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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장면이 저 멀리로 사라지길, 멀어지길 바란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지금 이 순간이 하나의 '쪽', 하나의 장면뿐이길 바란다.


눈앞에 펼쳐진 이 현실이 세상 전부처럼 느껴지는 겨울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스산한 냄새가 또 다른 고통을 준비해 온 건 아닐까. 또다시 서늘한 겨울이 찾아온 걸까.


2021년 겨울,

검게 물든 흉수를 품고 남편과 응급실로 달려갔던 밤.

자정이 넘은 병원에서 의사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라는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남편 역시 그날의 장면을 잊어버리고 싶어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침대 위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며 울고 있던 나를 그가 멍하니 쳐다보던 장면까지.


그리고 내일,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간다.

이번엔 '복수'라는 이름의 공포를 안고 말이다.


나는 준비되었는가? 의사를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을까. 무수히 질문해 보지만 대답은 아직 망설임 속에 있다. 담담해지자, 의연해지자... 스스로 다독이며 노트북 앞에 앉아 이 장면을 붙잡아두려 한다.


박준 시인의 [쪽]을 읽었다.

그 시의 한 구절이 오늘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속절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과

애를 쓰며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것의 사이가

이참에 멀어지기를, 영영 아득해져서는

삶의 어느 장면에서도 한데 놓이는 일이 없기를.'


차가운 겨울바람만큼이나 내일의 내 마음도 서늘해질 것인가.

외면할 수만 있다면, 도망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다.

내일의 그 장면 하나만큼은 부디 멀어졌으면 한다.


병원을 다녀왔다.

처음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늦은 점심 식탁 건너편에서 남편의 어깨너머로 검은 바다가 보였다.

오늘도 검은 바다 같은 하루가 저물어간다.

언젠가는 윤슬이 반짝이는, 빛이 눈부신 따뜻하고 아름다운 날도 올 거라 애써 마음을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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