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Feb 14. 2020

 업보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로 기억하는데 느닷없이 앞산에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두대의 자전거에 세 명이서 나눠 타고 간 적이 있다. 자전거가 없던 나는 친구의 낡은 자전거 뒤에 앉았고, 우리는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초행길을 겁도 없이 내달렸다.

상동네거리쯤이었던가. 신호에 걸려서 시시덕거리던 중 한 복덕방 앞에 놓여있던 큰 짐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도 못된 심보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행동이었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 큰 짐자전거에 올라 냅다 내달렸다. 친구들은 놀라움도 잠시, 이제는 좀 더 홀가분하게 달릴 수 있겠단 표정으로 키득거렸고, 우리는 마냥 무한 질주했다.


이상하게도 자전거를 훔쳐 타고난 뒤 앞산에 가기까지의 과정은 전혀 기억이 없고, 돌아올 때 그 복덕방 앞에 겁도 없이 다시 그 자전거를 되돌려 놓고 줄행랑쳤던 기억만 선명하다.

분명 절도행위였는데 나는 잠시 빌린 것뿐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던 것일까.

어떻게 그 어린 시절에 그렇게 겁도 없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했었는지.

그 후 성인이 되어 대학시절에 중고 스쿠터를 구입해서 한동안 타고 다녔던 적이 있다.
외진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학교라서 언덕을 오르내리며 볼일 보기에 편리했고, 필요한 친구들에게 곧잘 빌려주기도 했다. 좁은 학교에서 누가 훔쳐갈까 싶어 키를 돌려 잠구는 것 말고는 따로 자물쇠를 채우진 않았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 스쿠터가 사라지고 없었다. 한밤중에 아랫마을에 사는 청년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서 스쿠터를 훔쳐 타고 달아나는 것을 본 것 같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해줬지만, 그 후로 영 잃어버리게 되었다.
나는 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나쁜 놈들이라고 투덜거리며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그 후 십 년도 훨씬 더 지나 어느 날 문득 그 철없던 시절 내가 훔쳐 타고 달아났었던 자전거가 생각났다.  

결과적으로 다시 원래의 자리에 되돌려 놓았다 하더라도 내가 자전거를 훔쳤던 것은, 아랫마을 청년이 스쿠터를 훔쳤던 것과 동일하게 나쁜 물욕에서 나온 못된 행동이었다.
그 어린 시절 업보를 성인이 되어서 똑같이 되돌려 받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스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