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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9. 2017

친구와 헤어졌다

끝맺기의 기술

언제나 인간관계 무결함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누구랑 싸운 적 없어요, 누구랑 연을 끊어본 적 없어요, 누구랑 헤어진 적 없어.. 아니, 있지만 그는 연인인 친구였지 친구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젠 그럴 수 없다. 올해 벌써 친구 두 명과 연을 끊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고등학교 동창이자 룸메이트였고 한 때 너무 친해서 유럽여행이며 내일로, 국내 여행을 모두 다녀온 사이였다. 다른 한 명은 대학교 동창으로 같은 과가 된 적은 없지만 어쩌다보니 친해진 사이였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이렇게 되어버렸다.




싸운 적 없다는 말은 내세울 만한 문장이 아니다. 그런 관계는 보통 한 명이 참고 있거나 싸울 정도로 친한 관계가 아닐 때 나올 수 있다. 갈등을 회피하는 성격도 한 몫 한다.


(...) 정작 그 중심에는 내가 없었다. 마치 각기 다른 작가가 쓴 소설책을 보지만 딱히 작가와 개인적으로 연결 고리가 없는 독자였달까. 언제나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경험을 좇았다.


(...) 하지만 이전 관계에서부터 온 간접 경험과 나이 들며 쌓인 감정과 행동 양식이 맞물리며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마주하게 됐다. 감정이 요동치는 나와 달리 그는 늘 평점심을 유지했다. 말하기보다 듣기가 앞섰고 말 한마디를 가볍게 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일깨웠다. 서로 다른 취향을 아쉬워하기보다 존중했다. 그를 만나며 세상 편안한 태도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말할 수 있었다. 똑같이 그의 말을 진심을 다해 듣고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갈등이 나더라도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더 촛점을 두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지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안에 숨어있던 평정심이 드러나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로소 관계가 좁혀지기 보다 이어지기 시작한 최초의 지점이었다.


끊어진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내가 '감정 쓰레기통' 가해자였던 시절, 친구1은 분명 피해자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친구1은 갈등을 느끼고 푸는 방법이 모두 나와 달랐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건 나였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원망보단 아쉬움, 미안함이 남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가 느낀 감정을 전달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때 나는 어렸고 무지했다.


그래서 이번에 절연한 친구2에게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모든 말과 행동에 트집을 잡기 시작한 친구2는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까지 느낄 정도로 나를 몹시 하대했다. 그러나 친구2는 이유를 좀처럼 밝히지 않았다. SNS에 마치 나를 암시하는 듯한 글까지 남긴 날, 참다 못한 나는 연락을 끊었다. 일주일 쯤 지났을 무렵 비겁한 도피 같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1과 끊어질 때 한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난 지점과 당시 무슨 감정을 느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상대방이 변하고 내가 변하면 좋을 지 적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괜찮았다. 일단 잘 전달했으니깐. 친구2가 장문의 답장을 줬다. ㅡ함께 한 7년 동안 내게 받은 상처가 많지만 자신이 말하게 되는 것이 너무 구질구질해보여 말하고 싶지 않다. 나를 볼 때마다 자신이 받은 상처가 생각난다. 나를 향한 모욕적인 발언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나를 다시 볼 마음이 없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라 크게 충격받지는 않았다. 이틀 뒤에 내용을 아주 짧게 정리해서 관계를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미련도 아쉬움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7년 가까이 잘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를 말하지도 않은 채 모욕적인 언행을 지속한 것은 몹시 불쾌하고 아쉬웠다.



이렇게 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어떤 존재도 나의 감정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느낀 감정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아는 건 오롯이 나 자신 뿐, 그러니 스스로 감당하는 것. 그래서 극단적인 감정을 이유도 모른 채 붙잡는 걸 멈춰야 한다. 그러려면 감정을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지만 다른 사람은 널렸다. 다른 사람 중에 만난 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받는다. 이때 영향 받는 것, 즉 수용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로써 나의 취향과 성향을 찾아간다. 나만의 양식이 생긴다. 기준이 생긴다. 무분별한 영향도 이제 어느 정도 가릴 줄 알게 된다. 그때의 내가 지금은 아닌 시기가 오고 만다. 그리고 이때 만났던 이들과 결별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새로운 사람과 결합하기도 한다.


절연을 결심하기까지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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