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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Feb 05. 2020

마스카라

술 취한 새벽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골목 언덕을 올라오던 남자는,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며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 울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눈물에 번진 마스카라가 눈사람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남자는 주저 없이 여자의 옆에 앉아 왜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냐고, 자신이 들어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여자는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흐느낌으로 더 서럽게 어깨를 들썩였고, 남자는 여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술이나 한잔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여자는 3년을 만난 연하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오는 길이라며, 자신을 버리고 곧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그를 욕하면서 찰진 순대를 안주로 소주를 참 찰지게도 마셨다. 남자는 언제, 어느 타이밍에 눈사람을 닮은 번진 마스카라 이야기를 해줄까 내심 고민을 하며 여자의 찰진 욕이 섞인 이야기를 들었고, 오래전 자신을 떠나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는 옛사랑을 떠올렸다.

오늘이 실은 떠나간 그녀의 생일이에요, 라는 남자의 뜬금없는 말에 순대 가득한 입을 오물거리다 말고 여자는 그제야 남자를 뻔히 쳐다보았다.

그 이상야릇한 눈사람은 슬픔에 젖은 여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이라는 것을 불현듯 남자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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