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로코크 Nov 23. 2022

아둥바둥 흙수저 탈출기 (5) - 촌놈의 서울생활

서울과 지방의 차이

몇 년의 방황을 끝내고 27살에 다시 시작한 캠퍼스 생활은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해 주었다.


이를 테면 자퇴했던 지방대에서는 아버지가 택시운전을 하는 친구가 더러 있었는데, 편입을 하고 나선 택시기사 아버지를 둔 친구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이 아버지가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친구들로 보였다.

(아 물론 앞편에서 언급한 벤츠를 타고 등교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새벽까지 택시 운전을 해서 버신 돈으로 마련한 2500만원짜리 반지하 원룸 덕분에 월세 걱정 없이 윗동네 생활을 시작했으니 '흙수저'란 타이틀을 떼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반지하 원룸에 딱 한번, 아버지께서 와보신 적이 있다.

무뚝뚝한 성격에 표현을 잘 안 하는 분이셨지만 습기로 다 썩어가는 화장실 문과 우중중한 반지하 특유의 집 상태를 보시고선 안타까우셨던 모양이다. 여기서 어떻게 살겠냐며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셨다.   

(물론 옮기지 않았다. 옮길 여력도 없었고)


그래도 2년간의 반지하 살이는 나로 하여금 집에 대한 갈망을 더 크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고, 그 갈망이 원동력을 작용한 셈이니 감사히 생각을 하고 있다.






방학을 보내는 방법

기왕 해보는 서울생활,

학교 밖의 생활도 해보고 싶던 차에 영어토론 연합 동아리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연합 동아리라면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도 만날 수 있고 영어공부도 할 수 있으니 재미있을 것 같았다.


주뒤 무더운 토요일 오후, 신촌의 모대학 강의실에서 생애 첫 영어면접을 보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그 동아리의 멤버가 될 수 있었다.


연합 동아리 생활은 나의 두 번째 대학생활에 여러모로 자극이 많이 되었다.

영어토론 동아리답게 (어쩌면 당연하게도)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어려움 없이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대부분 명문대 재학생들이었다.


나의 모교 고등학교에서는 전교 10등 안에는 들어야 갈 수 있는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영어로 시사를 논하게 되었으니 황송할 따름이었다. (면접 당시 나의 영어실력을 보고도 왜 나를 합격시켰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아리 멤버 중에는 어렸을 적부터 해외 경험을 해본 친구들도 제법 있었고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멤버들도 있었는데 이게 서울과 지방의 차이인가 싶었다.


지방에선 방학 때면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라도 벌 궁리를 해야 했고 서울 학생들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함께) 방학 때면 해외 배낭여행으로 견문을 넓히고 있으니 대학생활의 질 자체도 다르게 보였다.

그중 다수는 용돈 걱정이 없어 보였다. 부족하면 과외로 또 벌면 되니깐.




소개팅녀의 한마디


(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 )

한 번은 신촌의 한 레스토랑에서 미모의 여대생과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소개팅녀가 대뜸 말했다.


‘지방에서 오셨나 봐요?’


서울 생활을 하며 나의 억양을 지적(?) 받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의 말투에 묻힌 경상도 억양을 보고 그냥 한 말인지, 의도를 가진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당황스러워졌다.


괜스레 나의 사투리가 신경 쓰여서 편하게 말을 하기도 어려워졌고 왜 하필이면 고른 메뉴는 크림 파스타였는지... 내 기분까지 꾸덕해지는 것 같았다.


소개팅녀의 말투는 왠지 ‘지방 출신 남자는 매력 없어’라는 표현 같았고 난 몹시 불편했던 소개팅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흙수저 늦깎이 편입생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그 소개팅녀의 지적(?) 불편하게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지방’이라는 타이틀은 생각보다 꽤 오래 나의 삶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성골과 진골

새로운 캠퍼스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학과에서 교환학생 모집 공고가 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홍콩의 한 명문대 생활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고 선발기준은 영어점수 단 하나였다.


기대도 안 한 교환학생이지만 욕심이 났다.


편입생이 다르건 몰라도 영어점수는 좋지 않은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을 했고, 지원자 중 내 영어점수면 선발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가 김칫국 드링킹으로 변할 무렵 선발 결과가 나왔는데 명단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대신에 나보다 영어 점수가 낮았던 두 명의 다른 학생의 이름이 있었다.

나와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그 친구들은 편입이 아닌 정식 입학생이라는 것. 그리고 담당 교수님이 그렇게 정했다...라는 소문만 전해 들렸다.


편입이 핸디캡 인건 알았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정해야 했다.

난 성골이 아니라 진골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성골과 진골의 차이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느껴야 했다.


(오해를 할까 봐 미리 밝혀둔다. 난 영어실력이 그리 좋지 않다. 한때 영어 점수가 조금 좋았을 뿐)

매거진의 이전글 아둥바둥 흙수저 탈출기 (4) - 20대 방황을 끝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