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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Jan 12. 2023

월드컵 경기를 보다 양수가 터진 기막힌 출산 후기

세 번의 유산 후 기적처럼 찾아온 축복

세 번의 유산 후, 세상을 잃은 것만 같았던 슬픈 나날들....


가슴에 새겨진 슬픔은 그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자 스르륵 사라져 갔다.  


여자라면 임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건 줄 알았다. 중요한 건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가짐이라고 단순히 생각했던 지난날들이..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은 부끄럽다.


나이가 있다 보니 유산을 거듭할수록 주변의 걱정은 늘어만 갔다. 시험관 아기를 해야 한다, 한약을 먹어봐라 등 나를 걱정하던 말들은 오히려 칼이 되어 가슴에 난 상처를 깊게 만들었다. 의학적 원인이 불분명했던 유산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내 나이 탓뿐이었다.


가슴에 남았던 한이 만든 오기와 끈기, 그리고 남편의 사랑으로 포기할 수 없었던 자연 임신은 2022년 4월,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한 두줄을 남기며 찾아왔다. 작디작은 태아가 건강한 심장 소리를 들려주며 마음의 위안이 되었고, 어렵게 성공한 임신은 마지막까지 순탄치는 않았지만 출산일을 앞두고 건강히 잘 진행되었다.


정해진 출산 예정일은 2022년 12월 22일.


예정일까지 20여 일이 남아 있던 날이었다. 이것저것 출산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때였다.


담당 의사와 상의해서 38주쯤에 자연스럽게 진통이 오면 자연분만을 진행하고, 혹시라도 진행이 안되면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었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처음부터 힘든 유도 분만은 절대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도 분만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제왕절개를 하겠다고 여러 번 의사에게 말할 정도였다.


2022년 12월 2일, 37주 1일이던 날!!!!!


그날은 대한민국이 포르투갈과 16강 진출을 두고 필사의 경기를 하던 날이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vs 포르투갈


남편과 축구 경기를 보는 내내 긴장한 탓인지 뱃속에 있던 아기가 갑자기 활발한 태동을 보였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아기가 축구를 좋아하나 보다 라며 남편과 얘기하던 찰나,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에 선제골을 내주며 전반전은 아쉽게 끝이 났다. 그때가 12월 3일 새벽이었다.


후반전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양수가 왈칵 쏟아지며 입고 있던 옷을 다 적셔버렸다. 당황한 나는 남편을 애타게 불러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캄캄한 새벽, 정신없이 들어간 병원의 가족 분만실에서 항생제 테스트를 마치고 수액을 맞았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상황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출산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그 흔한 출산 가방도 준비해 놓지 않았던 터라 태동검사를 하며 침대에 누워 있는 내내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이 분만실 밖에서 입원 수속을 준비 중일 때였다. 근처에 있던 TV로 그가 고개를 돌리던 순간!! 황희찬 선수가 역전골을 넣는 장면이 나왔다고 한다. 입원 수속의 마지막 절차를 끝맺음하려던 남편은 그 장면을 보자마자 남몰래 소리 죽여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vs 포르투갈



나는 그렇게 분만실에서 대한민국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에 기적적으로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대한민국의 16강 진출 소식에 3일 날까지 8시간을 금식하며 진통을 기다리면서도 나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기다리던 담당 의사가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진료를 보러 왔다. 내 상태를 살피던 그녀는 유도 분만을 해도 되겠다며 밝게 말했다. 유도 분만은 절대 안 하겠다는 나였는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의 16강 진출 소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순간 나는 왠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남편과 상의 끝에 결국 유도 분만을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오후 5시까지 자궁은 열리지 않았다. 간호사가 와서 식사하고 조금 쉰 후에 금식하면서 다시 유도 분만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리고 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자연 진통이 시작되었다. 나는 운명이라 생각했다. 유도 분만에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결국 밥은 한술도 뜨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까지 다시 금식을 하며 자궁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진통의 아픔도 괴로웠지만 그 당시 정말 힘들었던 건 다른 분만실에서 들리던 아기 울음소리였다. 나보다 늦게 온 산모들도 아기를 낳고 있는데 나만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2022년 12월 4일이었다.


최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픈 진통을 참아가며 자궁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는데 진전이 없었다. 이틀을 굶었던 나는 체력이 바닥났고 결국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출산 전에 제발 이것만은 피하자 했던 몇 가지가 있다. 그게 바로 조기 양막 파수, 유도 분만, 그리고 유도 분만 실패 후 제왕절개!!!! 또 이 부분은 속으로만 생각했던 건데 출산은 꼭 여자 의사하고 하고 싶었다. 남자 의사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제왕절개를 할 때 내 담당 의사는 퇴근을 한 상태였고, 남자 당직 의사만 남아있었다. 제발 피하자 했던 것들을 전부 다 겪고 배가 미친 듯이 고픈 채로 나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나의 임신 과정도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지만 출산은 참..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


수술한 결과, 2022년 12월 4일 8시 44분에 건강한 아기가 우렁찬 울음과 함께 태어났다. 2.76kg의 작은 몸으로 태어났지만, 울음소리만큼은 수술실을 다 울릴 만큼 컸다. 게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의료 기기를 꽉 쥐어서 수술실에 있던 의료진 모두를 놀라게 했다.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 참 다행이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긴장을 많이 했다.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보며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마취 담당하시는 분이 한 말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오늘이 그 유명한 BTS 진의 생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자동적으로 BTS 진의 왕팬이 되고 말았다.


37주 3일, 예정일보다 18일이나 일찍 태어난 우리 아기!


출산 과정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건강한 아기를 마주한 순간 모든 고생이 다 씻겨나갔다. 하반신 마취로 제왕절개를 해서 아기를 보고 후처치를 위해 전신 마취에 들어갔다. 아기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저절로 흘렀다. 내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건강한 아기가 너무 고마워서였다.


정신이 드니 나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회복실에서 의사가 초음파를 보며 내 상태를 확인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통과 페인 버스터를 달고 있던 터라 마취가 깼을 때 큰 통증은 느끼지 못했다. 수술 통증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다름 아닌 금식이었다. 이틀이 넘도록 물 한 모금을 마시지 못해 목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수술 한 그날도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하루를 꼬박 견뎌내야 했다.


출산 과정도 힘들었지만, 제왕절개 후 회복 과정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통증으로 움직이기 힘들었음에도 진통제로 버티며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했다. 그래야 아기를 보러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고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아기와 첫 만남을 가졌다. 아기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눈물을 폭포수처럼 흘렸다. 아무리 멈추려 노력해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 덕에 신생아실에 있던 모든 분들이 다 놀래서 왜 그러냐고 내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말 주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제가요. 유산을 세 번이나 했어요. 어렵게 아기를 가졌는데..... 우리 아기가 너무 고맙고 예뻐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는 처음 본 모두에게 같은 말을 쉴 새 없이 반복했다. 덕분에 남들보다 아기를 더 오래 보고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다시 회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월드컵 경기를 보다 양수가 터졌던 내 기막힌 출산후기는 여기까지이다.


출산의 고통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몸은 힘들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나도 조금씩 성숙해져 간다.


이제 나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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