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의 씨앗에게.
레지던트가 끝날 때 신생아실 교수님은 우리병원이 아닌 세브란스병원의 펠로우쉽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었다. 잠시 고민했다. 신생아실이라면 넌더리가 난다는 다른 선후배들과 달리 나는 어느덧 신생아학의 매력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신생아학은 소아청소년과에서 따로 신생아과를 만들어야한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조금 더 많이 다른 학문이기도하고,실제로 모든 행위자체가 생명과직결될수있는 부분이라 의사로써의 보람도 컸다. 물론 보람이크다는 것은 스트레스와 우울감, 극심한 체력저하를 감수해야하는 만큼이다. 결국 오퍼를 정중히 사양한 이유는 사실은 갓 결혼한 나의 상황때문이었다. 남편도 대학병원에서 짜디짠 봉급을 받고있고 대학원도 가야하는 시점에 나마저 펠로우를 하긴 힘들테고, 혹시나 내가 언젠가 아기를 갖고싶어질지도 모르는데 나처럼 주변환경과스트레스에 몸이 민감한 사람은 필시 아기를 못 갖게될거라는(불임이 될거라는)정말 강한 확신을 했기때문이다.
"임신되셨어요~수치가 아주 잘올라갔어요!"
어쩐지 들뜬 간호사의 전화에,
"네? 그럴리가요...제 피검사결과가 맞아요?"
라고 되물은건 그래서였을 거다.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님께서 암 말기 진단을 받으시고,그 다음엔 내 다리가 부러져 육개월을 쉬고,시어머님 상을 치르면서 신생아실을 보는 로컬병원의 페이닥터로 2년간 일했다.이번해는 3-4개월이라도 쉬겠다고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명목은 몸추스리고 건강해져서 임신을 준비해보겟다는 거였지만 실은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싶었다.
어렸을 때 항상 그림과 글로 상을 받고 미대가고싶은 생각도 가졌던 버림받은 꿈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돈만벌다죽고싶지가 않았다.
쉬자마자 등록한건 웹툰프로그램 학원과 미술학원이었는데, 그림그리면서 얼마나 행복했나모른다.
그런지 채 얼마되지도 않아 들은 이야기,
임신.
모순적이다. 애기는 언젠가는 가져야한다는 생각은 해도, 그것이 "지금"이기를 바라진 않고있었는데,그 아기가
지금 내게 왔다고한다.
쉬자마자 임신이 되다니 그동안 스트레스가 엄청났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외래를 보지않자 항상 느끼던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100에서 1로 줄었었으니까...
내가 너무도 아픈 아가들의 보호자들에게 동화되고 임신이 안되고 임신유지가 안되고 그런사람들만 보다보니까,나의 임신조차 '아니,어떻게 내가 임신이되지?'하는 생각이들었다.중간중간 아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저번주에는 교수님께
"교수님,하혈이 꽤많이보이고 입덧이 심하다가 어제오늘 괜찮아져서 아기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는데, 초음파를 봐주시더니
아기는 다행히 괜찮고 심장도 잘 뛴다고하셨다.
뒤따라 나온 간호사는 "너무 쿨하게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어요!"라고 한다.
서운해하지마렴.
나의 마음을 보호하기위해서.
네가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떠나보낸 타인의 아가들이 아직 많이 기억에 남아있어서, 네 이름을 아직 불러주지않기로 한것을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