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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26. 2020

거짓말쟁이의 역설

모든 크레타 섬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한 에피메니데스라는 인물은 정작 그 자신이 크레타 섬사람이어서 그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따라서 그 말 또한 거짓말이 되는 모순을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이면 거짓이 되는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논리학에서 그가 자신이 거짓임을 말하는 명제를 인정하는데서 생기는 역설을 말한다고 한다.


총선이 끝난 후 역시 대구는 안된다라는 말이 대구시민들의 입에서까지 나오고, 이참에 따로 독립을 시켜야 한다는 말과, 대구 경북으로는 발길도,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타 지역 사람들의 과격한 의견도 들린다.

그 이전에 대구의 한 시민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코로나의 잘못된 대처로 인한 피해 소송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은혜도 모르는 수구꼴통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대구를 진작에 고립시켰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댓글도 보았다.


미통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면 대구 경북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넘쳐나는 곳이고, 당연히 미통당은 쓰레기들의 온상이 된다.

대구 경북에 사는 이들의 부모, 가족, 형제, 가까운 친구도 쓰레기가 될 수 있고, 사랑하는 연인도 쓰레기가 될 수 있다.

남한 전체 면적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구 경북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사는 곳이니, 교집합에 의해 대한민국은 민주당을 싫어하는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어릴 적 전라도에 가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거나, 경상도 번호판을 달고 운전해 가면 몰매를 맞는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달달 외우던 국민교육헌장만큼 어른들의 그 이야기는 뇌리에 깊이 박혔고, 어릴 적 나는 그 말을 사실로 알고 지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일방적이고 과도하게 주입된 국민교육헌장의 억지스러움처럼, 어른들의 이야기 또한 뒤틀리고 부풀려진 허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더라, 그렇더라, 그랬다던데라는 말들로 마침표를 찍는 소문들은 대게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이다.

당연히 그 시작도, 진실도 알 수 없는 말들이 태반이다.

클릭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지구촌의 소식을 속속들이 접할 수 있는 지금도 그 형태만 달라졌을 뿐 전하는 내용들의 사실여부는 함부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나서, 교묘하게 왜곡된 뉴스들에 사람들은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나는 홍준표 아저씨를 아주 형편없는 정치인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어떤 친구는 이번 총선에서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듬직해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좀 어처구니없고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그 의견을 무시할 생각도, 묵살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내가 자기보다 잘 생겼다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하니 친구의 안목이 형편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또 다른 어릴 적 친구는 성인이 되어 서울에 자리잡기 전에, 늘 입버릇처럼 서울 사람들은 다들 깍쟁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서울 사람이 다 되어버린 그는 가끔 통화를 할 때면 '너희 대구'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너희 대구'라는 말에 담긴 뜻은 곧 구제불능, 수구꼴통이라는 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또한 서울깍쟁이들 중 한 명의 의견일 뿐이니 그 말에 담긴 뜻이 참이든, 거짓이든 정당한 논리로 성립될 수 없다.


지켜내야 할 가치나 전통을 보전하고 유지한다는 뜻에서의 '보수'의 의미는 무척 아름다운 말이지만, 미통당의 횡포에 가까운 언행들을 보면 보수당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역겨운 느낌이다.

그러나 마치 민주당은 참이고, 미통당은 거짓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한쪽 정당에 몰표를 행사해온 수많은 대구 경북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행동 못지않게 모순으로 가득한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막말과 억지논리로 정책에 반대를 일삼는 미통당의 횡포에 질려버린 수많은 국민들이 그들을 외면했다고 보인다. 따라서 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는 미통당의 자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여겨진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고 해서 인간쓰레기로 몰고, 오랜 인간관계까지 끊어버리는 극단적인 행동들은 나만, 우리만 옳다는 집단이기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다.

몽둥이만 들지 않았을 뿐, 광복 이후 이념에 대한 충돌로 일어난 피비린내 나는 역사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가 남이가'라는 끈끈한 정으로 버무린 듯한 말은, 공공의 이익이나 선을 향할 때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자기가 속한 집단이나 단체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해서라면 조폭들의 미화된 의리나 다를 바 없는 말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사라져 가는 지구 상의 수많은 동물들과 파괴되어가는 자연환경, 한쪽에선 남아도는 음식쓰레기로 골머리를 앓지만 반대편에선 앙상한 몰골로 하루에도 수도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과, 정처 없이 떠도는 난민들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는 이 지구 상의 문제들에는 왜 우리는 가슴 아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토론하며 열을 올리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왜 유독 그렇게 정치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지역을 나누고 편을 가르려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정말이지, 인간에 대한 예의는 고사하고 극악무도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질스런 정치인들은 엄중하게 선별해서 영원한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법안이라도 마련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들의 심장은 얼음처럼 차가울게 뻔하니 발열체크 같은 수고도 필요 없을 것이다.


모든 크레타 섬사람들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듯, 당연히 모든 대구 경북 사람들은 인간쓰레기가 아니다.


예로부터 대구는 사과가 맛있고, 미인이 많다는, 그렇다더라, 카더라는 속설이 있다.


그라이 팍팍 하이 그카지 말고, 참말로 카는지 부로 카는지, 이노무 코로나가 퍼뜩 물러나믄 마 대구로 놀러들 와보시라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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