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난 여전히 너를 좋아하고
나는 학창 시절 딱 한번 전학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집이 폭삭 망해서 도망치듯 이사를 했던 초등학교 5학년 그때, 아주 큰 마음을 준 친구가 바로 I였다.
그때 I는 또래의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조숙하다고 할까, 어른스러운 편에 속했다. 공부도 잘했고, 아는 것도 이것저것 많았던 그 애와는 빠르게 친해졌다. 그 당시 I는 방과 후에 항상 학원을 갔다.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학원은 꿈도 꿀 일이 아니었고, 또 사실 난 제법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학원이 필요하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매일 학교 끝나고 I가 학원 가기 전까지 함께 놀고, 또 가끔은 그 애를 졸라 오늘 하루만 학원에 빠지고 놀자고 달콤한 유혹을 하기도 했었다. I는 그런 나의 철없는 유혹에 가끔씩 넘어와 주기도 했다.
아주 짧았던 우리의 1년. 펑펑 울어 눈이 부은 채로 찍힌 사진과 함께 우리는 다른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같은 학교를 지망했지만 그 당시 입학은 무작위 추첨이었다. 학교는 달랐지만 우리는 종종 연락하고 만나며 지냈다. 그렇게 20살 때까지는 I와 꾸준히 마음을 나누었지만, 나는 재수를 시작했고 I는 중국으로 진학을 하게 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대학 진학 후 내가 I의 연락처를 잃어버리며 허무하게 우리의 연락은 끊겼다.
가끔씩 I가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미 중국으로 간 I의 연락처를 찾을 방도가 없었다. 아니 사실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나가며 나는 I를 조금은 잊어버리며 살게 되었음에 가까웠으리라.
그렇게 그 애를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거의 10년이 지나 고향에 내려가 그 초등학교에 방문했을 때 나는 I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우여곡절 끝에 그 애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오랜만에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10년은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중간의 공백을 뛰어넘기에 I는 내게서 너무 멀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현재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도 않다고 하여 만날 방도도 없었다. 그렇게 짧은 몇 번의 안부 끝에 나는 더 이상 I에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만날 수도 가까워질 수도 없는 I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그 애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울 생각은 없다. 우리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그 애가 내게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그래서 여전히 나는 그 애를 좋아한다. 부디 어디서든 I가 행복하길 바라며 가끔 그 애와의 추억을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I는 내겐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