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근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을 중심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새로운 건축물들은 우리의 새로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 1937
어렸을 적 아빠 차를 타고 세종로를 지나면 항상 광화문도 세종문화회관도 아닌 이순신 동상을 먼저 발견하곤 했다. 지금이야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순 건축물만 보이지만, 아이의 눈엔 도로 한복판에 위엄 있게 서 있는 동상이 이목을 끌었으리라. 그리고 엄청나게 거대한 이순신 장군님을 볼 때마다 내가 세종로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당시의 어린이 필자는 "왜 이순신 장군님이 여기 계셔?"라고 질문했었다. 아마 '우리를 지켜주시기 위해서지'라는 동화 같은 대답을 들었을 듯하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처럼 도시를 인지하는 데 있어 건축물이나 조각 작품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때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우리의 삶의 한가운데 아주 자연스레 자리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일상에 스며들어있는 그 이미지는 사실 누군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예컨대 건축가의 도시 해석, 계획 당시의 시대상황과 미학적 감수성이 반영된 것은 물론이고 디자인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의 기대감도 들어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곳을 사용할 사람들의 행동과 공간 안에서 느낄 감정을 기대하면서 디자인한 세심한 흔적들 또한 엿볼 수 있다. 반대로, 만약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도시 요소를 통해 누군가가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고자 했다면 어떨까? 유튜브 광고는 건너뛰기라도 할 수 있지만, 일상 속 도시 풍경은 스킵이 불가능하다.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었던 이미지가 사실 뚜렷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산타 할아버지의 빨간 옷이 사실 코카콜라의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의 배신감 같은 느낌이려나.
역사를 들여다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통치 수단으로써의 건축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때때로 어떠한 국가는 스케일이 큰 건축이나 도시계획을 통해 자국의 이미지를 표상하고자 한다. 혹은 국가 권위를 높이기 위해, 권력 장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건축을 사용하기도 한다. 조선왕조가 위태로웠던 고종 2년, 왕실의 위엄을 드높인다는 이유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강행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반대로 이상적인 건축이 실현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건축가는 자본가 혹은 권력자와 손을 잡기 쉽다. 그 과정에서 건축가는 권력의 총애를 받으며 스타 건축가로 성장하는 기회를 얻는다. 주세페 페라니가 건축을 통해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지지하고, 알베르트 슈페어가 히틀러의 친구이자 나치 독일의 건축가로 활동했듯이 말이다.
오늘날 한국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수근의 작품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휴먼 스케일을 담아내는 공간, 한국성을 고민한 건축, 미적으로도 훌륭한 말년의 그의 작품들은 이미 너무나 유명하며 누구나 가히 걸작이라 칭할만하다. 하지만 그가 1977년 타임지에서 한국의 로렌초 데 메디치로 비유될 만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건축가였던 동시에*, 젊은 나이에 독재정권의 권력을 등에 업고 국가 대표 건축가라는 특혜를 누렸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독재자의 오른팔에게 호평을 받아 세계박람회의 국가관, 올림픽 주경기장, 도시계획까지 맡았던 점은 슈페어와 꽤나 닮았다.
나는 내가 열렬히 사랑하던 건축가 김수근의 화려한 커리어에 숨겨진 양면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의 아름다운 후기 건축물들은 굳이 소개하지 않겠다. 단지 그의 젊고 패기 넘치던 시절, 그가 어떻게 기회를 잡고 성장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나아가 그의 초기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독재 정권이 건축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설명하려 한다. 그가 대한민국 근대건축에 미친 업적과 뛰어난 그의 건축적 역량을 폄훼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 글을 통해 건축이 때로는 권력의 충실한 사도(寫圖)이자 프로파간다로 작용할 수 있음을 고발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 이 시리즈는 우리말과 프랑스어로 쓰입니다. 능력 부족으로 프랑스어로는 국문 버전과 다르게 간략히 쓰겠습니다.
: Concentré sur les travaux de l'architecte coréen moderne de première génération Kim Swoo-Geun
Introduction
: Kim est-il un simple exécutant sous les ordres du gouvernement ou un grand architecte ?
« Les nouveaux bâtiments sont destinés à renforcer notre nouveau pouvoir.»
- Adolf Hitler, 1937
L’architecture au service du pouvoir utilisée comme moyen de gouvernance a souvent été observée dans l’Histoire, sans distinction d’entre le monde oriental et le monde occidental. C’est le cas des architectures de Giuseppe Terragni qui a soutenu le fascisme de Mussolini à travers l’architecture, et celles d’Albert Speer qui a travaillé comme architecte d’Hitler.
Aujourd’hui, les œuvres de Kim Swoo-Geun, appelé le père de l’architecture moderne coréenne, sont remises en question. Il était suffisamment célèbre pour être comparé au Lorenzo de Medici de la Corée dans le magazine Time en 1977*. D’un autre côté, il est indéniable que Kim a grandi avec la dictature en place à l’époque. En particulier, il ressemblait beaucoup à Speer, qui a été lui aussi soutenu par le 2e homme le plus influent de la dictature en place et il ont tous les deux réalisé le pavillon national, le principal stade et l’urbanisme de leur pays.
Cet article montre les deux côtés cachés sous la magnifique carrière de Kim. Il explique comment le régime coréen utilisait l’architecture pour servir leurs idéaux à cette époque, basé sur les œuvres de Kim. De plus, cet article a pour objectif de démontrer le danger de l’utilisation malveillante de l’architecture par le pouvoir à son image et comme moyen de propagande.
-Cette série est écrite en coréen et en français. En raison du problème de capacité, je vais l'écrire brièvement en français court.
* https://en.wikipedia.org/wiki/Kim_Swoo-g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