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애 Mar 05. 2017

라라랜드, 당신을 잃지 말아요.

그녀(그)를 잃고 싶지 않다면  

배우가 되기 위해 수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해야 했던 미아와 대중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전통 재즈에 빠진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매력적인 남녀다. 많이 닮은 그들의 우연한 만남은 돈 때문에 캐럴을 연주해야만 했던 세바스찬이 리스트에 없는 재즈를 연주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피아노 선율이 의미 없는 파티에 지쳐 귀가하던 미아의 발길을 붙잡았고, 그녀는 첫눈에 세바스찬의 '자기다움' 혹은 '예술성'에 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첫 만남은 재즈를 연주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세바스찬이 자신의 연주에 반한 아름다운 여성의 말 따위는 귀담아듣지 않고, 냉정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하지만 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즐거운 야외 파티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악동 밴드의 구성원으로 키보드를 연주하는 세바스찬을 미아가 또 발견한다. '마치, 어울리지 않게 뭐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손을 들어 음악을 신청하고는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세바스찬을 당황하게 만들고 사라져 버린 미아. 세바스찬은 지난 크리스마스의 기억 덕분에 그녀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파티가 끝난 늦은 밤, 아름다운 야경을 보면서 서로의 감상을 나눌 수 있었던 그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서로에게 끌리지만 미아의 남자 친구로부터 온 전화는 그녀를 재촉해 떠나도록 만든다. 그들의 두 번째 만남도 그렇게 아쉽게 끝나고 말지만 기어코 다시 그녀를 찾아낸 세바스찬에 의해 그들의 인연은 계속된다.



예술을 사랑하고, 풍부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그녀를 앞에 두고 시시콜콜하고 따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남자 친구가 주선한 식사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미아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사소한 몸짓에도 설레고, 스치던 손가락을 맞잡아 깍지를 끼게 되면서 마음을 연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끌림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밤새 노래하기에도 충분했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고, 매일 웃고, 행복하고, 설레고, 즐거웠다. 모든 가 그렇듯, 상대에게 자신을 알리는 과정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 소통은 잃었던 자아를 찾도록 한다. 그녀는 그와의 사랑으로 인해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극본을 쓰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한편, 세바스찬은 사랑하는 그녀에게 안정적인 생활을 약속하지 못하는 현실을 수용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선택으로 밴드에 들어간다. 자신이 원하는 전통 재즈와 예술성을 포기하고 상업성과 대중성을 쫓아 밴드에서 한 손으로 전자키보드를 완벽하게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실력을 뽐낸다. 그의 무대를 관람하는 미아는 재즈인지 댄스 음악인지 구분 안 될 정도로 흥겨운 공연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치어서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물리적인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차차 멀어지게 되면서 이별을 짐각한다. 그는 재즈바를 오픈해서라도 마음껏 재즈를 연주하고 싶어 하던 소박한 꿈과 함께 그녀가 사랑했던 자기다운 모습도 잃어갔다. 그것은 충분히 소통하고, 확인하지도 않은 채 지레짐작하여 그녀가 그런 모습을 원할 것이라고 단정지은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리스트에 없는 재즈곡을 연주하는 모습에 반한 그녀였고, 그 때문에 관심 없었던 재즈를 사랑하게 되었던 그녀였다. 풍족하거나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음악과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현실과 쉽게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그녀가 사랑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하는 그는 열정적이지도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그가 변해버린 이유가 그녀 때문이라니, 그녀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그런 변화를 원했다는 식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그에게 실망하고 만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꿈꾸게 했던 그인데 정작 그녀가 꿈을 이루게 된 결정적인 순간에 세바스찬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이, 그와 그녀의 연결은 너무도 느슨해져 기쁨도, 슬픔도, 희망도, 꿈도 나눌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



하지만 세바스찬은 곧 후회했고, 그녀가 꿈을 이루도록 지지해준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잃었던 모습을 되찾아 재즈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의 삶을 선택한다. 덤으로 마음껏 재즈를 연주할 수 있는 재즈바를 오픈하고, 그녀가 만들어준 로고로 간판을 만들어 걸어놓고, 공연을 위해 파리로 떠난 그녀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명한 배우가 되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우연히 재회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재회의 순간, 영화는 시간을 되돌려 그들의 첫 만남으로 돌아가 그녀가 자신의 바람을 솔직히 표현하고, 그가 그녀의 바람을 지레짐작하지 않으며 자기 다운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조율할 수 있는 선택을 했더라면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행복하지 않았을까. 를 상상하도록 한다.



그 상상 속에서 그와 그녀는 현재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 수많은 선택 중에서 단 하나의 선택이 나비효과처럼 큰 파급력을 가져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사소한 선택으로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이별을 하고, 미성숙한 자아로 인해 상대의 의도나 바람을 왜곡하거나 오해하기도 한다. 그 한 번의 선택이 인연을 어긋나게 했다면 조금 억지스러워 보이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않던가. 그렇게 사랑받은 만큼만 사랑해도, 사랑받은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해도, 영원한 사랑은 쉽지 않더라.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향해 애써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나 보다. 서로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루어질 수 없어서 더 애잔하기에. 애써 서로를 추억할 수밖에 없지만 아름답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