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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di Mar 08. 2016

아가들의 투쟁4

나는 너에게 꽃이 되고 싶다.

츄라우미 수족관의 고래상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걸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꽃이 되고싶다.


 <김춘수, 꽃 >


신생아실의 아가들은 이름이 없다.

그냥 엄마의 이름을 따서 감순희아기. 문봉희아기. 이런식으로  누구의 자식이라는것으로 구분을 한다.

그렇게 identy를 아직 인정받지못했어도,태어날때부터 울음소리도,버둥거리는 것도 아가들마다 달랐다.아가들은 이미 자기만의 캐릭터를 가지고있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성선설도,성악설도 아닌 , 모두가 자기만의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그런,굳이 이름 붙이자면 <성본성설>을 믿는다.  

 

*

February 16, 2013 의 메모

신생아관찰실에서 누군가 '어흥 어흥'하고 울고있길래

'아니 저렇게 특징적인 울음소리는 뉴규꺼에요? ' 하면서 울음소리의 출처   인큐베이터를 찾아보았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찾아낸 그 어흥소리의 주인공은

아기엄마가 ' 우리 아가 태명이 '사자'에요'  했던  *** 아가다.

 

*

 태어날 이름없이 태어나서,이름한번 가져보지못하고 죽어버렸다고해서, 그 아가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는 사실이 사라지진.

 그런데도 아무도 그아이들을 기억해주지않는다면  슬프다.


 다섯살때인가, 전쟁터에서 스러져간 무 용사들 묘지에 참배하고 꽃을 바치러 아장아장 걸어갔던때가 있다.

추모는 ,<내가 당신을 ,당신의 존재를 기억합니다. >라는 위로의 의식이다. 이름없이 자라고 생존하는 그 전장터에서 이름을 가지지못하고- 왔던곳으로 다시 돌아간 아가들과,살아남아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아가들에 대한 나의 기록도 그 때문이다. 


*

채혈한 피검사결과가 나올때까지 컴퓨터화면을 노려보며 피검사결과를 기다리는데

" Prep (조산끼가 있어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미리 자리를 예약해놓은 )한 26주,27주짜리 아가 둘이 지금 나온데요."

한다.  두 명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예약한 아가들이 나오니까 그나마 낫다. 파마모자같은 수술방모자를 뒤집어쓰고 한쪽 모니터에는 방금 채혈한 아가의 피검사가 결과가 나왔는지 수차례 클릭하며 한쪽 윈도우창에는  고래 상어가 나오는 수족관 영상을 틀어놓고 보면서 대기한다.


.....고래상어가 거대한 수족관에서 천천히 헤엄치는것을 보면 이 푸르른 NICU에 있는 심해어-나-의 마음도 천천히 안정이 되었다.


*

https://youtu.be/AJtHg9FbLUA?list=FLnyCK6cm7umZ9jpg-dmgsMw



* 몇년후, 프로포즈는, 이때늘 보던 동영상 속 고래상어가 헤엄치던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고래상어를 바라보며 받았다.


*

벤트(인공호흡기계)도 안 걸었었고 삽관도 안하고있는 아기의  saturation(산소포화도)과 심박동수가 뚝뚝뚝뚝 떨어졌다. 이제껏 해왔던 심초음파와 x-ray,피검사결과는 다 정상이지만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 애.

청진을 했는데  폐소리가 들리지않는다.   태어났을 때 CPR 도 하고, 여러번 기도삽관을 했어서  그랬는지 너덜너덜해져있는,울지도 않아 열리지도않는 피범벅인 vocal cord에 tube를 밀어넣고 다시 기계 호흡을 다시 시작한다.이제까지 ventilator weaning(기계호흡세팅 점점 낮추어 마침내 기계호흡없이 자유호흡을 할수 있을때까지 서서히 세팅을 낮추며 적응시키는것 )을 잘 해왔는데.. 아까워도 어쩔수가 없다.  x-ray 확인 후   아가의 우측폐가 터져 좌측폐를 밀정도로 공기가 새어 생긴 기흉(pneumothorax-미성숙한 폐는 뻣뻣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풍선처럼 터져 공기가 샐 수있다.적은 경우는 저절로 흡수될수있지만 양이 많은 경우 조처를 취하지않으면 생명을 위협할수있다.)의 air 를  빼내고 다행히 애기는  안정되었다.


  다시 괜찮아진 아가를 확인하고, 좋아진 랩(피검사)을 확인하고, ventilator (인공호흡기) 세팅을 조정하고, 내가 오면 항상 오버베드(환자가 차고넘친다는) 라는 nicu team을 달래가며  야식 도시락을 시켜먹고, 당직실로 올라와 내 방문을 닫는다.


탁.


반평남짓한 공간에 무너지듯 침대에 누우니,

그제서야 얼음처럼 굳어있던 심장이  미친듯 뛰기시작한다. 너무 뛰어서 몸이 흔들릴정도다.

 인큐에 누워 E-tube(기도에 꽂아놓은 튜브관)를 빨거나 발레하면서 노는 아기들을 귀여워하면서, 놀려대고 있다가, 그 아이가 점점 더 새까매지고..  점점 움직이지않고 ...깜빡거리던 눈을 뜨지 않고....

 내가 놀리고 알고 예뻐하던 그아이가 - 내가 모르는 아이가 되어가는 그때가 새삼 생각나기때문이다.

 

카우던 잉꼬가 나를 기다리다가 늦은 밤 돌아온 나를 보고나서야,내가 올때까지 기다렸다는듯이.. 내 눈을 한번 바라보고, 내 손바닥위에서 툭,고개를 떨구고 죽었을때처럼,슬픔으로 울혈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아....심장 좀 뛰지말아봐. 괜찮은데, 아가는  괜찮아졌는데,왜 ,네 심장이 지금와서 해동된 것처럼 뛰는거야?'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부정맥있나보다,24시간 Holter검사(부정맥이나 심장리듬에 이상이 있는지 24시간동안 몸에 벨트처럼 달고 하는 검사) 를 한번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 pulmonary hemorrhage(폐출혈)가 있었던 초극소 미숙아 애기의 E-tube (기도내 꽂아놓은 튜브)사이로 피가 계속 뿜어져나왔던 때. <얘 죽을 수 있어>,하고 교수님이 설명하셨고 나는 그 말에 " 안돼요! " 하고  반사적으로 눈물이 투둑 떨어졌었다.  폐가 뻣뻣해져서 ventilator 가 잘 안먹혀서  밤새 인큐베이터옆에 의자를 갖다놓고 saturation(산소포화도)이 떨어지면 일어서서 손으로 앰부를 짜고 계속 약을 올렸다내렸다 하고 좀 버티는 동안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내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있었고 E-tube에선 혈전이 Tube(기도내에 삽된 튜브관)를 막아 숨을 쉴수 없을때만 suction( 분비물및 혈전등을 제거하기위해 기도내 흡인을 가끔씩 해준다)을 했는데도 피가 울컥울컥 솟아났다.


......죽음이 손짓하던 밤을 넘겨 그애는 살아남아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5살정도 되었을거다.


그아이는,아가가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온 그날,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는것을 알까? 그 다소 감상적인 사람이, 이 아가가 죽어가는 내 마음이나 마찬가지인 것인양,

살리려고,위태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꽃이 되어 정말 다행이야, 아가야.  

 *

오랜만에 집에 가는 길이었다.

터널에 진입할때는 쨍쨍했는데 터널을 빠져나올때쯤엔 비가 무서운 기세로 떨어지고 있어,차창의 와이퍼를 켰다. 낯설었다.

방금까지 빛나던 세상,비가 오지않는 세계에서 비오는 세계의 사이에는 약2분가량의 터널이 있었을뿐이라니.


절망과 희망사이, 생과 죽음사이,꿈과 현실사이,여름과 가을사이처럼 아주 그 간극이 짧았다.

우리들은 그  간극사이에 있다.

어차피 모두 잊혀질지라도.

내가 기억하고있을께.

아직 기억하고있을동안

그 짧은 우리 삶의 순간들을,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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