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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트 Aug 23. 2020

남의 직업에 관한 고찰

택시기사와 식당 주인



국어사전에 따르면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일컫는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직업에는 사전적 의미보다 더 다양한 것이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한 단어, 내가 매일같이 시간을 투자하는 일, 나의 일상, 나의 Identity, 삶의 현장,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만들어주는 것. 어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일종의 선택이다. 일상에서 수많은 직업들을 접하며, 나는 종종 다른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을 하곤 한다.



택시기사

한 번은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 서있는 택시 문을 벌컥 열었는데, 휴대폰을 보고 있던 택시기사님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나도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어서 뒤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두렵거나 긴장되기 마련이다. 대학교 강의실 뒤쪽 자리가 인기 있는 이유도, 어두운 밤길 내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이유 없이 무서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관점에서 매일같이 자신의 뒷자리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낯선 사람들을 태워야 하는 택시기사는 꽤나 배포가 커야 하는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매일매일이 아주 재미있을 수 있는 직업일 것만 같다.  택시기사는 매일 새로운 승객들을 태우고 새로운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승객들과 그들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다.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나의 공간에 들어온 손님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인생을 나누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한 친구가 택시에서 방명록을 남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승객들에게 짧게라도 방명록을 요청하는 택시기사님이었는데, 방명록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택시기사님에게 남기는 감사인사, 한 해 소망하는 것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메시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고민 등등. 사람들은 택시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명록을 적으며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택시기사로써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 아, 참고로 택시기사님들이 알려주는 지역 맛집이 제일 맛있다!



식당 주인

예능 '골목식당'에서 찌개백반집 편 사장님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선한 인상의 사장님과 따님이 운영하는 작은 백반집이었는데,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그들의 마인드를 보고 문득 식당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손님들의 말이 가장 기분이 좋다는 사장님은 더 배워서 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한다. 매일 같은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어 파는 일은 어쩌면 지루하고 고루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장님은 지금보다 더 나은 음식을 대접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단골손님들의 식성을 파악해서 손님이 먹지 않는 반찬은 빼기도 하고, 밥을 많이 먹는 손님들에게는 일반 밥그릇보다 더 큰 그릇에 주기도 하는 그녀의 따뜻한 배려  또한 인상 깊었다.


잠깐 시카고에 살았을 때 작은 카페에서 알바를 했는데, 점심시간에는 샌드위치와 파니니를 파는 곳이었다. 빵부터 치즈까지 모든 재료를 손님들이 일일이 선택해야 했는데, 몇몇 단골손님들은 항상 같은 조합으로 주문을 했다. 그래서 단골손님들의 샌드위치 조합과 이름, 간단한 얼굴 그림을 티켓으로 만들어두고 그들이 오면 은밀한 미소를 보내며 티켓을 흔들어 보였다. 이는 손님들과 대화도 더 많이 하고 알바 마지막 날 이별 선물(?)을 받을 정도로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음식을 사 먹는 행위가 아니라 환영받는 듯한 느낌과 관계를 맺는 경험이 그들에게 특별함과 따뜻함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내가 만약 식당 주인이 된다면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과 인간적인 소통을 하는 따뜻한 식당을 열고 싶다. 아니면 오직 바 형식으로만 되어있는 카페를 열어 모든 손님에게 한 잔 한 잔 정성스러운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고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다.


남의 직업을 고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지만 내가 그들의 직업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어떤 이에게는 '직업'으로써의 일이 당장의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며, 힘들고 고단하기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만나는 랜덤한 사람들이 그들의 직업에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한, 그 직업에 대한 재밌는 고찰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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