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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정치 - 정보 독점

권력은 정보를 독점하려 하지만, 진짜 자본은 신뢰에서 나온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회사는 정글이다.

어제의 동료도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곳, 회사는 정글이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인간성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우리 회사 역시 글로벌 구조조정 기류가 감지된다.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는 비단 제품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반짝 특수로 팽창했던 중국 오피스의 인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변방인 우리 사이트까지 손을 뻗었다. 서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조금씩 날을 세우고, 누군가는 보고라인을 무기로 삼고, 누군가는 정보를 감춘다.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나는 그 싸움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싶다. 나가더라도 존엄을 지키며 떠나고 싶은, 알량한 자존심이 남아 있다.


정보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다. 그건 오피스의 오래된 법칙이다.


나는 내 자리에 있었을 따름인데, 중국 오피스에서 내가 맡은 영역까지 침범하며 내가 쌓은 작은 성과들이 한순간에 왜곡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정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단순한 작업을 수행한 이들은 그 역할만 부각시키고, 정작 분석과 마감을 담당한 내 업무 스콥이 함부로 평가절하되었다.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까지 끊임없이 참견하며 존재감을 입증하려 든다. 세일즈 팀의 정보를 독점하거나, 보고라인을 통제하려는 얕은 수로 이 작은 변방의 현실이 왜곡되고 있다. 하지만 정보는 잠시 권력이 될 수 있어도, 진실이 결국 떠오른다.


오스만 제국의 교훈

역사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 오스만 제국(지금의 터키)은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향신료 무역을 중개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전성기는 반세기 가까이 이어졌다. 항로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엄청난 어드밴티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독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향신료를 독점하던 오스만 제국은 바다를 두려워했고, 유럽은 그 두려움을 건너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다. 항해술의 발전은 그들을 신대륙으로 이끌었고,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으로 오스만의 중개 무역은 쇠퇴했다. 오스만의 독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지금의 오피스도, 세상의 구조도 결국은 독점이 무너지고 새로운 항로가 열리는 역사 위에 서 있다. 모든 독점은 결국 흐름에 의해 무너진다. 그리고 흐름 앞에서는 누구도 영원하지 않다.


신뢰자본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신뢰! 정보는 사라지지만, 신뢰는 남는다.

신뢰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는 막강한 보고라인도, 든든한 뒷배도 없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지켜온 나의 원칙은 단 하나였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 내게 일을 맡기면, 나는 회사의 원칙과 상식에 따라 최선을 다해왔다. 누구에게 유리한 보고가 아니라, 논리와 사실에 기반한 보고를 했다. 작년 사이트의 예산 삭감 위기에서 나는 모든 데이타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대안을 제시했고, 결국 상사의 신뢰를 얻어 우리 사이트의 예산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품위였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상사는 나를 신뢰한다. 나는 사내 정치를 하는 대신, 보고서와 데이타로 나의 존재를 입증한다. 이 노하우는 내가 이 정글에서 터득한 생존의 기술이다. 적이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고 해서, 나까지 그 안에 들어가선 안된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냉정하게, 사실에 입각해서, 더 많은 그리고 더 나은 보고서를 기록에 남김으로써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물론 신뢰자본이 당장 나를 지켜주는 보험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익힌 경력과 경험, 그리고 나의 신뢰를 기반으로 다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고, 변수는 생긴다. 기회는 그 변화를 감지하는 사람에게 온다.


때로는, 판이 바뀌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때 나를 이끌어줄 것은 결국 신뢰일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고, 누군가의 독점적 지위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신뢰를 지키며, 때가 오면 새로운 항로로 나아갈 것이다.


정글의 나무로 남기보다, 숲의 순환 속에서 다시 뿌리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언제가, 운이 좋다면

내가 꿈꾸는 새로운 기회, 어쩌면 새로운 팀이나 독립된 프로젝트와 같은 나만의 Cape Twon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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