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찾고 있는 '집으로 가는 길'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 '사루'. 자신을 돌봐주는 형과 자신이 돌봐야 하는 동생, 그리고 자신의 사소한 행동에도 감동해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해맑았던 5살의 사루. 거침없이 들판을 뛰놀다가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이라면 앞 만 보고 질주하는 사루는 영민하고 천연덕스럽다. 문맹인인 엄마가 돌을 줍는 힘든 노동을 할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큰 돌을 주어 나르는 착한 아들. 그리고 우유 두 잔을 마시기 위해 석탄 한 자루를 훔처야 하는 형을 도와 달리는 기차에서도 뛰어내릴 수 있는 용감한 아우였다.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껴안아 돌봐주고, 재워줄 수 있는 따뜻한 오빠이기도 했다. 그런 사루에게 그곳은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대지이자 자연 그 자체였다.
그런 사루는 새벽에 일을 나가는 형을 따라나서기 위해 자신도 힘이 세다며 자전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그러나 형이 하는 일은 기껏해야 빈 열차 플랫폼을 뒤지고 다니면서 떨어진 쓰레기들 사이로 쓸모 있는 물건이나 동전 따위를 줍는 것이라는 걸 예상하는 순간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 일을 매일 해야만 했을 형 구두가 동생을 돌보는 모습은 또 어찌나 의연하고, 씩씩한지 보는 내내 흐뭇하였다. 형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먼 곳까지 따라와 역시 자신은 5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지쳐서 잠들어버린 사루. 잠시 잠든 동생을 벤치에 두고 돌아가지 못한 형. 그 쓸쓸하고 무서웠던 새벽에 빈 열차에 은신한 것이 사루의 운명을 뒤바꾸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 되어버린다.
열차는 급행열차인지 쉬지 않고 달린다. 혼자 열차 안에 갇혀 버린 어린아이의 외침은 덜컥 이는 기차소리에 묻혀 증기처럼 사라지고, 열차는 이틀을 쉬지 않고 달려 인도의 또 다른 도시에 도착한다. 사루는 울다 지켜 잠들고, 또 깨어나서 울다 지켜 잠들고를 반복하다가 겨우 열차에서 탈출하게 되지만 그곳은 말도 통하지 않는 전혀 낯선 도시였다. 미아가 되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이 거리에 쓰러져 잠을 자도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 곳. 그곳은 5살 어린아이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영민한 사루는 울지 않는다. 섣불리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을 인신매매하려는 악한 무리들로부터 몇 번의 위기를 경험 한터라 사루는 의연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맑은 사루의 눈이 메말라갈 때, 사루에게 구원의 손길이 찾아오고 다행히 보호시설에 맡겨진다. 그런데 그곳도 열악하기는 매한가지. '보호되었다'라기보다는 '수감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대우. 부모가 자신을 찾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희망도 꿈도 포기한 아이들 사이에서도 사루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따뜻한 엄마의 품과 자신을 돌봐주던 형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들과 자신만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미안함까지 느낀다. 그 속 깊고, 영민한 아이를 지켜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사루에게 또 다른 가족이 생기게 된다. 어린 사루는 집을 찾을 수도 가족에게 돌아갈 수도 없었기에 아주 먼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또 다른 부모에게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정말 좋은 부모였다. 단지, 아이를 낳을 수 없는데 아이를 원해서 입양을 선택한 부모가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모 잃은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이를 입양하고, 정말 사랑으로 가슴으로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와 아빠였다. 사루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한 가족이 되어 부모에게 의지하고, 행복하게 성장한다. 어느덧 성인이 되었을 때는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밝힐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입양아라는 것을 떳떳이 말할 만큼 지난 상처를 수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있다고 여기게 된다. 하지만 문득문득 아주 사소한 것들에 의해 기억은 되살아나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모르는 가족들이 받을 고통과 상처를 생각하면 와르르 무너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결국, 사루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구글어스'를 이용해 고향을 찾게 된다. 첨단과학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사루의 변함없는 영민함 덕분에 공간은 기억을 되살리고, 또 다른 기억으로 이어져 수많은 기차역들을 모두 헤매지 않아도 될 만큼 결정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5살 이전의 기억만으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작은 마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간절함, 끈기, 그리고 누구보다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 위대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단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사실은 더 큰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는 것이 자신을 길러준 부모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전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힘든 일을 당할 수밖에,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당사자이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었던 그 어린아이는 늙은 부모를 껴안을 수 있는 넓은 어깨를 가진 청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우함보다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했고,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의 결핍보다 자신이 받아왔던 사랑의 충만함에 주목했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자신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 아낌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자신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과 감동의 순간을 함께 나누게 된 사루의 본명은 셰루(라이언)이었다. 그런데 이름처럼 강한 아이. 셰루에게 '집'이 의미하는 것은 잃었다가 되찾은 고향의 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처를 주고받아야 하는 그런 가족이 아닌,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배려하고, 감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족. 그런 가족이 함께 하는 늘 그립고,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그런 '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가난하든, 풍족하든, 피를 나누든, 피를 나누지 않든, 잘나든, 못나든, 상관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이니깐. 그런 가족과 함께 하는 '집'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그리운 법이니깐.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길의 끝에서 아낌없이 늘 그립다고, 언제나 보고 싶다고, 항상 사랑해왔다고 말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