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고 싶다.
오늘 역시 무더운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가을이 온 지 한참 되었지만, 잔인했던 여름은 아직까지 자기 자리를 내어줄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아침 햇살 속에서 조깅을 했다.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며 뛰고 싶었다. 내 안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삶에 대한 의욕과 의지를 불태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한 바퀴 뛰고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에도 무작정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대단한 무엇인가를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산책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의지. 그리고 나 자신을 미워하는 이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다.
때때로 우울은 짙은 안개처럼 마음을 덮는다. 나는 그 가려진 안개 사이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본다.
때때로 나는 내가 너무 싫다. 심지어 나를 증오하기까지 한다.
"왜 난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왜 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삶의 무게와 얽혀가는 관계들 속에서 내 인생은 마치 진흙속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드는 것만 같다. 수없이 밀려드는 후회와 자기혐오는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내가 나아가려는 길을 자꾸만 흐릿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삶으로 솟아오르고 싶다.
정오의 햇살아래 반짝이는 윤슬, 그 위로 뛰어오르는 작은 물고기들처럼, 나도 언젠가 내 삶에 대한 의욕을 느끼며 반짝이며 솟아오르고 싶다.
하지만 나에 대한 증오가, 그 윤슬을 덮는 안개처럼 다시 내 안을 잠식한다. 빛과 의욕을 앗아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뛴다. 그리고 걷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얼마나 이 작업을 반복해야 내 안에서 꿈틀대는 이 어둠을 눌러줄 수 있을까?
매일같이 안갯속을 걸으며, 나는 그렇게 내 감정의 윤슬을 기다린다. 내 안의 미세먼지를 걷어내기 위해 움직이고, 어둠을 품은 채 다시 살아보려 애쓴다.
"새벽에 아름다운 노을이 생기는 것은 그 대기에 먼지가 섞여 있기 때문이라는 역설을 잊지 마십시오."
-이어령
이 문장을 떠올린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맑고 투명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먼지와 혼탁함이 섞여 있을 때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진실.
나도 그렇게, 나의 안개와 어둠과 먼지를 품은 채 언젠가 반짝이는 윤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