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준비하다 사기를 당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작이 아니라 시작한 이후가 중요하고 널리 알려지기보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잘 맞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게는 결혼식이 그런 의미였다. ‘일생의 단 한 번 뿐’으로 ‘가장 아름다운 날’이어야 한다는 의미부여는 본격적으로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도 여전히 따분하고 지루했다. 그래서일까. 준비한 기간치고는 모든 것이 술술 풀린다고 여길 때 쯤 결국 사건이 터졌다. 결혼식을 일상과 다를 바 없이 여겼던 태도가 화근이었던 걸까. 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상황 수습에 나서야 했다.
LED 전구와 어떤 역할인지 모르는 원형 테이블, 무대 같은 신부 입장 길을 원치 않아 고심 끝에 선택한 결혼식장이었다. 화려한 조명도 그럴듯한 무대도 없었지만 우리만 쓸 수 있는 곳이었고 사용 시간도 길었다. 우리가 결혼식이 처음이듯 그곳도 결혼식이 처음이었다. 아무렴. 처음이 주는 의미가 새삼 좋았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간 날, 결혼식장 담당 실장은 뜬금없이 좋은 향이 난다며, 어떤 향수를 쓰냐고 물었다. 시향을 잘못하고 사서 마지못해 쓰는 핸드크림 향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렴. 좋은 말만 오가도 모자란 순간이었으니까. 그 후 몇 주 동안 예약 실장과 나는 결혼 준비로 자주 문자로 연락했다. 영업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치고는 어딘가 엉성했지만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실장은 잠적했다. 수많은 사람이 좋은 날을 위해 내놓은 돈을 가지고. 줄곧 살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서 좋다고 믿으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뒤집어졌다. 좋은 게 좋아지려면 일방이 아닌 쌍방이어야 한다. 실장을 채용한 고용주와 고용주에게 장소와 이름을 빌려준 호텔 관계자와의 만남이 이어졌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피해자였지만 그들은 분명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실장이 벌여놓은 자멸(自滅) 길에 애꿎은 이들이 줄줄이 넘어졌다.
자욱한 안개로 시작하는 아침이면 곧 맑아질 한낮이 기다려진다. 아침에 안개가 끼면 오후가 맑은 날이 많기 때문이다. 별안간 일어난 이 일도 어쩌면 아침 안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지만 감점과는 별개로 실장은 달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자 한 친구가 성범죄를 일으켰지만 무혐의 처리된 고위공직자 이름과 불법촬영을 비롯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군대로 떠난 은퇴한 연예인 이름을 거론하며, 현재의 법을 언급했다. 여기저기 죄만 있고 벌은 없다.
(덧붙임)
지난 봄, 코로나와 사기꾼을 만났지만 무사히 결혼식을 치뤘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