉬운 법이니 매주, 매달 다른 취미의 파도를 타고 넘나드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요즘 나는 '책의 파도'를 타고 있는 중이다. 나의 취미는 굉장히 다양하고, 자주 변해서 장면으로 말하자면 이런 형국이다. 


수많은 물결이 있는데, 멈추지는 않는다. 근데 어떤 돌이 던져지거나, 바람이 휙 불면, 온도차가 생기면 갑자기 큰 파도가 하나씩 치는 형국. 그럼 그 파도를 끝내주게 타고, 사람들도 내 파도에 함께 올라타기도 한다. 그러다 해변에 가까워져 파도가 부서지면 또 다른 파도를 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같은 파도가 연이어 칠 때도 있다. 지금까지는 제주도 정도의 파도가 치는 형태였는데, 요즘 나의 파도는 거의 나자레 급이다. 5미터가 넘는 거대한 '책의 파도'가 쳐버렸다. 요즘 나의 세상은 온통 '책과 책방'으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책의 파도를 타고 있는 나의 취미를 말해보자면 '활자에 둘러싸여 부스럭거리며, 사부작거리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읽고 쓰는 삶'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즐기고 있냐면 


- 아침에 커피 한 잔 내려서 창문 앞에 조용히 앉아 책 읽기 

- 책 읽으며 좋아하는 문우당서림의 연필로 사각사각 밑줄 치기 

- 밑줄 친 문장을 we eat book 계정에 소개하거나, 노트에 필사하기 

- 책 읽는 나의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기, 가끔은 책 읽는 나의 모습을 기록하기

- 책과 연결된 플레이리스트 틀어두기 

- book 조도를 맞추기 (형광등보다는 주황 조명 잔뜩)

- 여행지 가면 동네 책방 찾아가서, 책방주인의 코멘트 모두 읽고, 책 사 오기 

- 여행지에서 내내 그 책 읽기

- 숙소/카페에 비치된 책이 있으면 그 책 먼저 읽어보기 

- 책 내용에 나오는 '궁금한 것, 해보고 싶은 것' 바로 해보기

- 책 내용에 나오는 또 다른 책 파도 타서 넘어가서 읽어보기 

- 좋아하는 책 선물하기 / 상대방이 좋아하는 분야 책 큐레이션해서 선물해 주기 

- book design과 reader 모습 핀터레스트에서 찾아보고 아카이빙하기 

- 다른 사람들이 읽는 책과 책 기록물 구경하기 

- 책 추천받기 

- 길에서 책 읽는 사람 발견하기 

-

저는 '독서'를 좋아해요.라고 명사 하나로 끝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취미는 이토록 구체적이고, 다양한 물결을 가지고 있는 파도인데 어떻게 '독서'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람마다 '독서에서 얻는 효용'은 굉장히 다르다. '지식의 흡수'일 수도 '책 읽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일 수도, '나만의 시간을 지키는 사수방법'일지도. 그 효용에 따라 취미의 갈래가 나뉜다. 


책의 파도 근처에 있는 나의 취미들은

-요가하며, 올바른 몸의 방향과 호흡 수련하기

-잎차, 티백 우려 마시며 일기 쓰기 

-여행지에서 사 온 원두로 커피 내려마시기

-설산 하이킹, 백패킹 가기 

-생각나는 것마다 기록하고, 글로 풀어내고, 발행하기

-뜨개질로 커스텀 북마크 만들어서 선물하기

-친구들이 하는 브랜드 응원하기

-전시 보러 가서, 엽서랑 포스터 잔뜩 사 오기 

-엄마가 준 식재료로 집밥 해 먹기 

-출퇴근길 튜터링하며 영어 공부하기


내가 취미로 보내는 시간은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방향성의 키를 잡아준다. 

내가 시간을 쓰고 싶은 방향은,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나의 심지를 아는 일이고, 나의 삶의 방향성에 나의 일상을 얼라인시키는 일이다. 


취미를 하는 짧은 시간이 쌓여 나의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되어가는 것이니 '내가 보내는 시간'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어떻게 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의 '시간'과 '삶'을 어떻게 쓸 것인지 시간에 대한 '권한'을 인지하고 어떤 시간들로 채워나갈지 고민하는 건 내 삶의 방향성을 영점조정하는 일이란 말. 


당신의 가치는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지 정의하는 믿음이다. 가치는 삶에서 당신이 하는 모든 선택에 지침이 된다. 예컨대 가족을 가치로 삼는 사람은 가정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할 것이며, 직업적 성공이 가치인 사람은 그 반대로 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면 삶의 어떤 영역에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지 미래에 무엇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지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게으르다는 착각> (데번프라이스, 웨일북)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나에겐 사랑, 가족, 평화, 지혜, 모험, 자유, 자연, 아름다움, 성취, 휴식, 다양함이다. 


사랑, 부, 가족, 도덕성, 성공, 지식, 힘, 친구, 자유시간, 모험, 다양성, 평온함, 자유, 재미, 인정, 자연, 인기, 책임, 정직, 유머, 충성심, 이성, 자립성, 성취, 아름다움, 존경, 평화, 안정, 지혜, 공정성, 창의성, 휴식, 안정


여기서 선택한 가치를 일상에 가득 차도록 밀도를 채우고, 흘러가는 취미를 거름망에 거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의 취미 파도들을 돌아보면 모두 이 가치에서 뻗어 나온 것들이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 몸을 움직이는 것, 자연으로 탐험가는 일, 읽고 쓰는 일,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사귀는 일, 배우는 일, 요가와 명상으로 쉬어주는 일. 


내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아는 것. 그 장소와 시간에 있는 나를 자주 만들어주는 것이 다른 말로 '취미'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취미가 없다' '좋아하는 게 없다'는 말은 '내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할 때, 누구와 있을 때, 어떤 가치를 느낄 때 행복한지 모른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사실 '그 무엇'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다만 알아채지 못했을 뿐. 


그러니 오늘은 '나에게 중요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상황과 환경과 행동과 사람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것을 가까이하자.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적어보고, 그것의 어떤 요소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이유'를 스스로 질문해 보고, 그 속에 숨은 '가치'를 발견해 보는 것이다. 그럼 발견한 가치로 '내 일상'을 가득 채우면 된다. 


간단하다. 


삶에 꼭 취미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답이 되었을까. 내 삶의 방향키를 적어도 내가 잡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새로 흘러가고 싶다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가치들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다면 취미의 효용은 충분하지 않을까. 지구에서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가 '삶을 더 기쁘게 즐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한 효용 아닐까. 작은 것에 의미부여를 하고, 사소한 것에 감탄하며, 나를 웃게 하는 것들을 가까이하며 지낸다면 충분한 인생이라며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매일 호미를 매고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서 궁금한 일에 마음을 기울이면,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의 씨앗을 심는다면 '나의 취미의 정원'에 어떤 씨앗이든 심길 것이고, 자연스레 꽃이 피고 지며 나만의 정원이 만들어질 것이다. 


모두가 취미의 정원을 잘 가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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