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하는 기분으로 걷는 가을
참으로 변덕스러운 건, 마음이라는 이름의 날씨였다.
나는 실은 깊은 우울 속에 빠져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현실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병, 시골집 정리와 집안 살림, 회사의 압박, 나를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현실.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그러나 조용히 나를 향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 결핍과 중압감 속에서 나는 조금씩 메말라갔다.
그래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사경을 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시간은 흘러 있었다. 남편이 쓰러지고, 내 일상이 무너진 지도 어느덧 다섯 해가 되어간다.
때로는 축 처진 남편의 어깨와 암통증으로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 몸의 진액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숨이 막히고, 아무리 걸음을 떼어보려 해도 도무지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텼다.
그런데, 그 절망 속에서도 무언가 조용히 싹트고 있었다. 그 사이 내 아이가 자라 있었다.
이젠 어느새 내 어깨까지 자라 내 어깨를 다독이며 "엄마, 힘내요."하고 웃어주는 아이.
그 보석 같은 눈빛 하나에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스며들기도 한다.
지금은 가을이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견뎌낸 나무들이 더 화려한 빛으로 마지막을 태우듯 절정의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아버지 치료를 축하하기 위해 잠시 경주로 떠났다.
익숙한 도시였지만, 그날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나를 맞았다.
황금빛 들녘은 어느새 상고머리를 한 것처럼 벼가 베어져 있었다. 빈 들판을 보니, 계절이 노을처럼 저물고 있음을 느꼈다. 통일전 가는 길, 노오란 은행나무 가로수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남편과 자주 갔던 이 곳에서 저 멀리 통일전 기와 위로 은행잎이 흩날렸다. 대릉원의 둥근 무덤 너머, 거목들의 단풍은 진정으로 가을의 절정을 알렸다. 단풍으로 치장한 고즈넉한 경주의 돌담길을 천천히 걸었다.
소멸을 앞둔 가을의 풍경은 이토록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혹독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낸 나무들의 낙엽은 더 붉고 찬란한 빛을 품고 있었다.
마치 시련과 불행은 잠시 스쳐갈 뿐, 끝내는 이렇게 장엄하게 삶을 완성해가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가 살아낸 경험, 내가 깨달은 지혜, 내가 극복한 슬픔을 통해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나는 이미 나로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 삶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을빛에 물든 들판 한 자락, 아이의 눈동자, 그리고 나를 아직 살아 있게 하는 한 편의 시. 그리고 아직 숨 쉬는 이 순간. 그것이면 충분했다.
문득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가 떠올랐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래, 삶이란 때론 그렇게 묵묵히, 귀향하듯 걸어가야 하는 길임을 이 가을의 끝에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