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내 삶을 원점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엄마라는 롤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내 삶이 엉켜 버린 것 같아 되돌리데에만 힘을 쏟았다.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삶은 엉킨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진입했으니까.
밤이 되면 하루에 있었던 일을 곱씹으며 괴로워했다. 자존감은 더 낮아졌다.
나는 조급했다.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였다. 싱글 혹은 딩크족인 친구들이 승진을 하고 커리어를 쌓을 때, 내 삶만 멈춤 버튼이 눌린 것 같았다. 엄마가 되어도 계속 슈퍼우먼이 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온 힘을 다해 아등바등했다.
하지만 발버둥을 칠수록 나는 밑으로 가라앉았다. 힘을 빼야 물 위로 뜬다는 걸 알지만 사람이 마음이 급해지면 힘이 자꾸 들어가는 법. 나는 그렇게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느 날 지인이 추천해준 책 <에고라는 적>을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에 꽂혔다. 마치 내 속내를 들여다본 사람이 쓴 글 같았다. 내 마음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목소리를 온전히 들여다보았고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라 에고라는 것을 인식했다. 나를 주장하던 시끄럽던 목소리 에고가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책 한 권으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이든지 최고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 완벽한 엄마의 모습과 나를 저울질하며 자책하지 말자는 것. 이 세상에 그런 엄마는 없다는 것. 엄마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는 것. 엄마가 된 순간부터 나의 몸부림이 시작되었고 그 과정 가운데 나는 성숙해가고 있다는 것.
인생의 전환점에서 당신이 버려야 할 한 가지 당신이 가장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믿는 잘못된 믿음. 바로 당신의 에고다.
그 누구(무엇) 보다 더 잘해야 하고 보다 더 많아야 하고 또 보다 많이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에고이다.
나는 출산 전 나의 모습, 나의 에고에 갇혀 있었다. 이전의 나의 모습과 지금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책했다. 이전처럼 다시 반짝이는 자리에 있고 싶고, 인정받아야만 내 존재가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내 존재는 충분히 가치 있다는 사실을 매일 나에게 알려 주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실체 없는 욕심과 성과지표에 사로잡혔던 나는 이제 숫자보다 의미 두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프지 않다는 걸 알려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게으름이었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채우기 위해 블로그 포스팅, 브런치 글쓰기, 유튜브 영상 만들기 등에 집착했다. 일종의 불안감으로 표출됐던 거다. 모든 것으로부터 게을러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의사 선생님은 이제 병원에 그만 와도 된다고 하셨다.
지금 나는 초조함과 게으름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아마 게으름에 더 가까운 거 같다. 브런치 글이 밀리기 시작했다. 유튜브 동영상도 몇 주 전에 멈춰 있다. 한 때 누군가는 내게 일중독자, 혹은 일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고 했다. 게으름을 허락할 수 없어 스스로를 들볶던 내가 게을러졌다. 나에겐 이게 좋은 소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