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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Dec 26. 2020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 할 '함께'의 의미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_김민정 지음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란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어느 한 싱글 여성의 성공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모든 역경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열심히 일해서 그렇게 어렵다는 내 집 마련까지 한 번에 해결한, 비현실적인 성공 이야기. 그걸 에세이로 풀었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자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정하며,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현재의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고, 저자처럼 비혼에 비정규직 그리고 페미니스트인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할 것인가? 사회는 그들을 위해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가? 이제는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과의 '함께'라는 의미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의 생각을 엿보는 일은 설레는 일이다. 그리고 가끔은 나를 불편하게 할 때도 있다. 나와 다르다는 건, 내겐 낯설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80년대생으로서 나는 나의 윗 세대들과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았다. 그건 여자인 내게 '늦은 결혼도 괜찮아.'였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그리고 90년대생이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혼자여도 괜찮아.'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만큼 삶의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 시스템은 아직도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만 머물러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야만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혼 여성이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나는 생각을 바꿔 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집을 갖기 힘드니 결혼을 고려할 게 아니라 비혼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집이 필요하다고. 가장 불안한 사람이 가장 절실한 법이니까.
-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중


저자가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에는 동갑의 동료 작가가 집을 산 것을 보고 자극받아서인 것도 있지만, 어찌 보면 14년 동안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여성 세입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겪어야 했던 설움이 가장 컸을 거라 생각된다.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집주인 대신 다음 세입자를 구하면서도 "경상도 여자는 다시는 안 받는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밤낮없이 쌍욕을 해대는 옆집 남자가 무서워 사과 한 봉지 들고 조금만 조용해 달라고 부탁까지 해야 했다. 젊은 여자 혼자라는 상황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주거'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녀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확실한 목표를 세웠다. 몇 년간 얼마의 돈을 벌 것이며 어떤 집을 살 것인지 등 구체적으로 말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는 5 잡까지 뛰어야 했다. 그녀의 피나는 노력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그 꿈을 이루게 되었는데, 부족한 돈을 은행에서 대출받는 일도 비정규직의 비혼인 여성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만의 방'을 온전히 갖기 위해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얻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중  


그렇게 어렵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는데,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여전히 일에 치여 살았고, 보이는 모습에 신경 쓰다 보니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도 그녀의 집엔 없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녀는 일을 줄이고 방 한 칸을 전부 차지했던 옷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어난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는데 썼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제 때 씻고, 청소하고, 30분 동안 동네를 거닐며 산책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매일이 똑같은 하루 같은데 일기를 쓰면 새로운 하루가 된다. 그래서 점점 더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일단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할 수 있다는 게 새삼 기쁘다. 여기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다.
-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중


그녀가 찾은 새로운 삶은 주 30시간 노동 준수하기, 적당히 현대 기술에 외주를 주고 집안일에서 해방되기, 먹고 싶은 대로 요리하기, 그리고 2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하기였다. 그녀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새로운 삶의 방식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이었다.


비혼이기 때문에 가족계획이 필요하다. 우리는 제도 밖의 새로운 가족을 꾸려야 하니까. 세상이 가르쳐 주지 않은 길로 가야 하니까.
-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중


나는 남편과 둘이 살면서 새로운 식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내게 혼자 사는 삶은 사실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혼자 사는 삶의 가장 힘든 점은 외로움이 아닐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노후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하는 비혼의 삶에서는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인간관계를 이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분명 필요할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나름의 방식을 찾았다. 한정되어 있던 관계를 확장하고, 자신만의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 시작으로 동네 친구를 사귀고, 4인용 식탁을 들여놓았다.


앞으로도 저자는 비혼의 삶을 살면서 그동안 정해놓았던 방식과 나름의 규칙을 여러 번 수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책을 통해 비혼에 대한 작은 이정표를 제시했듯이, 지금 하고 있는 '1인 2 묘 가구'란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사람들과 계속 소통하며 지속되는 그녀의 삶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비혼을 결심하게 될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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